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을 외면하고 싶은 나에게
19살 5월,
나는 과외를 받으러 일주일에 한 번
종각까지 갔었는데,
그때 생일이 얼마 남지 않았었다.
우연히 나온 생일이야기에,
과외 전날에 선생님은
나에게 케이크를 주고 싶어했다.
카페에서 파는 조각케이크를 먹을래,
아니면
근처 빵집에 있는 홀케이크를 먹을래.
나는 조금 고민하는 척을 하다가
홀케이크를 먹고 싶다고 말했다.
케이크를 먹을 생각보단 가질 생각에
들뜬 채로 지하철을 탔었고,
나를 가르쳤던 선생님은
1시간 지각을 했다.
선생님은 미안하다고
먼저 들어가있지
왜 밖에 있냐고 물었다.
음료 사먹을 돈을 미리 준비하지 않아서요, 라는 말을
혼자 들어가기 싫어서요, 라고 둘러댔다.
근처 빵집에 가서 나는 화난 표정을 지으며
일부러,
제일 비싼 케이크를 골랐다.
그 선생님의 난처한 표정을 보고도 난
잘못했으니 이 정도는 사도 된다, 라고 생각했다.
지극히 어리석고, 어린 생각이었다.
그 케이크를 들고 지하철을 탔을 때는
가슴이 턱 막혔다.
발걸음이 무거운 만큼 마음도 무거워졌다.
-내가 마땅한 돈이 없었다는 걸 들킨 기분과 버스 정류장에서 시간을 허투루 쓴 기분과 선생님에게 복수로 가장한 죄를 지은 기분과 케이크를 다 먹지도 못할 걸 알면서도 욕심을 부린 기분과-함께.
그 비싼 케이크를 봐도 하나도 즐겁지 않았다.
아무 데나 가지런히 케이크를 버리고 오고 싶었다.
그날 저녁에는 부모님없이 케이크에 초를 꽂았다.
미역국만 덩그러니 가스레인지에 올려져 있었다.
나는 그때의 나를-생일을 과시하기 위한- 아직까지 잊지 못한다.
지금도 나는 생일을 과시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보여주기식 생일에 이제 지쳤다.
진정으로 나의 생일을 축하해주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선물을 주고 받고, 편지를 주고 받으면 그것이 진정한 축하일까?
인간은 인간과 함께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되는 사회적 동물이다.
그래서인지, 인간이 관계를 유지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는 것.
축하를 해주는 기쁨, 위로를 해주는 슬픔을 나누는 것.
그 대표적인 예로 생일, 결혼, 장례이지 않을까.
특히 생일은 어렸을 때부터 챙겨오기 마련이니,
제일 익숙해질 수 밖에 없는 행사이자, 의문이다.
가족들이 축하하는 것까진 어느 정도 이해가 가지만,
왜 나의 친구, 연인, 직장동료, 지인 등,
나의 태어남에 대해서 왜 축하를 해주는 것일까.
내가 태어난 게 왜 당신들의 기쁨이 되는 거지?
어차피 서로 남이지 않은가?
매년 나의 생일이 찾아 오는 5월 초,
인생에 대한 성적표를 받는 기분이다.
이 세상에 나와 같이 태어난 사람들중에서도
누군가는 축하 받고, 누군가는 축하 받지 못한다.
사실은,
축하받지 못할까봐 두렵다.
나를 아는 사람들이 나를 위해
생일을 축하해주는 그 마음이 너무 예쁘다.
그래서 두렵다.
선물, 편지 따위 주지 않아도 되니까,
생일 축하해 라는 말만 툭 던져도 되니까,
내가 너의 기억 속에 여전히 존재한다는 걸 확인받고 싶을 뿐이다.
잘 지내?
나는 아직도 너의 기억속에 머물러 있을까?
내가 감히 너에게 그런 존재가 되어도 될까?
나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점점 사라져간다.
나 또한 그들을 잊고 살아간다.
-며칠 전 나의 블로그 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