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세인 Oct 22. 2023

전지적 관찰자 시점

그녀의 컬러벨트 (10)

플라톤이 레슬링 선수였다니.

그 사실을 알게 된 건 『스웨트』를 읽고 난 후였다. 플라톤은 고대 그리스의 4대 운동 축제에 출전할 정도로 뛰어난 실력의 레슬링 선수였다고 한다. 그는 『국가론』에서 신체를 단련할 때는 절제할 줄 알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무엇이든 지나칠 정도로 하지 말아야 하며, 이 원칙을 따른다면 ‘아주 심각한 경우를 제외하고 약으로부터 독립된’ 삶을 살 수 있을 거라고 말한다.


나는 30대부터 60대가 된 지금껏 운동하는 엄마를 보며 살아왔다.

내가 엄마를 보며 배운 건 격렬히 운동하는 삶이 아니다. 약을 필요로 하지 않을만큼 자신을 밀어붙이기는 하지만 운동선수처럼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운동은 아니다. 일상과 운동이 오랜 친구가 되도록 하는 삶이다.


3개월 빡세게 운동해서 바디 프로필을 찍어보겠다는 나에게 그런 프로필은 찍지도 말라 한다. 몸만 상한다고.평소에 준비가 되어 있는 몸이어야 한다고. 말도 안된다고 반박한 나는 빡세게 운동할 체력도 되지 않을뿐더러 엄마의 민첩함은 따라가지도 못한다. 덕분에 나는 하루 복근 운동하고 하루는 지방으로 다시 덮여 몇 년째 나의 야심찬 계획은 제자리다.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고 오는 길엔 11층 집까지 계단 오르기, 아침엔 에어로빅과 헬스, 사계절 내내 날씨와 상관없이 주말이면 등산 가는 엄마. 해가 가도 엄마의 운동은 변함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엄마의 갱년기 전 긴장하고 있었지만 무난하게 지나가는 모습을 지켜봤다. 선천적인 기관지 질환으로 에어컨만 쐬면 기침을 하긴 하지만 엄마가 어깨나 고관절이 아프다고 하는 걸 들어본 적이 없다.


운동은 엄마에게 정신적으로 균형감을 잃지 않으려는 장치이기도 했다. 우울감이나 부정적인 에너지가 덮치려 할 때, 자신의 힘으로 어서 반대편으로 가보려는 노력이었다.




예순이 넘어 엄마는 매일 컬러벨트를 맸다.


그녀는 흰 띠를 매고, 태권도장 옆을 서성이던 10살 소녀와 중년이 된 자신의 마음 안에 연속성을 연결시켰다. 일상의 리듬을 한층 고양시켰다. 흰 띠는 시작과 용기였다.
노란 띠를 매고, 그녀는 자기 안에 꿈틀대는 열정에 충실했다.
파란 띠를 매고는 인내하고 또 인내했다. 신체를 단련하는 시간이 결코 쉽고 유쾌하지만은 않지만 반복의 힘을 믿었다.
빨간 띠를 매고 고관절과 몸의 잘잘한 근육까지 짜내어 썼다. 몸과 마음의 역동성을 누리며.     


엄마는 국기원 심사를 보고 얼마 후, 검은띠를 받았다. 검은띠의 의미는 ‘완성’이다. 태권도의 기본동작을 익혔다는 뜻이다. 흰 띠가 검은색으로 변할 때까지 오랜 시간 동안 수련을 했다는 땀의 표시이기도 하다.

관장님이 검은 띠를 주시며 말씀하셨다.


“선생님, 8장까지 다 끝냈으니 고려 품새 배우셔야죠. 지금부터는 이전보다 힘을 빼고 유연하고 크게 동작을 하시게요.”

엄마는 태권도 3단까지는 따고 싶다고 했다. 검정띠를 허리에 묶고 엄마는 새로운 품새를 배운다. 한층 여유 있는 포스로, 그러나 겸손하게. 배운지 며칠 안됐는데 고려 품새를 다 외워버린 어린이 동기수련생들을 보니 다시 긴장 모드로.


태권도 휴가를 맞아 우리집을 찾은 엄마는 손주에게 품새를 알려주느라 바빴다. 거듭옆차기를 나도 옆에서 살짝 따라해 봤더니 멋있었다. 20대에 배웠던 태권도 발차기 감각이 살아날 것만 같았다. 엄마가 나에게 다시 태권도를 배우라고 할까봐 혼자 속으로만 생각했다.     


몸을 움직여 어제 쌓은 에너지로 새로운 오늘을 보낼 수 있다고 믿는 것.

엄마의 엄청난 에너지는 거기서 뿜어져 나오는 것이 틀림없다.


이제 다시 새로운 시작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