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ㅎ. 나를 이 세상에 남기고자 하는 한

by 다운

여러분은 왜 사회에 나가 일을 하는가? 자신의 시간, 생명, 삶을 모두 버리고 회사에 틀어박혀 주어진 업무에 몰두하고 있는가? 돈을 벌어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안정적이고 든든한 노후를 위해? 지금 내 옆에 있는 동반자와의 행복을 위해? 정말 그것들을 이루면 삶이 만족스러운가? 그래, 정말로 그럴지도 모른다.


나는 이 세상에 나라는 사람을 그저 무대 위 엑스트라 178번과 같은 있으나 마나 한 존재로 남겨두고 싶지 않아서, 내 이름 석 자를 누군가는 기억해주었으면 해서, 내가 글을 쓰는 행위를 하기 위해 발버둥 쳤다는 사실을 세상에 남기기 위해 매일매일 책상 앞에 앉아 글을 쓴다.


처음엔 그저 내 상상력을 글로 쏟아내는 행위를 하는 것 자체가 좋았고, 그것만으로도 만족감이 느껴졌다. 인터넷이라는 무한한 공간에, 내 머릿속에 추상적인 형태로 둥둥 떠다니던 것을 구체적인 형태로 저장하기 위해 올려둔 것들이 사람들의 시선에 닿아 호감을 얻고, 그 호감이 인기가 되는 순간 나는 작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책을 읽고 인간, 사회, 가치 등 한 번도 얕거나 깊게 생각해 본 적 없는 것들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그때의 나는 깨달았다. 책은 작가가 펼쳐놓은 제3의 세계관에서 작가가 만든 캐릭터가 뛰어노는 들판 같은 것이 아니구나. 작가의 손끝이, 그 손끝을 타고 올라가면 놓여있는 생각의 회로가 어떤 이야기를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책 속에는 아주 잔혹한 현실이 태어날 수도, 아름다운 판타지 세계가 펼쳐질 수도 있구나. 독자는 그 세계를 탐미하면서 여태껏 본인의 삶을 살면서 접하지 못한 경험, 생각하지 못한 생각을 마음껏 할 수 있겠구나. 독자에게 그런 순간을 제공하는 책을 쓰는 작가야말로, 정말 훌륭한 작가이구나. 그런 생각을 했다. 그래서 나는 그런 작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호빵맨이 아이들의 눈물을 그치게 하기 위해 자신의 머리를 뜯어 주는 것처럼, 내 경험과 감정, 가치관의 일부를 조각조각 뜯어다가 글을 쓰는 이유는 모두 그 결심 때문이다. 지금도 책상에 앉아 머리를 쥐어뜯어가며 그 결심을 좇는 이유는, 지금까지 달려온 길의 결승선에 다다랐을 때, 그러니까 내가 이 세상에 없을 때 세상에 남아있을 누군가가 내 이름을 기억했으면 하기 때문이다.


그 작가 덕분에 내 가치관이 바뀌었다. 내 삶이 풍요로워졌다. 나 또한 많은 사람들이 나와 같은 경험을 할 수 있도록 기여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할 수 있도록. 그렇게 수많은 새로운 창작자가 탄생할 수 있도록. 그리고 그 탄생의 순간이라는 시작점에 내 글이, 내 이름이 함께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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