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이쿠라에서 하루를 묵은 우리는 날이 밝자마자 기쿠치강을 거슬러 동쪽으로 향했다.
신메이산(真命山)을 지나자 이윽고 히고(肥後)의 광활한 평야에 들어섰다.
지형을 잘 봐두렴.
기쿠치로 가는 내내, 삼촌은 산악을 끼고 조성된 기쿠치 본성(本城)과 십팔외성(十八外城)에 관해 설명했다.
북조의 파상공세에 맞선 정서부의 대응 전략과 그 어려움도 덧붙였다.
“상대는 로슌(了俊) 장군이다. 무로마치 막부로부터 규슈(九州) 토벌의 중책을 맡고 탄다이(探題)로 임명되었지. 전략 전술은 물론 정치에도 능해서, 거칠고 고집 쎈 규슈의 호족들을 하나로 모으는 데 성공했다. 그의 서슬 아래 정서부는 지금 바람 앞의 등불 신세가 됐어.”
정서부는 한때 히고 평야의 곡창 지대를 빼앗기고 고립될 뻔하였단다.
기쿠치성은 산과 협곡 사이에 위치하였으며 시내가 있어 물이 풍부했다.
본성 바깥으로 십팔외성이 견고하게 버티는 방어체계였다.
얼핏 듣기에도 농성하기 좋은 형세였다.
반면 포위되면 식량 조달에 문제가 생겼다.
보급은 군사의 기본이다. 로슌은 기쿠치의 약점을 집요하게 노리는 중이었다.
재작년에 발생한 미즈시마(水島) 전투는 십팔외성 중 하나인 우테나성(台城)을 두고 벌어졌다.
우테나는 본성과 히고 평야 사이의 길목이었으며, 히고 평야는 다시 서쪽의 아리아케해로 이어진다.
우테나성을 빼앗겼다면 히고 평야를 잃고 서쪽 바닷길이 막혀버렸을 것이었다.
해적질을 통해 식량을 조달하던 기쿠치로서는 운명을 건 결전이었고, 패배했다면 아마 끝장났을 것이다.
하늘이 도왔는지, 로슌은 별안간 자신을 돕던 쇼니(少弐) 일족의 영주 후유스케(冬資)를 암살하였다.
조 삼촌은 로슌이 쇼니의 배신을 의심했다면서, 그의 지나친 조심성이 우리에게는 오히려 반전의 기회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왜냐하면 로슌과 쇼니 사이를 중재하던 규슈 남부의 영주 시마즈 우지히사(島津 氏久)가 무사로서의 명예와 자부심에 상처를 입었기 때문이다.
졸지에 암살에 가담한 꼴이 되어버린 시마즈는, 분개하며 로슌을 등지고 영지로 돌아가 버렸다.
로슌은 순간의 판단 착오로 쇼니 일족과 시마즈 일족을 적으로 돌려버린 것이었다.
기쿠치는 이때를 놓치지 않고 로슌을 몰아냈다.
로슌은 규슈 북서부로 물러났지만, 뒤이은 전투에서 기쿠치는 연달아 패배하며 다시금 본성에 고립되었다.
조 삼촌은 긴 설명을 끝낸 후 질문을 던졌다. 네가 로슌이라면 기쿠치를 어떻게 공략하겠니?
나는 아버지에게 배운 병법을 떠올리며 곰곰이 생각했다.
“병력 차이가 어떤가요?”
“로슌이 두 배 많다.”
“굳이 싸우진 않겠어요. 병력 차이가 두 배면 나누고, 다섯 배면 공격하라 했어요. 이만한 병력으로 산성을 공략할 순 없어요. 그렇다고 끌어내 싸우기도 애매해요. 병력을 나누어 한 무리는 산성을 공격해야 하는데, 평지라면 모를까, 손해가 클 겁니다. 그냥 포위해서 지칠 때까지 기다릴래요.”
“성 공략엔 시간 끌지 말라고 하였다.”
“그것은 군량 소모가 커지기 때문이에요. 또한 농사철이 되면 병사를 돌려보내야 하는데, 억지로 붙잡아 두면 탈영병이 생기고 군기가 문란해지죠. 하지만 히고의 광활한 평야를 직접 보니 그럴 걱정은 없겠어요. 탐라에서는 이렇게 비옥한 땅을 본 적이 없어요. 앉은 자리에서도 쌀이 날 것 같아요.”
