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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인 Jun 20. 2024

AI내니가 엄마라면

유튜브 알고리즘이 ‘금쪽같은 내새끼’ 방송을 추천해줄 때가 있다.

아이들의 ADHD나 틱 장애는 이제 낯설지 않은 용어가 되었고, 휴대폰 중독으로 부모와 갈등을 겪는 것도 익숙한 장면이다. 부모나 형제자매를 향한 폭력성이 나타나는 연령대도 점점 낮아지는 듯하다. 아이들의 문제행동을 보면 처음에는 깜짝 놀라지만 일상 속에서 부모와의 상호작용을 보면 차츰 이해하게 된다. 99 퍼센트의 문제는 부모로부터 비롯된다.


얼마 전, 아이들과 AI 박람회에 간 적이 있다.

방송에 등장했던 코끼리 모양의 AI 스피커 체험 부스가 보였다. 아이들은 반갑게 달려가 금쪽이 스피커와 대화를 나눴다. 우리 집에도 그 스피커를 사 가고 싶다고 했다. 신기하게도 방송에 등장하는 아이들은 AI 스피커에게 자신의 속마음을 말해 주었다.


나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이 내가 아닌 AI 스피커에게 속마음을 말하게 되는 날이 오는 건 아닐까. 나는 늘 지적질과 조언을 아끼지 않으니 말이다. 사춘기가 되어 문을 닫고 들어가면 AI와 대화하는 걸 더 좋아하지 않을까.




그런 와중에 나는 도서관에서 초록색 표지에 ‘에이아이 내니’라고 적힌 한 동화책을 보게 되었다. 사람의 모습이지만 눈은 초록색에 머리가 없는 모습이 로봇 같기도 했다. 처음엔 제목만 보고 지나쳤다. 그림이나 전체적인 느낌이 딱딱해 보였다. 그런데 나도 모르게 다른 책들을 보다가 다시 돌아와 펼쳐봤다. 매일 신문에서 AI라는 단어를 하루도 빠짐없이 보지만 AI가 소재인 동화책은 나에게 생소했다. 게다가 AI가 내니라니 궁금해졌다.      


나는 엄마가 없다.
아빠도 없다. 할머니도, 할아버지도. ............. 그런데 다른 게 있다. 내니.     


첫 문장부터 빨려 들어갈 듯했다. 중간중간 가상 체험, 데이터, 심테크 연구소, 보안 프로그램과 같은 단어들이 눈에 띄었다. 3학년인 아이에게는 너무 어려운 내용일까 고민하다 나라도 읽어보자는 마음으로 대출카드를 꺼냈다.     


같은 트라우마를 지닌 두 소년.

서로를 보는 일이 불편하고 괴롭지만 그들은 학교에서 매일 마주쳐야 한다.

별이. 이 소년의 곁에는 엄마아빠 대신 로봇이 있다. 그를 케어해줄 수 있도록 프로그래밍된 AI 내니다. 또 다른 소년 찬우의 아빠가 운영하는 회사에서 별이에게 로봇을 만들어 주었다. 내니는 치킨 정식도 요리할 줄 알고, 딱딱하긴 해도 안아줄 수도 있다. 내니는 다른 이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면 스트레스 지수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AI 내니라도 잔소리를 하기도 하고, 눈치가 없어 대답하기 싫은 질문을 하기도 한다.


그래도 별이는 AI 내니가 좋다.

갓난아기일 때부터 함께 지낸 내니이기에 둘의 우정과 애착은 그저 로봇과 인간 정도가 아니다. 별이의 몸과 마음, 일거수일투족까지 내니는 꼼꼼히 살핀다. 학교에서 힘든 시간을 보내는 별이는 내니가 있어 견딜 수 있다.


별이가 걱정하거나 불안해하면 내니는 심리상담을 하듯 위로하며 적절한 말을 건넬 줄 안다.


“별아, 넌 어디에서나 사랑받을 거야. 너랑 조금만 같이 지내보면 사람들은 네가 얼마나 좋은 아이인지 알게 될 거야.”     


