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혼일지
이혼하기 딱 좋던 날이 과연 언제일까?
아이가 있으니 나는 아이 핑계로 내 삶의 고통을 회피하고만 있었나 보다.
알을 깨고 나가야 하는 두려움, 전업주부로 살아오던 오랜 시간, 경력 단절의 두려움 그게 가장 막막했다.
2022년 한 해 동안, 남편은 양육비는 없다 몸만 나가라 끊임없이 나를 괴롭혔다. 소장을 던졌으니 변호사와 이야기하라는 둥 실없는 소리로 끊임없이.
사실 나는 알았다. 남편은 그럴 용기도 없었다는 걸.
그저 아이를 인질 삼아 내가 숨죽이고, 시어머니가 그렇게 삶을 사셨듯 나도 시어머니처럼 자신을 참으며 아이생각하며 참고 살거라 생각했을 거다. 참으면 횡포가 더 심해졌다.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는 그 말처럼.
생각해 보니 나는 결혼하고 출산을 하고서도 허리디스크로 방바닥을 기어 다닐 정도로 거동을 못한 때에도 오롯이 나 혼자였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를 데리고 계곡을 갔다가 인대파열이 되는 사건이 있었고, 아이 방학 거의 두 달 내내 나는 철저히 혼자였다.
내가 몸이 아프니 더욱더 나를 괴롭히고 포악해졌다. 아이만 보며 그 힘으로 버티면서 살았다. 우리는 점점 더 투명 인간으로 서로를 대했고, 아이는 그 사이에서 불안을 온몸으로 느끼며 살았다. 딱한 내 새끼.
이렇게 살 수 없어 대화를 해보자고 해도 그는 묵묵부답. 51:49의 비율로 이혼해야 한다는 결심이 굳혀진 건 작년 12월 31일을 기점으로 딱 100일 전 무렵이었다.
재활도 제대로 못한 내 다리는 그 이후로 같은 곳을 석 달만에 또 다쳐 또 한 번의 시린 겨울에 깁스를 하게 되었다. 내가 다친 것을 알아도 데리러 오지 않고 응급실에 갔어야 했음에도 철저히 혼자였다. 그다음 날까지 참고 병원에 가려고 진통제를 먹기 위해 빈속을 달래려고 방바닥에 쭈그려 앉아 초밥 도시락을 시켜 먹던 나를 향해 냄새난다고 구역질을 하던 그의 모습에 내 결심은 기필코 잘한 선택이라고 이를 박박 갈았다.
이혼하기 딱 좋은 날. 결심은 이처럼 확고해질 수밖에 없는 순간을 선사한다.
그런데 진짜 이혼하기 딱 좋은 날은 내가 이립 할 수 있는 날, 자립할 수 있는 날이어야 했다.
혼자서 우뚝 설 수 있다고, 이 풍파 다 겪어내며 반드시 내 새끼에게 헤쳐나가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다짐하는 그 순간도 지금도 나는 아직 완전한 힘이 없다. 경제적 자유 이게 진짜 필수 요소다.
다행히 나는 친정 부모님의 도움으로 여태껏 살아내는 중이지만, 나와서 가장 먼저 나라에서 받을 혜택을 챙겨 지금은 직업훈련 중에 수당을 받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온전히 바로 서려는 노력으로 사회에 뛰어들 준비 중이다. 죽으란 법 없듯이.
이혼 소장을 접수하고 7개월이 훌쩍 지난 지금. 나는 어느 정도로 내가 충만해졌을까.
아직은 한 발 한 발 갈길이 아득하지만 나는 반드시 내가 꽉 차서 흘려보낼 수 있는 사람을 거듭나고 싶다.
왜 많은 전업주부가 많은 여성들이 이혼을 두려워하는 가장 큰 문제가 경제적인 문제인지 뼈저리게 온몸으로 체감하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