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작가는 우리에게 번역본이 아닌 원어로 노벨 문학상 작품을 읽게 해 준 최초의 인물로 두고두고 기억될 것이다. 도서관에 있는 손흥민 선수와 리오넬 메시 선수의 만화 위인전은 수많은 남자 어린이들의 손을 거쳐 표지가 너덜너덜해져있다. 250억 원을 들여서라도 점심 한끼를 같이 하고 싶어하는 사람, 워런 버핏은 월가의 전설로 남을 것이다.
세상엔 전설로 남겨진 인물이 참 많다. 자기 분야에 최고의 업적을 남긴 이들이다. 그들은 사실 나와는 너무 다른 사람으로 여겨진다. 나는 영영 그런 인물이 될 수 없을 것 같아서다.
일기 수준의 글을 쓰는데도 어깨와 목이 디스크에 걸릴 지경인데 치밀하게 파고드는 문장들을 써내는 한강 작가의 몸은 괜찮은지 모르겠다. 아들이 자기는 반드시 손흥민 선수 같은 축구선수가 될 거라고 말할 때 나는 공부가 더 빠른 길이라고 말하고 싶은 충동을 누르려 애쓴다. 따라하다가는 가랑이가 찢어질 것 같기도 하다가 그런 노력이나 해본 적이 있나 하는 생각에 피식 웃기도 한다. 그들을 향한 한없는 존경심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나와는 간극이 느껴지곤 했다.
어느 날 엄마가 그런 말을 했다.
“엊그제 도서관에서 책을 읽다가 그런 생각이 들더라.
책 속엔 전설이 된 사람들 이야기가 많이 나오잖아.그 사람들이 대단하다고 감탄만 하고 있을게 아니라 내가 전설이 되면 어떨까 하는 생각 말이야.”
엄마가 연결한 ‘나’와 ‘전설’은 낯설었다. 엄마가 혹시 시니어 태권도 선수라도 된다고 할까봐 맞장구를 치지 못했다. 엄마는 한다면 하는 사람이니까.
사실 속으로는 깜짝 놀랐다. 멋있었다. 엄마의 한마디, ‘내가 전설이 되면 된다’는 나의 뇌리에 간간이 울렸다. 꽤 강렬하면서도 은은하게.
진짜 그럴 수 있을까.
나도 누군가에게 전설의 인물이 될 수 있을까. 무엇으로. 가십이 아니라 전설이 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나는 무언가에서 대단한 성과를 내기엔 늦은 거 같은데 말이다. 직장을 그만 둔지 오래고, 집안 살림과 요리를 잘해서 유튜브를 찍기도 어려울 거 같다. 야무지게 아이들을 공부시켜 하버드 대학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엄마는 이미 중년이다. 100세 시대라 하지만 엄마도 가끔 나이를 실감한다고 말한다. 무슨 베짱으로 엄마는 그런 말을 한 걸까.
‘전설’이라는 단어는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라는 뜻이다. 어쩌면 사전적인 의미처럼 대단한 업적이 아니더라도, 세월이 흘러 생명과 소멸에 풍화되면서도 우리에게 남는 무언가가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꼬리를 물고 내려왔다.
최은영 작가의 『밝은 밤』 속 할머니가 떠올랐다. 소설 속 주인공 지연은 할머니의 방에서 박스에 담긴 편지들을 발견한다. 수십 통의 편지에는 할머니와 증조할머니, 주변 사람들의 굴곡진 삶 속에서도 살아남은 사소한 따뜻함들이 담겨 있었다. 그들의 이야기와 할머니가 차려준 구운 박대와 무조림, 밤과 강낭콩을 넣은 밥은 지연에게 어두운 밤이라 느꼈던 삶에 한 줄기 빛을 비춘다.
교사 시절, 내가 참 좋아하는 선배 선생님이 계셨다. 선생님은 큰 지팡이를 들고 다니며 아이들에게 매일 ‘나이스 데이’를 외쳤다. 모의고사 성적에 심각해 있다가도 아이들은 선생님을 보면 환히 웃으며 덩달아 나이스 데이를 외치곤 했다. 신입 교사인 나에게 선생님이 하신 말씀을 나는 생생히 기억한다.
“한 놈의 인생만 구해도 네 교사 인생은 성공한 거다.”
성공하기 전에 나의 교사 시절은 끝났지만 선생님이 세상을 떠난 후에도 나는 그 말을 기억하려 애썼다. 서울대를 보내는 것이 인생을 구하는 것이라는 말씀은 아니었을 테다. 나에게 한 놈의 인생을 구할 능력은 없었지만 야간자율학습 시간에 오늘따라 표정이 좋아 보이지 않는 놈을 불러다 학교 주위를 한 바퀴 함께 걷곤 했다.
성적 떨어졌다고 잔소리 들을 각오를 하고 나온 아이들은 요즘 어떠냐고 묻는 나에게 가정사를 이야기하기도 했다. 밤에 게임 좀 그만하고 공부하라는 잔소리로 마무리하고 보냈지만 나는 선생님이 외친 나이스데이를 나만의 방식으로 외쳐야 할 것 같았다.
키가 작고 야무진 한 여자 아이는 엄마에게 와 머리를 묶어달라 하기도 한단다. 자기의 꿈은 국가대표 선수라고 살짝 이야기하며. 도장에 많은 아이들은 할머니가 와서 운동을 하는 모습이 처음엔 어색했겠지만 이제 적응했을 것이다. 먼 훗날 그 아이들이 나이가 들었을 때 엄마의 모습이 다시 도장을 찾을 용기로 마음 한 켠에 남아있을지 모른다.
나에게 엄마의 일상은 하얀 눈밭에 첫 발자국을 내는 사람의 이야기 같다. 성공의 여부와 상관없이 용기와 도전의 점을 찍어 놓으면 다음 사람이 그 길을 따라갈 수 있으니까. 엄마의 도전 그리고 자신이 선택한 도전에 임하는 정신력과 자신만의 태도와 철학이 나에게 이미 훌륭한 전설이다. 가끔 나에게 태권도 배울 생각 없냐고 무서운 질문을 할 때만 빼고.
우리 모두의 이야기는 다음 세대의 아들 딸과 손주들에게 전해질 것이다. 노벨상을 남기지 못해도 우리는 각자 고유한 생의 영역을 걸어간다. 엄마와 할머니의 이야기, 증조할아버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면 그들 모두 전설이 된다. 나는 엄마의 말을 그렇게 해석하기로 했다.
이제 나는 어떤 전설이 될 것인지만 결정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