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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타치는 사진가 Aug 05. 2015

바다와 함께 살아가는 곳, 부산 영선동

바다 내음이 스며 있는 동네, 부산 영선동 사진 여행

  

자갈치 시장에서 올라 탄 버스는 영도 다리를 건너 가파른 언덕길을 올라간다. 투박한 부산 말씨도 그렇고 일본어 안내 방송도 새롭다. 버스 정류장에서 내린다. 평범한 주택가 도로 왼편으로는 낡은 연립 주택들이 있고, 그 주변으로 주차되어 있는 차들 역시 허름한 소형차들이 대부분이다.  


  나를 내려주고 출발한 버스를 따라 조금 올라가다 보니 오른 편으로 작은 골목이 나 있다. 기웃거리며 들어서 본다. 오랜만에 맡아 보는 개똥 냄새, 발걸음이 조심스러워진다. 막다른 골목이다. 열려 있는 대문으로 들어가는 것 말고는 다른 길이 없다. 살짝 대문 안을 들여다 본다. 옆집 아줌마 목욕하는 걸 훔쳐 본 것처럼 부끄러워진다. 대문 안 쪽에는 별 것도 없이 그냥 일상적인 살림살이들이 널브러져 있을 뿐인데...


  언제 물컹하며 밟힐지 모를 개똥을 조심하며 뒤돌아 나온다. 다시 버스가 다니는 큰 길이다. 조금 더 올라가 본다. 아래로 내려가는 화살표가 벽에 그려져 있다. 이 골목이 맞는 모양이다. 서너 개의 계단을 내려서고 어느 집 담벼락 모퉁이를 돌아서니 슬그머니 바다가 비집고 들어온다.  좁디좁은 골목 끄트머리에서 바다가 열리기 시작한다. 


  바다 위에는  군데군데 나무토막들이 떠 있고, 약간의 연무가 끼어 있어 시야는 그닥 선명하지는 않다. 몇 개의 계단을 더 내려서니 좁은 골목은 조금 더 넓은 골목과 만난다. 오토바이가 겨우 지나다닐만한 골목이다. 이사도 해야 하니 아마 리어카 정도는 간신히 지나다닐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새로 만난 골목은 겨드랑이 높이 정도의 담벼락으로 길게 이어져 있다. 담벼락 너머는 바다다. 부산 앞 바다, 영도 앞 바다. 바다 위에 떠 있던 나무토막은 나무토막이 아니고 거대한 상선들이다. 컨테이너를 하역할 시점을 기다리고 있거나, 산더미 같은 물건을 싣고 태평양을 건너기를 기다리고 있거나...


  오른 편으로 바다를 끼고 마을이 이어진다. 길은 시멘트로 말끔히 포장되어 있고, 담은 늘 겨드랑이 정도의 높이로 계속된다. 그 바다 너머로 부산의 또 다른 달동네인 감천동이 보인다. 결코 넉넉하다고 할 수 없는 동네, 팍팍한 삶의 모습들이 그대로 드러나 있는 동네, 새로운 것이라고는 별로 찾아 볼 수 없는 동네, 초현대적인 공법으로 지어진, 감천동과 영도를 잊는 남항대교와 동네 바로 옆에 있는 고층 아파트가 지금이 21세기라는 것을 알려 줄 뿐이다.


  까마득히 높은 바닷가 절벽 위로 이어져 있는 골목을 걷는다. 왼편으로는 가구를 구분하기 어렵도록 복잡하게 이어 붙어 있는 집들이 계속 이어지고, 오른편으로는 거대한 상선들이 군데군데 정박해 있는 너른 바다가 펼쳐진다. 엷은 해무가 끼어 있어 수평선은 보이지 않고 바다와 하늘의 구분 없이 그저 하늘의 푸른 색과 바다의 푸른 색이 자연스럽게 그라데이션을 형성한다. 바다와 나 사이에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저 야트막한 담벼락 하나가 둘 사이를 구분하고 있을 뿐이다. 이 길을 걷다 보면 문득 커다란 배를 타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너무나 커서 움직임을 알아채기 힘든...


  골목  중간중간에 평상이 놓여 있기도 하고, 편의점에서 쓰던 플라스틱 의자가 보이기도 한다. 플라스틱 의자는 마을을 향해 있다. 지나가던 객이 그냥 털썩 앉아 쉬었다 가기에는 앞에 보이는 집의 부엌이 너무 가깝다. 아마도 이웃 아낙을 위한 의자일 듯 싶다. 아니면 좁은 부엌에서 찌개를 곤로에 얹고 잠시 나와서 한 숨 돌리기 위한 의자일런지도 모른다. 주인 아주머니와 눈이라도 마주쳤다면 인사를 하고 물이라도 한 잔 얻어 마시면서 수다를 떨면 좋겠단 생각을 했지만 아저씨의 전기 면도기 소리만 들릴 뿐이다. 토요일 오후 뒤늦게 면도를 하는 걸 보면, 동창회라도 나가시는 걸까?


  지금 막 주인이 가져다 준 밥을 열심히 먹고 있던 고양이는 낯선 방문객이 무척이나 못마땅한 모양이다. 밥 먹으면서도 연신 곁눈질이다. 사진을 찍으려고 잠시 멈춰 서니 어서 니 갈 길이나 가라며 노려 본다. "미안해. 맛있게 먹어." 고양이던 개던 주인은 주인이고 객은 객이다. 맛난 식사를 방해했으니 사과를 할  수밖에.


  골목을 따라 오르막길을 가다 보면 자그마한 전망대가 나온다. 잠시 앉아 쉴 수 있는 몇 개의 벤치가 마련되어 있다. 바다를 향한 벤치가 마침 비어 있다. 다른 벤치에는 외국인 둘이 열심히 떠들어대고 있다. 저 친구들은 어떻게 알고 여기까지 찾아 왔을지 궁금해진다. 살짝 말을 걸어 볼까 싶지만 손에 들고 있는 맥주병이 부담스럽다. 술 취한 흑인의 영어는 자신이 없다. 그 옆에는 연세가 지긋하신 어르신 두 분이 이야기를 나누고 계신다. 토박이 영감님들의 부산 사투리 역시 어렵다.


  바다를 보면서, 오밀조밀 모여서 사는 골목의 집들을 보면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걷다 보니 어느덧 해가 저문다.  아무것도 거칠 것 없이 트여 있는 바다와, 그 바다를 향해 열려 있는 창으로 햇살을 받으며 살아가는 사람들, 어쩌면 내가 영선동에 오고 싶은 이유가 이런 것 일는지도 모르겠다. 거대한 바다와 조밀한 삶, 낮고 넓은 바다와 복잡하게 얽혀 있는 지붕들... 상반되는 모습이 골목 하나를 두고 좌우로 교차되는 곳, 영선동의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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