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위로의 계절
사람은 때때로 밀려오는 파도에 휩쓸리듯 감성적인 사람이 되곤 한다. 사람의 감성을 건드리는 것 중에 하나는 예상치 못하게 보게 된 '발자국 하나 없는 맑은 눈'이다. 더군다나 나는 원래부터 감성적인 사람이었으니, 아침에 눈을 뜨고 마주한 하얀 눈이라면 거부할 수 없이 늘 설레곤 했다.
문득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편안해지는 사람과 눈이 잔뜩 쌓인 등산을 하고 싶어졌다. 하얗게 변해버린 나무와, 세상마저 하얗게 변해버린 장면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였던 건지, 행복한 순간을 만나고 싶어서였던 건지는 모르겠다. 흰 눈을 보며 어디라도 가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사실 어디도 가고 싶은 기분은 아니었다.
가만히 쪼그려 앉아서 하염없이 내리는 눈을 오랫동안 지켜보고만 있었다. 동이 터오려던 아침은 어느새 밝아져 환해졌고, 아무도 밟지 않은 맑디 맑은 눈을 가장 먼저 밟은 건 알록달록한 털모자와 털장갑으로 무장한 두 아이였다.
신나서 뛰는 동생의 장갑 낀 손을 동생의 오빠는 장갑 낀 손으로 꼭 잡은 채 웃어 보였다. 두 아이는 한참 동안이나 새하얀 눈을 밟고 웃었다. 얼마큼 눈을 밟으며 뛰어다녔을까. 발자국 하나 없던 세상은 어느새 두 아이가 만들어낸 발자국으로 가득했다. 한참을 걷던 두 아이는 몇 마디 대화를 나누는 것 같더니 걸음을 멈추고 쪼그려 앉아 작은 눈송이를 만들기 시작했다. 눈싸움을 하려는 걸까 생각했는데, 작은 눈송이는 어느새 점점 커지고 있었다. 두 아이는 한참을 눈송이를 굴리며 걸어 다녔고 오빠의 눈송이는 이미 아이의 무릎까지 닿을 정도로 커다래졌다. 눈사람의 일부를 완성한 오빠는 이내 동생의 눈송이를 함께 굴리기 시작했다.
작은 눈송이 하나에 환하게 웃었던 적이 있었다. 행복이라는 게 뭔지도 모르고 행복했던 적이 있었다. 눈 하나에 온 세상을 가진 것처럼 즐거워했다. 눈덩이를 굴리고, 이글루를 만들고, 함께 먹을 과자를 숨겨두며 웃었다. 매번 완성되지 못하고 녹아버린 이글루임에도 완성되지 않은 이글루가 녹는다고 슬펐던 적은 없었다. 단지 이글루를 만드며 웃는 순간이 좋았고, 그 순간이 좋아서 매번 이글루를 만들었다.
언제부터 결과가 중요한 사람이 되었을까. 결과가 나쁘다고 해서 그 과정까지 나쁜 것으로 변하지는 않는다. 이글루가 완성되지 못했다고 해서 이글루를 만드는 과정까지 쓸모없게 되는 것은 아니다. 설령 남은 게 하나도 없다는 생각이 들어도 이글루를 만드는 동안 나는 누구보다 행복한 사람이었다. 눈이 녹아도 눈사람을 만드는 아이들의 시선이 담긴 세상은 하나도 어지럽지 않았고 즐거운 것 투성이었음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아무것도 아닌 순간이 어디 있을까. 모든 순간은 놀라우리만큼 아름다웠고, 반짝였고, 이유가 있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나는 아직도 알 수 없고, 사실 알고 싶지도 않지만, 그냥 이유 없이 웃음이 나오고 행복했다면 이유가 될까. 잠깐이라도 웃을 수 있었던 모든 상황이 하얗게 내린 흰 눈과 겹쳐 오래도록 내 안에 남아 이유 없이 그때가 오랫동안 그리웠다.
'신지음 계절집'의 사계절 중 '겨울 : 위로의 계절'편 입니다.
4계절의 이야기가 틈틈히 올라올 예정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