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을 여행처럼.

by idle

직장인이 되어 회사에 적응하기까지 3년. 그리고 한참 일이 재미있어질 시기인 스물일곱. 그즈음 나는 일과 사람들과의 관계 사이에서 힘들었다. 마음이 너무 아파 잠들 수도 없던 그때. 누군가 내게 삼재라 그런 거라 했다. ‘삼재라서 그래, 삼재가 지나면 다 괜찮아질 거야.’ 그리 믿는 것도 아니면서 괜히 그 핑계를 대고 싶었다. 그냥 그런 시기다. 다 지나간다 하고.


사람을 만나는 것이 부담스러워 주말마다 홀로 시간을 보냈다. 버스를 타고 광화문 시네큐브에 가서 영화 한 편 보고, 정동과 덕수궁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내키는 대로 들어간 카페에서 책을 읽다 배가 고프면 케이크나 샌드위치를 먹으며 끼니를 때웠다. 우울한 날은 한없이 더 우울했고, 내게 좋은 일 따위는 일어나지 않을 것 같던 나날이었다. 하지만 무작정 걷는 일은 나를 괴롭히던 생각을 정리하게 만들었다. 난 마음의 문제를 객관화해서 바라보기 시작했고, 그렇게 그 시기에서 조금씩 벗어날 수 있었다. 이제는 마음을 정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동네의 분위기가 그리워 그곳을 찾는다.


그도 나처럼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사람이다. 은퇴 후 24시간을 함께 보내게 된 우리는 가끔 각자의 시간을 보내기 위한 여행을 한다. 혼자 여행을 떠날 때는 주로 익숙한 도시를 골랐다. 그는 얼마 전 송도를 다녀왔고, 난 이번에 서울을 택했다. 그곳에서 20년 이상을 살았지만, 마치 여행 온 것처럼 머물러보리라. 야경이 좋은 도심의 숙소를 구했다. 그에게 오랜만에 도시 여자가 된 기분을 느껴보겠다 했다. 숙소까지는 그가 데려다주었다. 1년 전 교통사고 이후 난 아직 운전이 두렵다. 그래서 대중교통이 편한 곳을 찾았건만, 일주일의 여행을 위해 챙긴 짐이 불편해 보였나 보다. 숙소에 체크인하고 그가 떠났다. 잠시 후 울리는 카톡 소리. 그였다. 설마, 떠나자마자 벌써 그리운 건 아니겠지 생각하며 메시지를 확인했다. 주차비 삼천 원이 나왔단다. 15분 정도나 있었을까. 역시 서울의 주차비는 무섭다. 우리는 용돈 십만 원으로 생활하고 있으니, 삼천 원도 큰돈이다. 그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아 만원을 전송했다. 생활비가 아닌 내 용돈으로.


숙소는 남산이 가까운 곳이었다. 아침이면 남산 둘레길을 산책하고 내려와 점심을 먹고, 카페에 가서 시간을 보냈다. 집에서의 생활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장소만 다를 뿐 비슷한 일상. 가끔은 이전처럼 목적 없이 걸었다. 숙소에서 천천히 북쪽을 향해 걸음을 옮기다 보니 덕수궁이 보였다. 덕수궁 입구에서 오른쪽을 향하면 연못이 하나 있는데, 이곳은 다른 장소보다 사람이 많지 않아서 좋다. 난 나무 아래 벤치에 자리 잡고 앉아, 가져온 패드를 꺼냈다. 먼저 패드와 덕수궁 풍경이 잘 보이게 사진 한 장을 찍어 남편에게 전송했다. “나 궁에서 글 쓰는 여자야.”라고.


덕수궁 연못 벤치에서 바라본 도시.


덕수궁을 나와서 또 걸었다. 어느새 난 경복궁 앞을 지나고 있었다. 경복궁은 조선의 정궁이기는 하나 실제로 세종을 제외하면 오래 머무른 왕이 없다. 임진왜란 이후 거의 버려져있던 것을 흥선대원군이 재건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아무래도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리고 너무 크고 반듯하지 않은가. 크고 반듯한 것에는 아무래도 마음이 가지 않는 법이다.


