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he last straw "
“손 먼저 씻어야 간식을 먹을 수 있어.”
아이의 표정이 돌변하더니
“칙-” 하고 내 얼굴에 침을 뱉었다.
매일 아침 6시 30분, 둘째 케이토의 "으아아 앙" 우는 소리가 온 집안을 깨운다. 그로부터 30분 뒤, 아이오는 7시에야 눈을 뜬다. 내가 아이오의 방에 들어가면 비로소 우리의 하루가 시작된다. '오늘 하루는 제발 평화롭길.' 속으로 그렇게 기도하며, 느릿느릿 교복을 입는 아이오를 지켜본다. 평소 아침마다 까칠하고 짜증이 많은 아이오 덕분에 매일 아침은 전쟁이다.
사건이 있던 이날은 무난한 아침이었다. 1층으로 내려가 홈대디와 “Good morning!” 인사를 나눈 뒤, 아빠가 요청한 코코팝 시리얼로 아이의 아침을 준비했다. 아침마다 케이토는 아빠와 함께 어린이집에 간다. “잘 다녀와!” 손으로 뽀뽀를 날리면 케이토도 따라 하며 뽀뽀를 보내준다. 이런 순간마다 '아이들은 애정을 주는 만큼 돌려주는구나.'라는 생각에 괜히 기분이 몽글해진다.
준비를 마친 아이오와 나는 도난 경보를 설정하고 문을 닫았다. 런던 하면 떠오르는 빨간 이층 버스. 우리는 이 버스를 타고 학교로 향한다. 이상하게 이 날따라 버스가 꽉 차 있었다. 한 손으로 아이오를, 다른 손으로 아이의 핑크색 킥보드를 붙잡고 중심을 겨우 잡으며 버스에 올랐다. 좁고 혼잡한 버스 내부에서 내릴 시간이 다가왔는데, 사람이 많아 움직일 수 없어 안절부절못했다. 그때, 한 남성 승객이 큰 소리로 외쳤다.
“이 여성분 좀 내리게 해 줘요, 드라이버!”
덕분에 기사님이 앞문과 중간문을 열어줬지만, 우리가 있던 뒷문은 여전히 닫혀 있었다. 이번에는 또 다른 남성 승객이 나서서 도움을 줬다.
“뒷문을 열어주세요, 드라이버!”
덕분에 무사히 내릴 수 있었다. “땡큐 쏘 마취!” 하고 인사를 전하자, 그는 스윗한 미소를 지으며 내게 말했다. “Good luck!!” (아이들과 함께 있으면 도움과 배려를 많이 받게 돼서 감사하다.) 안절부절못하던 우리 둘은 버스를 빠져나오자마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서로 눈을 마주친 순간 깔깔 웃음을 터뜨렸다. 그 짧은 순간이지만 아이와의 교감이 느껴져 기분 좋았다.
아이의 등교를 마치고 혼자 집으로 돌아오니 아무도 없는 고요한 집. 나 혼자 평온하게 아침식사를 했다. 하지만 오후, 아이오를 데리러 가면서부터 분위기가 달라졌다.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기분이 안 좋아 보이는 아이오는 킥보드를 타고 아무 말 없이 혼자 앞서 나갔다. "Are you okay?" 물어봐도 묵묵부답.
집에 도착해 손을 씻으라고 하자, 아이오는 갑자기 표정을 바꾸며 “칙-” 하고 내 얼굴을 향해 침을 뱉었다. 너무 화가 나서 나도 모르게 “야!!!!” 하고 한국어로 소리를 질렀다. 진심으로 화가 나면 순간적으로 모국어가 먼저 튀어나온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이오는 내가 화낸 것을 보고 놀랐는지 금세 미안하다고 사과했지만, 상한 마음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너 이거 정말 무례한 행동이야. 너희 엄마한테 다 말할 거야.”
사실 홈맘에게 말할 생각은 없었지만, 이 상황의 심각성을 느끼게 하고 싶었다. 이후 목욕 시간이 되었지만, 아이오는 여전히 장난만 치며 시간을 끌었다. 목욕 시간은 언제나 나에게 가장 힘든 순간이다.
아토피 때문에 목욕을 30분 이상하면 안 된다고 홈맘이 정해준 규칙이 있었기 때문에 나에겐 그 시간을 지키는 것이 중요했다. 계속 장난을 치는 아이에게 서두르라고 하자, 아이오는 또 “뿌우우우” 하고 내 얼굴을 향해 침 뱉는 흉내를 냈다. 이번에는 정말 참을 수 없었다.
“너 이런 행동은 정말 잘못된 거야. 나 기분 진짜 나빠.”
아이는 울먹이며 미안하다고 했지만, 나는 정색한 채로 빨리 씻으라고 했다. 씻는 동안 아이가 눈치를 보며 행동하는 모습이 귀엽긴 했지만, 이번만큼은 단호해야 했다.
목욕이 끝난 뒤, 자연스럽게 화해의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아이오는 금세 나에게 다가와 애정을 표현했다. 아이들이 감정을 금방 풀고 다가오는 모습은 늘 놀랍고 사랑스럽다. 결국 웃음을 터뜨리고 만 나.
그렇게 하루를 마무리하며, ‘제발 내일은 목욕 시간이라도 말을 잘 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이와의 모든 순간이 힘들지만, 동시에 성장하고 있음을 느끼는 소중한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