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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타오 Nov 06. 2024

뜨레 뻬르소네(23)

#23. 완수의 스트레스

성산포를 떠나면서 캠핑카가 덜컹거리며 엔진 등에 불이 들어왔다. 완수는 이상을 감지하고 걱정을 하며 계속 차를 몰았다.

완수가 말했다. "차가 좀 이상한데?"

뒤에 있던 칠 수가 말했다.

"워매.. 이상하면 치과 가면 되잖아!"

그런데 완수가 여느 때와 다르게 짜증을 냈다.

"너는 매사에 그렇게 사니께 안되는가"

그런 순간 차가 완전히 멈춰버렸다.


차가 멈춘 순간부터 완수와 칠수 사이에는 묘한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했다. 캠핑카의 엔진이 조용해지자, 차 안의 공기가 무거워졌다. 완수는 잠시 뒤 운전대를 놓고, 깊은 한숨을 쉬었다. "어떻게 된 거지?"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며, 그는 빠르게 핸드폰을 꺼내 수리 업체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완수야, 조금 천천히 해도 되잖아, " 옆자리에서 칠수가 말했다. 그는 주변을 둘러보며 이미 여행 중임을 즐기고 있었다. "지금 뭐가 그렇게 급해? 이런 일도 일종의 여행의 일부 아니냐?"

완수는 대답 대신 짧게 고개를 끄덕이며, 눈은 여전히 화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수리 업체가 근처에 있으면 금방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아, " 그는 빠르게 결정을 내린 듯 말을 이어갔다. "이대로 시간을 끌면 오늘 일정이 전부 어긋나게 될 거야. 가능한 한 빨리 움직여서 차를 수리하고 다음 장소로 이동하자고."

칠수는 그 말을 듣고 한숨을 쉬며 몸을 뒤로 젖혔다. "계획, 계획, 또 계획. 완수 너는 모든 걸 계획대로 하려고만 하잖아. 여유 좀 가져봐. 어차피 여행인데, 이런 일도 생기면 좀 즐길 수 있어야 하지 않겠냐?"

완수는 여유를 가지라는 칠수의 말에 속이 답답해졌다. "칠수야, 나는 이게 우리 나이에 소중한 여행이라 최대한 알차게 보내고 싶어. 계획 없이 시간을 허비하면 결국 아무것도 못 하고 끝나는 거 알잖아."

칠수는 완수가 계획을 지키려는 모습에 답답함과 약간의 실망감을 느꼈다. "너는 너무 빡빡하게 살아가는 게 문제야. 여행은 즉흥적으로 흘러가는 것도 묘미라고. 우리가 무슨 정해진 루트를 따라다니는 기계도 아니고, 이런 돌발 상황 하나 때문에 마음 상할 필요는 없지 않아?"

완수는 약간 상기된 얼굴로, 대꾸했다.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냐? 그냥 우리의 시간을 잘 활용하려는 것뿐이야. 다들 이 여행에 기대도 컸고, 이왕이면 계획대로 해서 남은 시간도 제대로 보내고 싶은 거야."

칠수는 웃음을 지으며 조금 비꼬듯이 말했다. "그래, 뭐 계획대로 하는 게 그렇게 중요하다면야. 하지만 난 그런 완벽한 계획보단 지금 이 순간을 더 즐기고 싶어. 우리 나이에서야 더더욱 그래야지. 너무 준비된 대로만 살다 보면 뜻밖의 재미는 놓치는 거잖아."

두 사람 사이에 감도는 긴장감에 정희는 말없이 그들을 지켜보다가, 결국 입을 열었다. "두 분, 조금만 서로의 생각을 이해해 보는 게 어떨까요? 사실 이런 돌발 상황이 우리를 더 가깝게 만들고, 기억에 남을 이야기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정희의 부드러운 중재에 완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의 마음속에서 한편으로는 틀어진 일정을 원래대로 되돌리고 싶은 조급함과, 다른 한편으로는 이 순간을 더 즐기고픈 마음이 충돌하고 있었다. "알겠어, 잠깐은 기다려보자. 그래도 일단 수리가 가능한지 여부는 알아보는 게 좋을 것 같아. 이왕이면, 이렇게 시간을 그냥 흘려보내는 것보단 대처를 해두고 싶은 마음이 있어."

칠수는 그제야 살짝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뭐 알아보는 건 나쁘지 않지. 그래도 너무 초조해하진 말자고. 잠깐이라도 여유를 즐길 수 있다면 그게 더 소중한 추억이 될 거야."

그렇게 둘은 정희의 중재로 서로 한 걸음 물러서며, 각자의 방식을 조금씩 이해하려고 애쓰기 시작했다. 완수는 마음속에서 일정을 맞추려는 강박과 자유로움을 찾아야 한다는 칠수의 이야기를 곱씹었다. 칠수는 완수가 가진 나름의 철저한 계획과, 소중한 시간을 놓치고 싶지 않다는 그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렇게 시간이 조금 흘러가자, 완수도 점차 긴장을 풀고 차창 밖의 풍경을 천천히 바라보기 시작했다. 바람이 느리게 지나가고, 제주도의 초가을 정취가 물씬 풍겨왔다. 저 멀리 붉은 억새와 은은한 초록빛 산비탈이 펼쳐지며, 그들만의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다.

이 잠깐의 고요 속에서, 완수는 이제껏 지나쳐왔던 여행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계획과 효율만을 좇다 보면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칠 수 있다는 칠수의 말이, 서서히 그의 마음속에 여운을 남기고 있었다.


사실 칠수는 캠핑카 운전을 힘들어했다. 그동안 완수가 계속 운전을 해와서 미안해서 천천히 가자고 했던 것인데 완수는 피곤한 상태에서 짜증이 났던 것이다.


그 순간, 정희가 말했다.


내가 이런 순간을 위해 준비했지요!

이제부터 내가 운전할 테니 수리받고 떠납시다!

완수와 칠수는 놀라 서로 쳐다보면서

정희 씨가!

정희가 말했다. "네! 저 대형 면허 있어요. 가끔 그림 옮기고 그럴 때 큰 그림 옮기려니 돈이 많이 들어서 땄어요."


잠시 후 보험 차량이 도착했고 배터리 이상이었고 배터리를 통째로 교환한 후 정희가 운전을 하고 다시 길을 갔다.


완수가 투덜대며 말했다.

"아니... 신차가 배터리 이상이 말이 되는가!"

칠수가 말했다.

"글게... 그래도 얼른 잊어버리고 경치나 봐.."

완수는 칠수의 말에 바다로 떨어지는 해를 바라보았고 탄성을 질렀다.

세 친구는 제주 바다의 석양에 놀라 선 채로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제주 바다는 인생의 황혼기를 맞은 세 친구에게 그동안의 시간을 위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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