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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애는 매운 것 못 먹는다 했잖아

" Nagging "

by 야미 Jan 20.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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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의 하이라이트는 잡채였다.



나를 답답해하는 홈대디

 사건이 있던 이날 홈맘의 요청으로 아침부터 오트밀죽을 끓이기 시작했다. 매일은 아니어도 몸에 좋은 건강식단이라 아이오에게 먹이고 싶다는 것이었다. 이 와중에 옆에 쓱 다가온 홈대디는 주방일에 서툰 나를 보며 오늘도 답답해하는 게 느껴졌다. 난 속으로 외쳤다. 


‘한국은 오트밀 죽을 안 먹어요! 태어나서 오트밀 죽을 한 번도 만들어 본 적 없다고요.' (요즘은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건강을 위해 찾아먹지만 저때까지만 해도 한국에서 오트밀을 끓여 먹는 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생소한 일이었다.)

 

 홈대디는 피드백을 자주 주는 편이다. 나에게 얼마나 답답한지 대놓고 티를 내곤 한다. 항상 한숨을 굉장히 크게 쉰다. 저번에는 저지방 우유를 사용했다가 또 잔소리를 들었다. “넥스트 타임, 이렇게 해야 해.” 고개를 끄덕이지만 속으로 생각한다. '지는 김치전 만들 수 있나?' 갑자기 김치전이 먹고 싶어졌다.


 몇 분 후 또다시 피드백을 받았다. 오트밀을 만든 그릇은 금방 굳으니 바로 물에 담가야 한다고. 역시나 한숨을 곁들여서. 이들이 요청한 주방관련된 모든 일은 나에겐 처음이었다. 아이를 돌보는 건 어느 정도 익숙해졌지만, 살림은 여전히 모르는 것투성이다. 그때 깨달았다. '아, 월급 주는 사람과 함께 사는 건 정말 아니구나.'


옛날에 시어머니들에게 시달리는 며느리들 중 하나가 된 기분이었다. 사소한 주방일들이 나를 많이 힘들게 했던 시기이다. 엄마가 보고 싶어졌다.


어쨌든 이날의 하이라이트는 잡채였다.


이게 잡채?라는 생각이 들 정도의 비주얼, 맛은 좋았다.


잡채 사건

 이날은 내가 한국 요리를 해주는 날이었다. 계약 당시 주 3회 정도는 내가 요리를 하기로 되어 있었다. 나는 이 조건이 문화 교류의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순진했다. 예전에 대만에서 살았을 때 친구들에게 김치찌개를 한 번 해준 기억에 기대어 시작했는데, 이번엔 달랐다. 이들은 나의 친구도 아니었고 나에게 급여를 주는 사람들이었다.


게다가 각각 다른 나라에서 온 성인 둘8살짜리 영국 여자아이의 입맛을 동시에 만족시켜야 했다.


 난 잡채를 세상에서 가장 좋아한다. 그러나 만드는 것은 처음이다. 하지만 이들에게 이 내 최애 음식을 소개해줄 즐거운 마음으로 요리를 했다. 맛을 보는데 예상과는 다르게 간이 맞지 않았다. 왜 이렇게 싱겁지? (그들의 입맛을 생각해서 여기서 멈춰야 했다.) 너무 싱거워서 마지막에 후추를 듬뿍 넣었는데 그게 화근이었다. 


 처음에 이 집에 왔을 때 아이오는 'SPICY'한걸 못 먹는다고 홈대디가 얘기한 적이 있다. 그런데 내 입장에서 후추는 매운맛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내 머릿속에 스파이씨는 고추나, 고춧가루 마늘정도였다. 하지만 후추의 스파이시는 아이에게 맵고 자극적인 맛이었다. 난 아이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못했다. 나의 실수였다. (애초에 내가 외국인인 것을 감안해서 구체적으로 후추, 고추 등 이런 식으로 나열해서 설명해 줬으면 어땠을까? 지금은 그런 생각이 든다.)


부모들은 견딜 수 있는 맛이라고 했지만 아이는 도저히 못 먹겠는지, 포크를 내려놨다. 그리곤


 "I don't like it...!!" 하고 외쳤다.


너무 맵다고 못 먹겠다고 하는 아이는 아빠에게 혼이 났다. 너에게 주어진 음식 다 먹으라고. 결국 아이오는 울음을 터뜨리고, 홈대디는 한숨을 쉬었다. "내가 우리 애는 매운 거 못 먹는다고 얘기했었잖아." 홈대디는 화를 억누르는 듯 이를 악물면서 조용하게 말했다.


아이오는 울고 있고, 스파이시한 잡채를 만든 나는 가시방석에 앉은 듯 초조했다. 나중에 결국 홈대디가 삶은 에그를 준비하더니 아이에게 건네주었다. (홈맘 홈대디는 퇴근 후 대체적으로 피곤하고 예민한 상태로 집에 온다.)


우울한 마음으로 하루를 마무리하려던 그 순간, 계란을 먹던 아이오가 엄마 아빠에게 무언가 속삭이더니 환하게 웃으며 내게 다가왔다.


“내일 나한테 아보카도 그거 만들어 줄 수 있어?” (*아보카도 계란 명란밥)


 감동이 밀려왔다. 우울했던 내 표정을 보고 아이가 나를 위로해 준 것 같았다. 얼마 전 내가 한인마트 가서 참기름 하고 명란젓을 사 와 가족들에게 만들어준 적이 있는데 그걸 다들 좋아했었다. 아이가 기억해 준 게 고마웠다.


 “응 내일 해줄게 미안해. 다음엔 후추 안 넣을게. 후추가 너한텐 매운맛일지 몰랐어..”


 국적이 다른 가정집에 같이 살면서 생활 패턴을 맞춰가고 적응한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다.

특히 입맛이 다 다른 사람들에게 요리를 해준다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왜 베이비시터를 하겠다고 했을까. 왜 요리를 해야 하는 조건을 받아들였을까..


후회가 됐던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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