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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리비아 Dec 29. 2020

꿈에 흠뻑 빠지는 것 vs 꿈에서 헤어 나오는 것

10년 차 뉴욕인 에세이

게스트가 나와 본인의 성공 비결과 삶의 철학을 공유해 주는 유튜브 채널을 보았다. 불과 한 달 전 같은 채널에서 다른 게스트가 나와 지극히 현실적인 조언들을 해줬던 기억이 난다. 왜 한국 사람들은 미국에 비해 노후 준비가 안되어 있는지, 사치성 소비에 대한 문제점을 속 시원하게 집어줘 깊이 공감했다. 그러나 오늘 본 게스트는 그에 반대되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소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특히 물건을 팔려고 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본인이 다양한 제품들을 경험해보지 않고 다른 사람들에게 팔 수 있겠냐며 그것은 거의 사기나 다름이 없다고 말했다. 투철한 직업 정신과 야망 있는 꿈을 가지고 사는 듯한 게스트는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을 공유 함으로서 소비자로부터 자신의 안목에 대한 신뢰도를 높인다고 했다.


이 상대되는 두 가지 방향성은 내가 오래전부터 고민하던 부분이다. 

꿈에 흠뻑 빠져서 사는 것이 옳은 것이냐, 아니면 꿈에서 헤어 나와 현실을 직시하고 사는 것이 맞는 것이냐.


먼저 내가 정의하는 꿈에 빠져 산다는 것은, 내가 하는 직업이나 직종을 100퍼센트 믿고 그것을 위해 한 몸 바쳐 일하는 것이다. 지금 우리 회사에도 여럿 보인다. 회사 설문조사나 같이 모여서 팀 운동 같은 것을 하면, 진정으로 열정을 다해 임한다. "우리 회사의 문제점은 이것이고 저것이고, 이렇게 하면 좋을 것이고 이게 필요한 거 같다." 끊임없이 개입하며 열변을 토한다. 딱 들으면 좋은 거 아니야? 라고 생각이 먼저 들겠지만, 한층 더 깊이 생각해보자. 회사는, 특히 미국 회사는, 우리의 미래를 책임져 주지 않는다. 또한 설문조사를 통해서 회사가 개개인의 특정 의견을 듣고 실질적으로 시스템을 바꾸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내가 열나게 건의하고 밤 12시까지 일해도, 내 나이가 차지 않으면, 내가 회사에서 정치질을 하지 않으면 승진하지 못하는 건 당연지사이고, 재수 없으면 내 자리가 없어져 소리 소문 없이 잘리는 게 거부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럼 다시 똑같은 질문으로 돌아와 보자. 과연 내가 100퍼센트 온 힘을 다해 회사에 내 한 몸 받치는 것이 현명한 것인가, 아니면 회사 일 적당히, 건의도 적당히 하면서 내 앞길을 따로 설계해 놓는 것이 현명한 것인가? 


이제 꿈에 빠져 사는 것을 소비와 나의 직업인 패션 디자이너로 연결해 보자. 나 역시, 오늘 나온 게스트가 한 말처럼, 내가 경험해 보지 않고선 내가 좋은 것을 디자인할 수도, 혹은 팔 수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난 다른 데는 돈을 함부로 안 쓰지만, 내가 하는 분야에는 끊임없이 사서 써본다. 내가 해보지 않으면 이 제품이 왜 다른 제품보다 나은지, 왜 사람들은 저것이 아닌 이것을 사는지 백날 밖에서 봐도 모르기 때문이다. 허나 나는 내가 패션에 대해 더 알고, 더 좋은 패션 아이템을 쓴다고 거기에 빠져서 살지 않는다. 특히나, 보여주기용 사치하는 부류를 지극히 안 좋아하는데, 어디 비싼 브랜드 들어가서 자랑한답시고 가방 사서 인스타에 태그 해서 올리고, 마치 본인이 착용하는 모든 브랜드들이 본인의 값어치를 정당화해주는 마냥 명품에 사족을 못쓰는 젊은이들을 보면 안타까울 지경이다. 때문에 나는 브랜딩이 크게 들어가 있는 패션 아이템을 선호하지 않는다. 내가 쓰는 물건들의 값어치가 떡하니 보이는 게 싫기 때문이다. 또한 좋은 곳 가고 비싼 거 먹을지언정 인스타에 태그 해서 올리지 않는다. 내가 나 자체만으로 충분해야지, 좋은 곳 간다 그래서 팔로워 더 생기고, 그러면 내가 남들보다 나아 보이는 거 같은 그 문화 자체를 난 이해할 수 없다. 덕분에 패션 회사 다니며 100퍼센트 빠져서, 누구는 이렇게 입어서 예쁘고, 누구는 저래서 되겠냐며 폄하하며 수군수군 되는 행동들을 "난 패션 디자이너니까 괜찮아" 혹은 "난 내 분야에서 성공했으니, 이런 행동이나 말을 해도 괜찮아" 하고 정당화하는 것이 상당히 억지스럽게 느껴진다. 이런 유치함은 패션뿐만 아닌 다른 직업군에서도 존재할 것이라 생각한다.


게스트가 나와서 이야기 하기를, 결국에는 나의 라이프스타일을 파는 것이라고 했다. 문화도 패션도 좋아하는 나로서 이해가 전혀 안 가는 것이 아니다. 허나 꿈에 흠뻑 빠져 사는 것, 어디까지가 필요한 것이고, 충분한 것이고, 어디서부터 과한 것일까? 


꿈에서 헤어 나와 살면 모든 것이 나아질까? 아니다. 나는 꿈에서 나온 순간부터 조금 불행해졌다고 느낀다. 내가 유치하게 믿고 따라갈 열정이 소멸됐기 때문이다. 아무런 생각 없이, 평생 본인이 하는 일만 바라보며 살 수 있다는 것은 어찌 보면 복 받은 일이다. 꿈에서 나온 내가 앞으로 뭐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끝없는 고민을 안 해도 되기 때문이다. 나의 인생에 의미를 불어넣어줄 것이 내가 소망한 꿈인 줄 알았건만, 막상 꿈에 도달해 현실을 직시해보니, (패션 업계는) 수요보다 더 많은 제품들을 만듦으로 인해 지구와 생태계를 오염시키고 있을 뿐, 나의 인생의 궁극적인 의미는 찾지 못했다. 이것이 나의 풀리지 않는 딜레마이다. 과연 돈만이 나의 이 허무함을 달래줄 수 있을까? 그것 또한 아니라고 생각한다. 돈의 중요성은 확실히 인지해야 할 부분이다. 돈의 부족은 불행함을 한층 증폭시킨다. 허나 돈이 꿈을 대신해 주진 않는데, 나의 시간에 의미를 부여해 주는 역할을 충족시키지는 않기 때문이다. 나의 이러한 고민은 어제보다 오늘 더 깊어진다. 여자인 몸인 나는 거스를 수 없는 신체적 시간을 준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늦어도 35살에는 애를 나아야 안전하다고들 한다. 그렇다면 33살에는 결혼해서, 1년 정도 신혼 보내고, 34살에는 임신을 해야 35살에 아이를 나을 수 있다. 그렇다면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애를 낳고서도 꾸준히 하고자 하는 일을 하겠지만, 혼자서 365일을 나에게만 투자하고 있는 오늘도 나의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는데 애를 낳고서 엄마가 아닌, 와이프가 아닌, 나 자신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거라 기대하지 않는다. 때문에 오늘도 난 다시 질문해본다. 꿈에서 헤어 나온 지금, 내가 여기 존재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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