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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인 Oct 27. 2022

저, 무슨 일 없습니다.

Vita Activa를 위하여 (7)

어느 날, 유치원 버스 기사님이 출발해서 가다가 차를 멈추었다.


“어머니, 무슨 일 있으세요? 달려오시길래 놀라서 멈췄어요.”
“아, 아니에요. 저 운동하느라 달린 거예요. 죄송해요.”

민망한 날이었다.

버스 기사님과 선생님이 내가 달리는 모습을 보고 멈춰 선 거였다. 기사님은 백미러로 나를 보고 버스를 향해 달려오는 걸로 생각했을 것이다. 분명히 방금까지 창문을 향해 열심히 손을 흔들던 엄마가 무슨 급한 일이 일로 달려오나 하고 말이다.

 

오해의 그날은 동네 한 바퀴를 달리기로 마음먹고 시작한 날이었다. 허벅지에 쌓인 지방은 영영 안 빠질까 묻는 나의 말에 남편은 러닝을 해보라고 권유했다. 한혜진 바디 북에서 본 러닝 사진이 떠올랐다. 노을이 지는 해 아래 머리를 높게 묶고 운동복을 입고 뛰는 날씬한 한 여자가 나라는 상상을 하며. 모델 한혜진 대신 그 자리에 나를 넣으니 갑자기 환상이 확 깨졌다.


러닝보다는 천천히 아파트 계단을 오르는 일이 나에게 익숙하고 어울렸다. 세월아 네월아 걷던 나는 무거운 발걸음을 조금씩 빠르게 움직여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야말로 아파트 단지만 한 바퀴 돌고 숨이 찼다. 걷는 일보다 금방 지치고 힘들게 느껴졌다.




돌아보면 나에게 달리기는 무섭기만 한 일이었다.

초등학교 운동회는 제일 신나는 날 중의 하나였지만 오후가 되면 내 마음은 불편해졌다. 운동회의 하이라이트인 ‘달리기’ 경기가 있으니 말이다. 학년별로 모이라는 구령대의 체육선생님 방송에 가슴이 콩닥 뛰기 시작했다.



다섯 명씩 한 줄로 나란히 서기.

첫 번째와 두 번째 줄 아이들은 서 있고 나머지는 앉아서 재잘대며 장난을 치거나 흙에 그림을 그렸다. 나는 같은 조에 있는 아이들을 흘끔 쳐다보았다. 혹시나 운이 좋아서 나보다 둔한 아이들이 많아 내가 1등을 할 일은 없을까. 잠깐이나마 상상했다. 어서 이 순간이 지나가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한 줄 한 줄 앞으로 당겨질 때마다 떨리는 내 심장 소리는 더욱 커져갔다. 드디어 내가 맨 앞줄이 되었다. 선생님은 총을 손 위로 높이 뻗었고 우리는 두 손끝을 세우고 앉은 채로 준비 자세를 취했다. 탕! 그 뒤로는 어떻게 뛰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두 팔을 그리고 두 다리를 바람에 휘날리며 열심히 움직였을 것이다. 멀리서 제일 먼저 테이프를 끊은 친구를 바라보며 힘겹게 들어왔을 것이다. 결승선으로 들어와 긴장이 풀리면 그제야 엄마의 얼굴이 보였을 것이다.


다 같이 하얀 분필로 그은 줄에 서서 같은 시각, 같은 자세로 출발했다. 누군가는 앞서고 누군가는 뒤처지는 경기가 버거웠다. 온 힘을 다해 달려도 1등, 2등, 3등을 알리는 깃발을 바라만 봐야 하는 일이 나 자신을 작게 만들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나는 더 이상 그 총소리를 듣지 않아도 되었다. 체육대회에서는 내가 달리지 않아도 대표로 뽑힌 친구들의 경기만 응원하면 되었다. 물론 체력장 때 앞구르기인지 옆구르기인지 모를 구르기를 하고, 멀리뛰기에서 걸어도 갈 수 있을만한 기록을 하고, 철봉에 매달리자마자 떨어지는 굴욕을 겪어야 했지만 그때 그 총소리만큼 긴장되지는 않았다.


달리기는 그렇게 나에게 힘겨운 일이었다. 어른이 되어도 달리기는 나와 먼 단어였다.

또다시 달리기를 해야 했던 날은 2년 전, 딸의 유치원 체육대회날이었다.


“청팀, 홍팀 각 팀에서 15분씩 어머님들 나와주세요.”


남의 일인 양 허공을 바라보고 있는 내 등을 누군가 톡톡 두드렸다. 그리고 눈빛으로 말했다.


‘엄마, 안 나가고 뭐해.’


‘설마 나보고 달리기 하러 나가라는 건 아니겠지. 엄마는 아니야.’


다섯 명씩 한 줄. 어느새 나는 친구 엄마들과 다시 한 줄로 서 있었다. 엄마를 외치며 결승선에 서 있는 아이가 보인다. 거기만 보고 달렸다. 일등, 이등에게 주는 키친타월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날은 내 몸이 좀 더 가볍게 느껴졌다. 육상선수처럼 달리지는 못해도 아이를 위해 달린다는 마음이 달랐을 것이다.


이제 나는 다섯 명씩 한 줄로 서서 총소리를 듣고 달리지 않아도 된다. 내 호흡과 발걸음의 속도를 마음대로 조절해도 된다.

 



러닝머신 위에서보다는 더워도, 추워도 동네를 뛰는 게 좋아졌다. 더 이상 뛰지 못하겠다 생각할 때 머리가 맑아진다. 복잡했던 많은 일들의 군더더기가 떨어져 나가는 기분이다.


동네 한 바퀴를 달리기 시작한 내가 마라톤을 한다던가 10킬로미터씩 훌쩍 뛸 수 있는 사람이 된 건 아니다. 이제 겨우 동네 세 바퀴 정도 달릴 수 있는 수준이다. 세차를 맡기고 택시 타고 집에 오는 대신 집까지 20분은 거뜬히 뛰겠다는 의지가 바뀌었을 뿐이다. 아이들이 얼음땡 놀이를 하자고 하면 거절하지 않고 뛰는 속도가 눈곱만큼 빨라진 것뿐이다.


달리고 계단을 오르는 일은 운동을 나의 일상 안쪽으로 밀착시키는 일이 되었다. 

헬스장에 가지 않아도 틈 날 때마다 가볍게 뛰고 집에 와서 아령을 몇번 들었다 놓고 샤워한다. 운동을 하겠다고 거창하게 시간을 만들고 돈을 들여 레깅스로 갈아입는 일을 매일 할 수는 없으니 운동화만 신으면 할 수 있는 일을 해 본다.


무슨 일이 없어도 그저 뛰는 일이 즐거워지는 날까지.     


그날 이후로 기사님은 내가 달려도 멈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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