다시 걸음을 옮긴다. 안국역을 지나 창덕궁이 보인다. 조선의 임금이 오래 머물렀던 궁은 창덕궁과 창경궁이라 한다. 창덕궁과 창경궁은 담을 사이에 두고 붙어있다. 창덕궁의 후원이 특히나 아름답지만, 자유로운 관람이 어려우니 편히 산책하기에는 창경궁만 한 곳이 없다. 정조가 태어났다는 경춘전과 과거 급제한 인재들을 만나 경연을 했다는 함인정에서는 사람 냄새가 났다. 고궁의 숲은 산책하기 좋다. 이곳처럼 잘 관리된 산책코스는 찾아보기 어려울 거다. 오래전 임금을 위해 꾸며진 정원이니 그렇지 않을까. 흔히 볼 수 있는 소나무, 은행나무도 생김새부터가 다르다. 나무의 기둥은 곧게 쭉쭉 솟았고, 나무 가치도 아름답게 뻗어나간다.


고궁은 돌담길을 따라 밖에서 한 바퀴 돌아보는 것에도 은근한 재미가 있다. 창덕궁과 담을 마주한 일제강점기 마구잡이로 지어졌을 낡은 주택들과 사대부가 거주했을 고풍스러운 한옥들. 궁내의 물이 궁궐 담장을 통해 바깥쪽으로 흐르는 곳에 있는 원서동 빨래터는 이번 산책에서 처음 발견한 곳이다. 난 빨래터에 둘러앉아 방망이를 두들기며 궁안 쪽을 힐끔거렸을 이들을 상상했다. 만족스러운 산책 후 돌아가는 길은 버스를 탔다. 고궁 주변을 산책할 때면 이곳에 살고 싶어 지다가도, 번잡한 도시를 보면 이렇게 가끔 여행처럼 오는 게 나에게는 맞는 것 같다고 버스 안에서 생각했다.


원서동 빨래터


서울 여행 마지막 날은 오랜만에 옛 동료들을 만나 서촌에서 ‘요시고 사진전’을 봤다. 빛과 그림자, 색감과 구도가 아름다운 사진이었다. 비 갠 오후 4시 46분쯤의 햇살 같다. 비스듬히 내리쬐는 따뜻한 빛의 사진. 그 의미를 해석하기 위해 애쓸 필요 없이 아름다움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준비만 한다면 즐길 수 있는 전시였다. 전시 설명에 이런 말이 있었다. ‘낯선 장소에서 플라뇌르가 된 작가가 새로운 지역과 문화를 경험하며 개인적인 관점으로 기록한 사진’ 플라뇌르(flaneur)는 한가롭게 배회하는 산책자를 의미한단다. 서울에 머무는 동안 발길 닿는 대로 무작정 걸어 다녔다. 새삼 오래된 도시인 서울이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붉은 벽돌집과 어지러이 널려 있는 전선 그리고 높은 빌딩과 고궁. 부조화 속의 조화다. 익숙함이 아니라 여행을 왔다 생각하고 서울을 바라보면, 낡은 건물마저도 다르게 보인다.


“생각해보면 요즘 내 삶이 플라뇌르 같아.”

“너 이제 백수 말고 그거라고 해. 딱 너네.”

“뭔가 있어 보이는 구만.”

“이름 외우기도 어렵다. 플뇌르라? 플.. 머라고?


플라뇌르, 플라뇌르… 익숙해지려 속으로 여러 번 불러본다. 그들과 밀린 이야기를 늘어놓다 말했다. 서울이 좋기는 한데 여기서 더 이상 살지는 못할 거 같다고, 역시 난 시골 스타일이라면서. 그때 친구가 말했다. “넌 러스틱 라이프를 추구하는 플라뇌르인 거지.” 러스틱 라이프라 이것도 뭔가 있어 보이는 말이다. 시골 좋아하는 백수를 러스틱 라이프를 추구하는 플라뇌르라고 하니 그럴듯하다. 그래, 플라뇌르가 되어 일상을 여행처럼 살아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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