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창한 날이면 아이들은 놀이터에서 몇 시간을 노느라 태권도장을 땡땡이치곤 했다.
학교에서 체험학습을 다녀온 날은 피곤하다고 했다. 이제 좀 열심히 태권도장에 가 봐야지 싶으면 감기에 걸렸다. 나는 같은 상황에 아이들에게 영어 학원은 빠지면 안 된다고 했지만 태권도는 쉽게 결석하도록 허락했다. 그렇게 1학년 때부터 도장에 다니던 아이들은 1년이 훌쩍 지나도 검빨간 띠를 맬 수 없었다.
나는 어제 한 시간 운동했다면 오늘은 푹 쉬었다. 마음먹고 운동 좀 하려고 하면 여자들의 생리 증후군이 다가왔다. 그러다 어쩔 수 없이 운동을 하게 된 날이 있었다. 최대한 움직이지 않고 의자에 앉아서 가슴이나 등, 코어 운동을 했다. 다른 때 같으면 핫팩을 배 위에 올려놓고 침대에 누워 있었을 거다. 나는 그날 나의 뇌가 몸을 속이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남편이 철인 3종 경기가 끝난 다음날 달리기를 하러 간다는 말에 나는 남편이 정말 운동 중독인가 생각했다. 다음 날 조금씩 달려서 무리하게 쓴 근육들을 풀어줘야 한다는 사실을 몰랐다. 나라면 타이레놀을 먹었을 텐데 말이다.
엄마는 특별한 일이 아니면 태권도장에 결석하는 법이 없다.
다시 돌아오는 일이 있더라도 일단 간다. 옆에서 나는 오늘은 피곤할 텐데 하루 쉬지 그러냐고 말씀드려도 엄마는 가방을 들고 나선다. 하루 쉬고 이틀 쉬면 또 쉽게 쉬게 될 거라고. 마치 땅 속 깊이 뿌리를 내린 커다란 나무처럼 내가 유혹해도 엄마는 넘어가지 않는다. 공휴일 쉬고 주말 쉬면 평일에 매일 간다 해도 수련시간이 얼마 되지 않는다며. 하긴 하늘까지 올라갈 듯한 선수들의 앞발차기와 발끝과 허리가 정확히 일직선을 이루는 옆차기가 하루 한두 시간으로 나왔겠는가.
엄마의 첫 관장님은 품새 동작과 발차기를 할 때 힘을 빼고 유연하게 하라고 얘기하셨다. 모든 스포츠에서 힘을 뺄 수 있다는 건 고수의 영역이다. 다리의 힘을 다 빼고 힘없이 차라는 말이 아니다.
허벅지 뒤쪽의 대퇴 이두근 힘은 빼고 앞쪽 대퇴 사두근의 힘을 이용해 다리를 쭉 뻗어주라는 것이다. 대퇴 이두근과 사두근이 어디에 붙어 있는지 잘 모르거니와 안다고 해도 그 부위에 힘을 주고 빼는 것이 어디 마음대로 될 일인가. 쓸모없는 쪽의 근육은 덜 쓰고 정말 필요한 근육을 사용할 수 있다면 엄마는 고수가 될 것이다.
엄마가 새로 옮긴 도장은 2시 반부터 10시까지 조명이 환하게 켜진 곳이다.
유치부, 초등부 수련이 끝나면 선수반 훈련이 시작된다. 국가대표 선발전에 나가는 고등학생들도 있다. 저녁 타임은 일반 수련생 중에도 지도할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을 갖춘 학생이 많다. 엄마가 전에 다니던 도장은 한 타임에 열 명 남짓한 아이들이 다니는 작은 도장이었다. 지금 이곳은 사범님이 다섯 분, 대표 사범님 한 분, 명예9단 관장님 한 분이 계신다.
엄마는 도장을 옮기고 처음에는 적응하기 힘들어했다.
전에는 줄넘기와 발차기, 품새를 매일 하는 루틴이었다. 이곳은 달랐다. 일주일에 한 번은 관장님이 오셔서 실용태권도를 지도했다. 태권도 기술을 향상하기 위해 기반이 되는 여러 가지 운동들을 했다. 어떤 날은 헬스장에 온 것처럼 스쾃와 런지를 하기도 하고, 어떤 날은 손가락 모양 하나까지 품새 동작을 하나하나 정확히 짚고 넘어갔다.
하나의 동작을 위한 예비동작과 원리까지 이해하고 배우는 게 쉽지 않았다. 매일 미트 발차기만 뻥뻥 차다가 발레바처럼 바를 잡고 옆차기를 제대로 하려니 골반과 고관절이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이다. 그나마 엄마가 그간 고관절을 잘 관리해 왔으니 다음 날 괜찮은 상태로 버틸 수 있는 정도다.
맨손 무술인 태권도를 배운다는 건 인체라는 무기를 가지고 자신을 단련시키는 일이다. 20대라도 게을리하면 몸이 알아챌 것이다. 엄마가 20대 청년들과 한 공간에서 운동하며 아이고 소리를 내지 않고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매일의 힘’이었다.
나처럼 체력적, 정신적 적당주의를 멀리하며 하고자 하는 일을 향한 그릿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또래 친구가 많은 요가수업도 아닌데 혼자라도 그저 발걸음을 떼 매일 수련장에 갔기 때문이다. 가만히 있으면 유연성과 근력이 급속도로 빠지는 노화의 길 가운데 서서도 근육이 경직되지 않도록 움직였기 때문이다.
그릿이란 한 번에 한 걸음씩 계속 나아가는 것이다. 흥미롭고 목적이 뚜렷한 목표를 굳건히 지키는 것이다. 매일, 몇 주씩, 몇 해씩 도전적으로 뚜렷한 목표를 굳건히 지키는 것이다. 일곱 번 넘어지면 여덟 번 일어나는 것이다.
-『그릿』 p.358 중
도장은 엄마가 자신을 관찰해서 발견한 열정과 그만두지 않는 힘을 발휘하는 운동장이다. 엄마가 가진 그릿이라면 허벅지 앞쪽 대퇴사두근을 조만간 쓰게 될지도 모른다. 힘을 빼고 유연하게.
외할머니의 상담을 따라간 날 봤던 언니오빠들의 발차기가 어찌나 멋있었던지 우리 집 아이들도 도장을 한 번 옮겨보고 싶다고 했다. 며칠 다니더니, 아이들은 울상이 되기 시작했다. 피구하는 시간이 없어서였는지, 발차기만 한 시간 동안 하는 날이 힘들었던지, 언니오빠의 발차기와 자신들의 발차기에 너무 큰 간극을 느껴서인지 나도 잘 모른다.
“엄마, 오늘만 쉬면 안 돼?”
엄마 대답을 듣기도 전에 두 아이는 조용히 외할머니에게 목덜미를 잡혀 끌려간다. 나는 그저 엘리베이터 앞에서 윙크와 함께 바이바이를 하는 수밖에. 매일 가면 선수가 될 것만 같아 적당히 하려는 우리의 정신력으로는 영영 돌려차기는 못할지도 모른다는 눈빛으로.
오늘만 쉬면 안 될 것 같다.
내일은 오늘에 달려 있으니. 이제 영어학원은 빠져도 태권도는 빠질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