“로슌 입장에서도 전쟁은 빨리 끝내는 것이 좋다. 싸움이 시작된 지 벌써 몇 년이나 되었어. 막부에서 말이 나오고 있다.”
“기쿠치는 결국 먼저 나와 싸울 수밖에 없어요. 식량이 바닥날 테니까요.”
“후, 네 말이 모두 옳다. 그래, 로슌은 전략을 숨길 생각조차 없어. 아주 노골적이지. 대단한 자신감이지만, 기쿠치로서는 마땅히 대응할 방법이 없구나. 병력 차이가 심하고, 심지어 로슌은 병사를 잃을 때마다 본토에서 채워 넣고 있다. 기쿠치가 살아날 방법이 있겠느냐?”
“로슌과 척을 진 쇼니, 시마즈를 끌어들여야죠. 무엇보다 전장을 옮겨야 해요.”
“전장을 옮기다니?”
“기쿠치성은 히고를 빼앗기면 사방이 막혀버려요. 간단하게 고립됩니다. 하지만 히고 평야를 사이에 두고 남북으로 대치해 보세요. 북쪽을 제외한 나머지 삼면이 모두 바다로 연결돼요. 로슌은 포위 작전을 포기해야 할 겁니다. 히고 평야 남쪽의 산간 지형은 방어하기에도 좋아 보여요.”
“기쿠치는 본성을 버리지 않을 거다.”
“왜요?”
“모르겠다. 여기는 그냥 그래. 땅에 무슨 보물이라도 파묻었나 보지.”
삼촌은 미간을 찌푸리곤, 고개를 절레 저었다.
기쿠치성을 지키면서 로슌을 이길 방법? 조금도 떠오르지 않는다.
보급이 끊기면 다 끝이다. 제아무리 용맹한 무사라도 배를 곯으면 굶어 죽는다.
현재 기쿠치는 평야를 온전히 장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로슌은 그 점을 집요하게 노렸다.
평야를 장악하지 못하니 군량이 턱없이 부족해서 해적질로 충당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었다.
시시때때로 탐라와 고려에 침구해 온 이유를 그제야 알 수 있었다. 기쿠치는 아리아케해 인근의 영주들과 함께 식량 약탈에 온 힘을 쏟고는 있던 것이다.
하지만 탐라는 식량이 적어서 애써 들어가 봐야 얻는 것이 적었고, 고려는 경계가 삼엄하여 한번 들어갈 때마다 목숨을 걸어야 했다.
히고 평야를 온전히 장악하지 못하는 기쿠치로서는 그래도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
나는 문득 삼촌을 보았다. 왜국의 사정은 그렇다 하여도, 삼촌은 어째서 탐라와 고려를 침략하는 왜구의 무리에게 동조하고 있는 것일까?
“삼촌은 아무렇지도 않아요?”
“무엇을 말이냐?”
“탐라는 우리 고향이잖아요.”
“녀석, 아직도 고려에 미련이 남았느냐?”
“고려가 아니라 탐라에요.”
“탐라는 이제 고려의 땅이다. 두 나라가 별개더냐.”
“아무리 그래도 탐라가 제 고향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아요. 고려가 싫다고 탐라를 미워할 수는 없어요.”
“탐노야. 나는 간신히 도망쳐 겨우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원은 망했고 고려는 탐라를 핍박했으나, 정서부는 나를 받아주었지. 변화를 받아들이거라. 공을 세워라. 여기에 새로운 삶이 있다. 이제 탐라는 돌아갈 수 없는 땅이 되었어.”
정말 돌아갈 수 없을까?
어머니 장례를 도운 마을 삼촌들, 그리고 총모자 할머니의 감주가 그리웠다.
뒤이어 김중광이 떠올랐다. 그가 쏜 화살이 아직도 어깨에 박혀있는 듯했다.
어쩌면 조 삼촌의 말이 맞는지도 모르겠다. 죽을힘을 다해 왜구를 막아냈건만, 탐라의 수령에게 화살을 맞았고 오히려 내가 죽인 왜구에게 구원받았다.
전쟁은 참으로 서글픈 것이었다.
나는 멀리 기쿠치성을 바라보았다.
기쿠치의 영주는 이제 십육 세에 불과한 다케토모(武朝)라는 이름의 소년이라고 하였다.
어린 영주의 손에 키를 맡긴 정서부의 운명이, 마치 파도를 타고 건너온 나와 같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