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디자이너인 친구가 나에게 뿌리염색에 추가로 새치염색을 해야겠다고 말했을 때 나는 그러려니 했다. 내 눈에는 잘 안 보이니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이마 주름은 보톡스를 잘 놓는 피부과 원장님을 찾아가면 얼마간은 해결됐다. 앞머리 쪽에 드문드문 하얀 새치가 내 눈에 띄기 시작했을 때 짜증이 나긴 했지만 반대쪽 가르마에 있는 머리를 가져와 살짝 덮어보거나 헤어샵 예약을 했다.
주변 언니들이 마흔이 되면 이상하게 몸이 아프더라고 할 때도 남의 일인 줄 알았다. 갱년기 전까지 나는 10년가량 시간이 남았고, 만 나이로는 30대니까. 마흔이 된 해 겨울, 어린아이들과 노인들만 걸리는 줄 알았던 폐렴 진단을 받았다. 2주분의 항생제면 금방 나을 거라 생각했다.
뒤이어 축농증이 이마까지 찼고, 의사는 스테로이드를 추가로 처방했다. 한 달 후에도 낫지 않으면 수술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말을 듣자 덜컥 겁이 났다. 마흔 앓이가 약간의 우울함과 스트레스를 동반하자 나는 침대로 기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의사는 괜찮아졌다는데 나는 가방에 늘 약을 상비하고 다녔다.
일상은 엉망이 되었다.
아파도 아이들은 돌봐야 하고 남편에게 계속 아픈 모습을 보이는 것도 미안해졌다. 천천히 움직여봐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몇 달 동안 운동과 멀어진 몸은 스트레칭만 해도 돌덩이 같았다. 누워서 유튜브를 켜면 알고리즘에 자꾸 건강과 관련된 콘텐츠가 떴다. 자꾸 암 얘기가 나오니 무섭기도 했다. 이 의사 이야기를 들으면 당장 비타민을 먹어야 할 것 같고, 저 의사 말을 들으면 양배추와 ABC 주스만 먹어도 나을 것 같았다.
그러다 ‘노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노년내과 의사의 방송을 보게 되었다. 그제야 나와 관련이 없다고 생각했던 노화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정확히 말하면 지금부터 어떻게 노화의 길을 걸어야 할 것인지 고민하게 되었다.
그가 쓴 책 『느리게 나이 드는 습관』을 주문했다. 수많은 노인 분들의 진료를 보는 그는 ‘잘 나이 드는 것’은 젊어서부터 노화 속도를 적절히 늦추어 가면서 질병과 노쇠의 축적을 줄여 ‘노인의 몸’을 가지게 되는 시점을 미루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 노화를 가속하는 페달이 무엇인지는 예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운동하는 일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서다. 그러기에 우리는 초가공식품의 천국에 살고 있고, 미국 주식장은 밤 10시에 시작하며, 제대로 운동하기에는 하루하루가 너무 바쁘다.
나는 필요한 열량에 비해 주섬주섬 집어먹는 온갖 간식에 탄수화물까지 먹는 양이 많다. 다행히 베개에 머리만 대면 잘 수 있으니 잘 자는 건 자신 있다. 운동은 나름대로 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책을 읽어보니 흉내만 내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그는 70대, 80대가 되어 자신의 진료실에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걸어 들어올 수 있으려면 세 가지 운동을 해야 한다고 했다.
밸런스 운동, 유산소 운동, 근력 운동.
유연성이 떨어지면 우리 몸의 움직임은 가동범위가 제한되고, 신체 기능이 저하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국제 운동 가이드라인을 보면 중강도 이상으로 숨 가쁘게 하는 유산소운동을 주 2~3회 하는 편이 좋다. 정상적으로 일상 활동을 할 때 근육량은 1년에 1퍼센트 정도 감소하는데 침상에 누워있으면 하루에 1퍼센트씩 감소한다고 하니 근육 운동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종합해 보면 노화 속도를 늦추기 위해서는 일주일에 두 번 중강도 유산소 운동, 두 번 근력 운동, 스트레칭이나 밸런스 운동은 되도록 매일 해야 한다는 얘기다. 맨발 걷기만 열심히 한다고 근감소증을 피하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현실적으로 한창 바쁜 30~40대가 세 가지 운동을 제대로 하기에는 어려워 보였다.
나는 주차장에 들어서면 몇 발자국 덜 걸으려고 최대한 엘리베이터에서 가까운 자리를 찾았다. 유산소 운동은 일주일에 한두 번 이삼십 분 정도 하고, 요가 수업 두 번, 근력 운동 한 번 하는 정도다. 집에 있는 아령과 복근 운동 롤러는 장식품이 된 지 오래다.
내 주위를 둘러보니 세 가지 운동은커녕 한 가지도 제대로 하고 있는 사람은 찾기 어려웠다. 다이어트를 위한 유산소 운동이 아닌, 바디 프로필을 찍기 위한 근력 운동이 아닌 진정으로 나의 몸과 정신이 건강한 상태로 오래 유지할 수 있는 전략이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알았으니 이제 해내면 된다.
모든 문제는 노쇠하지 않은 몸을 만들면 예방할 수 있다.
- 『느리게 나이 드는 습관』 p. 172
문제는 어떤 상황에도 지속적으로 운동할 수 있는 방도를 마련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운동을 내 몸에 자연스럽게 스며들도록 해야 한다. 여러 근육을 움직여본 경험을 쌓으면 근육들이 말을 건다. 이제 움직일 때가 되었다고. 안 하고는 못 배기게 된다.
나는 매일 이런 사람들을 보며 산다.
남편은 이삼일에 한 번은 10km를 뛰고서 온몸이 흠뻑 땀에 젖어 들어온다. 그는 일하느라 앉아 있는 시간이 많아 운동을 하지 않으면 몸이 결리고 숙면에 들지 못한다. 시간을 쪼개고 쪼개 운동을 하려고 노력한다. 출근 전, 새벽에 일어나 근력운동을 하고 퇴근 후에는 달리기를 한다.
나는 수학숙제를 독촉하는 지금 나 같은 엄마가 아닌 티셔츠 안에 탱크톱을 입고 운동하러 나가는 엄마의 뒷모습을 보며 자랐다. 엄마는 매일 아침 요가 또는 근력 운동을 하고 저녁에는 태권도를 배우러 간다. 아마 온몸의 근육들을 움직여야 엄마의 하루 운동은 끝이 날 것이다.
돌아보면 두 사람이 감기에 걸리는 경우를 거의 보지 못했다. 나처럼 감기에 걸리더라도 동네 의원을 찾아가 마늘 주사를 맞으러 가는 경우도 거의 없다. 아프더라도 회복 탄력이 빠르다. 이런 사람들 사이에서 나의 운동은 귀여운 수준이다.
나는 요즘 운동 전도사가 된 것 같다.
“언니, 살 빠진 거 같아. 요즘 운동해?”
“응. 요즘 아침마다 6km 정도 뛰어.”
“어쩐지. 너무 잘하고 있네. 언니 근데 근력 운동도 하고 있어? 요가도 같이 하면 어때.”
지금 시작하지 않으면 근육들이 놀랠 것이다. 왜 이제 와서 아는 척을 하느냐고.
나도 이제부터 제대로 해야겠다. 흉내만 내지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