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남편이 산 자전거가 얼마인지 잘 모른다.
전체적으로 블랙 베이스에 강렬한 레드 컬러가 자전거를 타고 싶은 마음이 불타오르게 만드는 물건이라는 것, 날렵한 외관이 전문 라이더가 탈 듯한 느낌이라는 것, 머나먼 독일에서 건너왔다는 사실 정도는 안다. 모르긴 몰라도 자전거계의 샤넬 정도 급일지도 모른다. 가격을 알면 내 얼굴에 미소가 사라질 것 같으니 모르는 게 나을 테다. 그가 자신의 애마 자전거를 타고 행복하면 됐다.
남편은 내가 다니는 피부 관리샵 10회권 가격이 얼마인지 잘 모른다.
우리 집 아파트 상가에 있는 조그만 샵이라는 것, 칙칙했던 아내의 얼굴에 광이 나는 날과 관련이 있다는 것, 피부과 레이저보다는 저렴할 거라는 예상 정도만 할 것이다. 다음 날이면 별반 달라진 것 없는 피부에 그렇게 돈을 쓴다는 핀잔을 했다간 그날 밤 술자리에 못 나갈 수도 있다. 10년 차 남편의 경험으로 그저 얼굴이 좋다고 한 마디 하는 게 현명한 처사라는 걸 그도 잘 알고 있다.
우리 부부는 신혼 초에 재무설계 상담을 받은 적이 있다. 사실 상담을 받을 만큼의 재산은 없었지만 미래를 위해 좀 더 건설적인 재정 계획을 세우고 싶었다. 재무설계사는 각자의 수입과 보험, 대출, 고정 지출에 관한 사항을 물었다. 내 성과급은 쏙 빼놓고 말했다가 원천징수 영수증을 가져오라는 바람에 들통났던 기억이 난다.
이후 우리 부부는 한 명이 경제권을 갖지 않고, 고정 수입과 지출사항에 관한 모든 것을 리스트로 만들어 공유하고 관리했다. 각자의 용돈은 최소한으로 설정하고 생활했다. 그렇다고 완벽하게 돈을 모으고, 지출을 절제한 건 아니었다. 내가 직장을 그만두고, 아이를 낳고, 집을 옮기고, 여행을 다녀오고..... 삶의 많은 상황들이 밀물과 썰물처럼 끊임없이 변화했고, 경제적 상황도 따라 움직였다.
나의 경제적 심리 변화도 여러 단계를 거쳤다.
1단계 부정.
나는 현실을 부정했다. 월급 통장에 급여가 찍히지 않는다는 사실을 믿기 어려웠다. 아기는 모빌을 보다 잠들고, 분유를 먹다 또 잠들었다. 기저귀를 갈고, 포대기로 업어 재우는 일은 누군가에게 맡기고 나는 다시 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엄마가 아이를 맡아 키워준다고 했다면, 아이를 낳으면 3년은 엄마가 키워야 한다는 법륜스님의 방송을 듣지 않았더라면 나는 경력 단절을 막으러 나갔을 것이다.
2단계 체념.
남편이 이체해 주는 월급으로 위안을 삼고 체념했다. 내가 벌지 않아도 남편이 힘들게 벌어오는 돈을 쓸 수 있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3단계 저항감.
한 사람에게 경제권이 있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돈 버는 사람에게 타 쓰는 느낌은 지우기 어려웠다. 살림을 하다 보면 생활비가 계획 이상으로 지출될 때가 많았다. 매번 자잘한 사실을 남편과 의논하자니 마치 내가 과소비하는 사람 같기도 했다. 어느새 내 입에선 돈이 부족하다고 징징거리는 때가 많아졌다. 몇 년을 노력해 얻은 나의 자격증을 놀리기 아까워 다시 나가보자니 10년간의 공백에 사기가 저하되었다.
4단계 성장.
아기 엄마였을 때는 아장아장 걷다 다치지나 않을까 아기의 발밑 그림자만 보였다. 어린이를 키우는 엄마가 된 지금, 나는 아이를 둘러싼 더 큰 원을 보게 된다. 돈을 둘러싼 나의 시야도 달라졌다. 매달 월급날만 바라보며 쓰기 바빴던 날들, 사치하지 않으니 괜찮다는 안일한 생각, 좀 더 꼼꼼하게 관리하지 못했던 날들이 스쳤다. 매일 다른 컬러와 디자인의 옷을 입고 출근하던 나에게 며칠씩 같은 옷을 입으며 연금통장을 보여주던 직장 선배의 미소도 떠올랐다.
위기의식이 들었다.
내 통장이 비어 있다는 위기감. 나에게 열린 새로운 세계는 그것을 감지하는 데서 시작되었다. 비굴하게 가난해지지 않으면서 충만한 삶을 방해하지 않을 정도의 재산은 얼마만큼일까. 비자금을 모아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을까. 횡령죄로 고발되지 않으면서 어떤 방식으로 나는 그 자금을 모을 수 있을까. 그렇게 생각이 꼬리를 물자 돈보다도 돈에 대한 나만의 철학을 정립하는 일이 시급하다는 것을 느꼈다.
서로 사랑하는 마음과 별개로 각자 경제적 지식, 소비 습관, 가치관이 다른 부부들을 주변에서 많이 보게 된다. 내 눈에 부부에게 경제적 문제는 나이가 들수록 생존이자 안위, 아름다운 관계를 지키는 중요한 수단으로 보인다.
요리 전문가 이혜정이 남편과 함께 방송에 나오는 걸 본 적이 있다.
그녀가 요리를 배우고 싶어 남편에게 30만 원을 빌려달라고 했는데 거절당했던 게 두고두고 서운하다고 했다. 지금은 손주들이 경제적 상황이 더 넉넉한 할머니에게 장난감을 사달라고 온다는 말을 하며 그녀의 표정이 어찌나 통쾌하던지.
꼬박꼬박 가져다주던 남편의 당직비는 어느 날부턴가 자기 통장으로 이동했다. 퇴근길에 부탁한 딸기값을 은근히 모른 척하던 나에게 영수증이 첨부되어 돌아온다. 쪼잔하다고 생각하다가 나는 같은 직종에서 일하는 다른 남편들을 볼 때면 참 고생하네 혼잣말을 한다. 나도, 그도 세월의 파도를 서핑하며 변할 것이다. 우리의 영역은 서로 교차하며 동반자로 나아갈 것이다. 나는 얼마 되지 않을 남편의 통장 잔액에 대해 캐묻지 않는다. 나와 그의 연대 관계를 위하여.
우리에게 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경제적 거리 두기가 필요하다.
내밀하고도 물 흐르듯 유연한 그런 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