사소한 일상에서 나의 반응과는 다르다.


“아, 내 레고. 부서졌어 히잉.”

“어이그. 그럴 줄 알았다. 그러니까 조심했어야지.”

레고를 들고 달렸으니 내 눈엔 부서질 게 뻔히 보였다.

“엄마! 엄마는 나를 위로해줄 순 없어?”


나는 아이의 말에 할 말을 잃곤 한다. AI는 이럴 때 어떻게 말했을까.       

내니를 생각하는 별이의 마음도 마찬가지다. AI 로봇들은 매일 일만 하는 것 같으니 가상현실에서 그는 AI 로봇 카페를 만들어 주고 싶어한다. 내니가 쉴 수 있도록 말이다.


책 속엔 다양한 이야깃거리들이 담겨 있다. 괴롭힘과 학교 폭력, 상처, 가상 현실, 선거에서의 정의, AI와 인간의 연결과 소통...




나에겐 하나의 질문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나는 AI 내니보다 나은 엄마일까.’     


내가 보기에 책 속의 내니는 완벽해 보였다.

충전만 제대로 한다면 말이다. 나보다 아이의 영양소를 잘 챙겼고, 궁금한 걸 물어보는 아이에게 정확한 대답을 해주었다. 아이의 심리적 상태를 파악하고 적절한 말로 위로했고, 감정적으로 반응하지 않았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오은영 박사가 쓴 책이 통째로 나에게 프로그래밍 되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책에 나온 대로 감정적으로 반응하지 않고 훈육할 수 있다면, 실수하거나 어려운 상황에서 비난 대신 공감하며 대화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와 다른 생명체를 만나 그를 이해하며 사귀는 일. 또한 나에 대해 알아차리고 깨닫고, 가장 합리적이고 인간적인 소통을 다시 배우는 일, 머릿 속으로 한 결심을 실행하는 일. 이 모든 일이 나에게는 번데기가 허물을 벗듯 버거운 날이 많았다. 잊어버리기도 하지만 감정이 이성을 이기고 마는 상황이 반복되었다. 결국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꽤 긴 시간이 걸렸다.     


“우리 집에 이런 에이아이 내니가 있으면 어떨 거 같아?”

“재밌기도 하고 편할 거 같아. 그럼 내니가 양말도 빨래통에 넣어주고, 요리도 해주고, 방 정리도 해 주고. 엄마처럼 잔소리도 안 하고 말이지. 크크.”

“아니, 엄마 대신 에이아이 내니가 있다면 말이야.”

“그건 안 되지! 엄마가 AI가 되는 건 싫어.”     


나는 과연 더 나은 엄마일까. AI 내니보다 말이다.


『선을 넘는 인공지능』에서 이진경 연구원은 인간과 인공지능의 사고에서 중요한 차이는 출구 없는 상황에서 답이 없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라 말했다. 인간은 터널 안뿐만 아니라 터널 밖의 상황도 멀리 내다볼 수 있는 능동적인 사유방식을 지니고 있다고 말이다.


나는 터널 밖이 보이지 않아도 통찰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아이들의 표정을 읽고 감정까지 너머 살필 수 있고, 강물이 흐르는 소리를 듣는 것처럼 고요히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을까. 그들의 삶에 달려들어 답을 제시하기보다 스스로 중요한 질문을 던질 수 있도록 숨죽일 수 있으려나.


인간은 점점 기계에 예속되어 사유와 가치 판단의 능력이 저하되고, 기계는 인간을 뛰어넘는 무언가를 배우고 있는 것만 같아 두렵기도 하다. 그러다 얼마 전 딸아이가 쓴 글을 보았다. ‘나에게 일어난 변화’에 대해 쓰는 글쓰기 숙제였다.


글의 제목을 보고 나는 위안을 얻었다.      


‘변화는 희망이다.’     


나라는 사람의 그릇이 변화할 수 있다면 희망을 품을 수 있겠다.

적어도 난 충전기 없이 방전되지 않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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