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적이 있다. 야심 차게 서랍장에 있는 옷을 다 꺼내 잘 입지 않는 옷, 세탁할 옷, 다시 개울 옷을 분류했다. 처음 열정과는 달리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지치기 시작했다. 다음 날은 간단한 정리조차 하기 싫어지기도 했다. 어떤 정리 전문가는 물건을 한꺼번에 다 꺼내지 말고 하루에 10분 정도만 정리를 시작해 보라고 권한다.
그때 이후로 나는 큰 마음 말고 작은 마음만 내어 틈틈이 팬트리 한 칸씩만 정리했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꼭 해야 하는 일,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일들을 행해야 할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엄청난 목표를 세우기보다 작은 습관을 설정하면 접근하기 쉬워지는 것 같다.
동화를 읽는 일도 그렇다.
작정하고 근엄하게 앉아 해리포터나 빨강 머리 앤을 읽으려 하면 부담스러워진다. 일단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 어른에게 동화를 읽는 일은 부담될 정도로 큰 노력과 열의가 필요한 건 아니다. 물론 바쁜 일상 속에서 내 책도 한자 읽기 어려운데 아이들 책을 읽는다는 건 심리적 여유가 있지 않고서는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동화는 접근하기 쉬운 점이 많다.
첫째, 가볍고 얇다. 모든 동화책이 그런 건 아니지만 대부분의 동화책들은 가방에 쏙 들어갈 정도로 가벼운 편이다. 어느 날부턴가 나는 독서모임에서 지정된 책을 읽을 때 한 챕터의 끝을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다. 그리 두꺼운 책이 아닌데도 언제 끝나나 하고 뒷장을 넘겨보곤 한다. 그런데 동화책 첫 페이지를 펴면 금방 이 책을 다 읽을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긴다.
둘째, 설명은 지루하지만 이야기는 재미있다. 그러니 동화를 펼치면 책장이 술술 넘어간다. 동화책들은 짧은 문장과 친절한 말투로 우리를 안내해 줄 수 있다.
준영이네 화장실에는 두꺼운 한 마리가 살고 있다. 하지만 준영이가 키우는 애완동물은 아니다. 모든 부모님이 그렇듯, 준영이네 부모님도 집 안에서 동물을 키우게 할 만큼 너그럽지가 못하다. 두꺼비가 화장실로 찾아온 건 며칠 전 일이다.
- 『화장실에 사는 두꺼비』 중
책을 펼치면 글씨 크기와 여백이 크고 넉넉한 데다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화장실에 두꺼비가 왜 찾아왔는지 말이다.
셋째, 동화는 어린이들이 주연이지만 우리 어른들도 조연으로 나온다. 이야기 속에는 아이들과 어른들의 일상이 담겨 있다. 재미있어서 읽다 보면 어른들도 숙연하게 만드는 아이들의 속내를 읽게 되기도 하고, 성숙하지 못한 조연들을 보며 거울모드로 반성하게 되기도 한다.
동화는 어른들이 볼 때 교육적이거나 유치할 거라 생각할 수 있지만 요즘 동화들을 읽어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동화 속은 몇십 년 전 교실이 아니라 부모님의 이혼, 가족이나 친구의 죽음과 상실, 10대의 연애 이야기 등이 담겨 있다. 아이들이 몰랐으면 하는 어두운 면들도 등장한다.
어린이 도서관에 가면 앞다투어 만화책을 읽고 있는 어린이들 사이에 탈출하기를 기다리고 있는 동화책들이 수두룩하다. 신간코너에 가서 제목이 끌리는 책을 꺼내 빌려도 되고, 유명한 동화책을 찾아 읽어봐도 좋다.
오늘 밤, 동화책을 펼쳐보면 어떨까.
아이들은 갑자기 안 하던 행동을 하는 엄마아빠를 이상한 눈빛으로 바라보거나 심지어 별 관심을 두지 않을 수도 있다. 실망하지 말고 매일 15분씩 딱 5권의 책만 읽어보면 동화책들과 친해질 수 있다.
결과를 기대하거나 의심하지 말고, 유난스럽다는 생각을 버리고 그냥 어린 시절로 돌아간 마음으로 읽어보는 거다. 그러다 아이가 엄마 그 책은 왜 읽는 거냐고 물으면 수다를 시작하는 시점이 될 수 있다. 궁금해하면 첫 번째 페이지를 읽어줄 수도 있다. 엄마가 읽어봤는데 너도 읽어보라고 의무를 지워주는 건 금물이다.
문해력, 독해력, 다독, 언어 영역, 국어 시험..... 이런 단어들을 모두 내려놓고 그저 재밌겠다는 마음으로 책을 펼쳐보는 것. 나는 이 마음이 책을 펼치는 동기이자 궁극적인 목적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아이들이 글로 된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계산 없이, 목표 없이 그저 낄낄대며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하루 15분, 세상 어린이들의 엄마, 아빠, 이모, 삼촌, 할머니, 할아버지, 선생님, 옆집 이모도 그랬으면 좋겠다. 숏츠 보는 일을 잠시 멈추고 동화책을 함께 펼쳐본다면 우리에게 잠깐이 아니라 계속 읽을 수 있는 생기가 돋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