엄마에서 아르바이트생으로 살아남기
"이제 몸 좀 풀렸지? 본격적으로 일 좀 해보자!"
이 말을 들었을 때 눈치껏 빠졌어야 했는데, 뭐에 홀린 듯 좋다고 한 건지 모르겠다.
대표님의 오래된 사업구상 중 하나. 육가공품 제조판매
대표님의 형님은 업계에서 꽤 유명한 식품제조기업을 운영하고 계신다. 그 영향을 받아 한때는 축산물유통업과 함께 식품제조업을 하셨다가, 자세한 이유는 모르겠으나 불미스러운 사건이 발생해 사업을 접으셨던 것 같다. 그때 위기를 한차례 겪은 후 재 정비하여 운영 중이셨다. 그래서 재정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새로운 사업에 공격적인 투자를 하기 어려운 상황이셨다.
꿈은 큰데 현실이 따라주지 못하니 최소한의 노력으로 최대 효과를 내 보기 위해 고군분투하셨는데, 거기에 적합한 인재로 내가 선택된 것 같다. 최소한의 인건비로 실패의 부담 없이 가볍게 준비하면서 꿈에 한 발짝 나아가기 위한 발판이라고나 할까....
처음엔 수제 소시지를 만드는 것부터 시작이었다.
한동안은 본인이 배운 것을 활용해 직원들과 하셨었는데, 계속되는 시행착오로 인해 출시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러다 육가공 제조업에 오래 몸담으셨던 팀장님을 영업한 뒤로 안정적인 제품 생산이 가능해지자 본격적으로 제품 개발에 박차를 가하셨다.
다양한 수제 소시지와 햄을 만들고, 시식하고, 어떻게 판매할 것인가를 고민했다.
카페 한 곳에 매대를 만들어 식당을 방문하는 손님들이 구매할 수 있는 장소를 만들었고, 그 제품에 대한 제고관리 및 품질관리 업무를 나에게 맡기셨다.
식품 관련해서 지식이 하나도 없던 나는 대표님에게 대략적인 프로세스를 듣고 일을 진행해야 했는데
기본적으로 제품 판매를 위한 각종 행정문서를 작성하여 관할기관에 신청하고 문서로 남겨두었다.
식품은 판매가 시작되면 주기적으로 미생물 검사를 받아야 했는데, 제품 품목마다 시기가 달라서 각 제품별로 신경 써서 체크해야 했고, 유통기한 관리 및 생산일정관리, 시설 위생관리 등을 해야 했다.
그런데 생산팀의 업무시간과 나의 근무시간이 차이가 나다 보니 늘 나보다 먼저 대표님의 지시가 들어가 있고 나는 항상 한발 늦게 뒤치다꺼리를 하는 상황이었다.
나는 그저 문서작업이나 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가 점점 늘어나는 책임감에 불편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대표님의 업체 미팅 자리에서 서포트를 하고, 판매장 시스템을 안정을 위한 데이터베이스를 정리하고, 제품 라벨 작업과 제고관리를 신경 써야 하는데 밑바닥부터 업무체계를 만들어야 하는 나로서는 부담스럽기만 했다.
내가 전담으로 하기 전에는 따로 생산팀장님과 별도로 일을 맡아서 하던 직원이 있었는데, 그 직원이 불만을 제기하고 다른 곳으로 가버렸다. 그래서 부랴부랴 그 직원이 준비하던 일까지 떠맡았는데 그중 하나가 지역 식품제조업체를 홍보하기 위한 박람회에 참가하는 거였다. 급하게 물품을 준비해서 행사에 참가했다. 야외에서 진행되던 행사였는데 새벽같이 출근해서 하루 종일 홍보부스에 서서 제품을 판매했다. 다행인 건지 운이 안 좋았던 건지 아침부터 내리던 부슬비는 시간이 지날수록 장대비로 바뀌어 급하게 행사가 조기 종료되었고, 비에 홀딱 젖어가며 부스를 정리했는데 정작 집에 올 때는 비가 멈추었다.
행사장 근처에 사시던 친정부모님이 잠시 방문하셨는데, 딸이 능력을 인정받아 팀장처럼 나와서 행사부스에서 일을 하고 있는 모습에 흐뭇해하시며 너무 좋아하셨다. 누가 아르바이트생에게 이런 일을 맡기냐며......
어느 정도 단품 생산이 안정화가 되자 밀 키트에 한참 관심을 갖고 계시던 대표님은 수제 소시지로 만든 부대찌개를 만들고 싶어 하셨다. 부대찌개 육수를 만들기 위해 식당 주방 총괄 팀장님과 양념장을 고민했고, 수제 양념장과 시판 양념장 등을 비교하며 테스트를 했다. 최종 선택된 양념장으로 직원을 상대로 부대찌개 시식회를 준비했고, 몇 번의 시식회 끝에 모두가 만족하는 맛을 찾았으나, 문제는 너무 비싼 원가였다.
그렇게 부대찌개 개발은 잠시 보류가 되었다.
대표님의 영업을 통해 유명 프랜차이즈의 신메뉴를 위탁 생산하게 되었는데, 그 업무를 처리하느라 기존에 하던 일들이 보류되었다. 얼마 안 되는 일손에 늘 급한 것부터 해결을 해야 했으니 뭐든 하다가 멈추기를 반복했고, 쇼핑몰도 판매를 시작했으나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홍보물과 쇼핑몰 관리를 위해 뽑은 디자이너는 소통이 되지 않아 자꾸 일을 원점으로 돌려놓았다. 그 와중에 생산팀장님이 대표님과의 불화로 잠수를 타버리고 일은 점점 늘어나는데 나는 가운데 껴서 점점 눈치만 보게 되었다.
시간이 갈수록 책임감을 갖고 해야 하는 일들은 늘어나고, 외부 미팅을 하시고 나서 이후 컨택은 나에게 맡기셨는데 나이도 있고, 사무실에서도 대표님 옆자리에 앉아 일을 하니 사람들이 나를 최소 팀장 또는 이사로 부르기 시작했다. 직급도 없는 일개 알바가 그런 호칭을 듣는 것도 민망하고, 선택권도 없는데 일을 처리해 줘야 하니 주도적으로 하지 못하고 건건히 대표님께 보고하고 허락받고 하는 상황이었다.
나의 불편함을 느끼셨을까? 아니면 본인의 생각보다 일을 못해서 답답하셨을까? 겨울방학을 앞두고 나를 불러 말씀하셨다. (이 회사의 알바들은 학교가 방학을 하는 여름과 겨울에는 모두 쉬고, 새 학기가 되면 다시 출근을 한다. 그래서 엄마들에게는 꿈의 직장이었다.)
본인의 딸이 졸업을 앞두고 인턴으로 와서 일할 계획이니 그 아이에게 인수인계를 하고 방학 때 쉬라고 말이다.
순간 나도 모르게 섭섭함이 밀려왔다. 그동안 사정 봐주시고 챙겨주신 것은 감사했지만 이번에는 '이제 그만 버티고 좀 나가줄래?' 하는 소리로 들렸다. 인수인계를 받겠다고 딸이 출근했는데, 레시피를 정리한 엑셀 파일을 줬더니 자기만의 스타일로 만들겠다고 손으로 그림을 그리며 앉아있길래 더 할 말이 없어서 그냥 그동안 정리했던 파일을 폴더에 남겨두고, 혹시 업무에 문제가 생기면 유일하게 고통받을 사무관리 팀장님에게 대략적인 인수인계를 하고 방학을 맞이하며 나와 회사의 일 년 반의 시간도 마무리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