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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인 Aug 11. 2022

아무래도 사업을 하는 게 나을까요

Vita Activa를 위하여 (1)

“회원님, 운동 빠지지 말고 매일 나오세요.”

“네. 최대한 노력해 볼게요.”

“뭐 사업하시는 거 아니죠?”

“아, 네.”

“아이들 학교 가면 시간 있잖아요. 놀지 말고 나와서 운동하세요.”     


속으로 피식 웃었다.

‘딱 봐도 아줌마처럼 보이나 보네.’


매일 운동하러 나오라는 트레이너의 격려인 줄 안다. 정색하며 나 그렇게 한가한 사람 아니라고, 여기도 겨우 시간 쪼개서 온 거라고 말하는 것도 웃긴 상황이었다. 그래도 한 마디 했다.  

“선생님, 사업 안 해도 놀 시간 별로 없어요. 나름 다 하는 일이 있죠.”


사실은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저기요, 총각. 잘 모르시나 본데 아줌마가 그렇게 한가한 사람은 아니에요.’

그는 나에 대한 개인적인 정보가 전혀 없었는데 나를 아이들 키우는 엄마로 넘겨짚었다.  




무슨 근거로?

나는 민트색 레깅스에 흰색 짧은 반팔티를 입고 긴 머리를 높게 묶고 있었다. 헬스장에서 제공하는 반팔과 반바지를 입어도 된다. 그러나 찜질방에 간 기분으로 운동하기는 싫다. 나는 운동할 때만큼은 하체의 지방을 최대한 끌어올려주는 레깅스를 입는다. 내 옷장은 주로 무채색의 옷들로 가득하다. 그중 운동복만큼은 내가 가진 옷 중 가장 과감하고 슬림하며 색감이 있는 옷들이다. 집에서 입는 원피스나 몸배 바지를 벗고 뱃살이 옷 밖으로 튀어나오지 않도록 배에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속옷 라인이 드러나지 않는지도 점검한다.



인바디를 체크했었나.

그랬다면 인바디 기계에 내 나이를 입력했을 테니 말이다. 기억을 더듬어봤지만 아니다. 나는 요즘 인바디 기계를 체크하지 않는다. 근육량과 체지방을 나타내는 숫자에 집착하지 않기로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는 새로운 트레이너다.


맞다. 명백한 근거는 바로 배에 있다. 뱃살이 아니고 튼살이다. 만약 크롭탑을 입었다면 두 번 부풀었다 꺼진 배의 튼살을 감출 수 없다. 나는 분명히 배 부분은 노출되지 않게 가리고 있었다. 스트레칭할 때 옷이 올라가서 살짝 보였을 수는 있다.


운동 외에 사적인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다. 내가 결혼을 했는지 안 했는지, 결혼을 했어도 아이가 있는지 없는지 그는 모를 일이다. 그는 아이들이 ‘학교에 가면’이라고 했으니 나의 나이를 초등학생 아이 정도 있는 학부모로 꿰뚫었다. 나를 40대로 본 걸까? 아, 억울하다. 나는 30대 마지막 해의 몸부림을 치는 중이니.


다크서클과 탄력이 떨어진 나의 얼굴을 보고 짐작한 것인가. 아니면 골반의 비대칭 때문일까. 트레이너들은 보통 엑스레이를 찍지 않아도 골반의 비뚤어짐을 투시할 수 있다.


아이들이 학교에 가면 시간이 있다는 것도 맞는 말이다. 집안을 정리하고 하교 시간인 오후 1시 30분까지 내 시간이 있다. 그가 말한 바로 ‘노는 시간’이다.


침대에 드러눕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누워 있어 봐야 다시 잘 것도 아니고 만성피로만 느낀다. 핸드폰을 붙들고 인스타그램과 쇼핑몰을 훑어보다가는 뇌가 급격히 퇴화됨을 느낀다. 사실 체력적으로, 정신적으로 너무 지쳐서 어떤 것도 하고자 하는 에너지가 없는 날들도 많이 겪는다. 그래도 누워버리면 엉덩이가 퍼진 아줌마가 될 것 같아 꾸역꾸역 일어나 본다.


운동할 때 나는 스트레칭부터 온갖 결림과 통증으로 5분에 한 번씩 신음소리를 내고 싶은 심정이다. 거울에 비친 내 몸을 보면 커피와 곁들인 달달한 디저트와 기운 떨어지면 안 된다며 흡입한 탄수화물들이 떠오른다. 후회하기엔 늦었지만 소소하게 근육들을 움직이며 더 나은 몸을 만들고 싶다는 욕구를 느낀다.


안 쓰던 근육을 조이고 이완하는 시간, 나의 정신도 같이 날카로워질 시간이 필요하다. 마냥 자유롭고 즐겁지 않을지도 모른다. 클럽에 가서 마가리타를 한잔 털어 넣고 춤추는 것만큼 자극적이지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홍삼보다 궁극적인 기력을 찾아 가보는 거다.




결론적으로 그의 짐작은 정확했다. 나이가 그쯤이려니, 그쯤이면 결혼해서 아이가 있겠거니 하고 별 영혼 없이 던진 말에 혼자 따지고 들며 분석하는 꼴이 더 아줌마 같다는 걸 나도 알고 있다.  


나는 어떤 모습의 아줌마인가.

‘딱’ 봐도 아줌마는 어떤 느낌인가. 아줌마처럼 보이지 않는 평가 기준은 무엇인가.

보톡스로 마비시킨 주름과 탄력 레이저로 끌어올린 얼굴인가. 평상복으로 레깅스와 크롭탑을 입을 수 있는 정도의 몸매인가.


내 심보는 또 어떤가.

아줌마처럼 보이기 싫은 심산인가. 그런 비현실적인 욕심은 친한 친구에게 장난 삼아 말하기도 민망하다. 그럼 김희애처럼 예쁘고 날씬한 아줌마이고 싶은가. 매일 거울을 들여다보며 1일 1팩을 하고 피부과를 정기적으로 방문하며 커피에 디저트는 사양하는 아줌마가 될 수 있는가. 힘내야 한다고 밥을 한 공기 다 먹지 말고 아쉬울 때 수저를 놓고 아령을 들 수 있는가.      




내일 트레이너에게 물어야겠다.

놀지 않고 매일 나와서 운동하는 아줌마 회원은 무엇을 얻을 수 있나요. 애초에 제 몸매는 전성기였던 적이 없었고 지금 제 에너지로는 현상 유지도 힘들어 보입니다.

아무래도 사업을 하는 게 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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