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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살아내고 있다는 생각

by 이문웅

요즘 문득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나는 지금도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보다,
살아내고 있다는 사실이 더 또렷하게 다가온다.
살아간다는 말은 일상에서 흔히 사용하는 표현이다.
하지만 ‘살아낸다’는 말은 조금 다르다.

그 속에는 고통과 감내, 책임과 인내가 포함되어 있다.
살아낸다는 말에는 그 모든 시간을 견뎌냈다는 자각이 담겨 있다.

나는 지금 50대 후반을 지나고 있다.
흰머리는 예전보다 눈에 띄게 늘었고,
계단 몇 개를 오르내리는 일에도 숨이 찬다.
몸이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을 매일 느낀다.
하지만 육체보다 더 크게 다가오는 것은 정신의 변화다.

예전에는 조급했고, 성취를 원했고,
무언가를 이루어야만 가치 있는 삶이라 믿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하루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깨닫고 있다.

살아낸다는 말이 나에게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어느 날 우연히 거울을 본 순간이었다.
그날은 별일도 없었고, 기분도 나쁘지 않았다.
그저 거울 속 내 얼굴을 들여다보는데
눈가의 주름, 이마의 선, 굳은 표정이
예전과 다르게 보였다.

무언가를 설명할 필요도 없이,
그 얼굴에는 살아온 시간의 무게가 그대로 묻어 있었다.
그때 문득 '살아낸다'는 말이 떠올랐다.

우리는 보통 생존을 삶이라 부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이를 먹어가면서
나는 그 둘 사이에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생존은 살아 있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삶은 다르다.
기억이 있고, 감정이 있고, 판단이 있고,
그것을 통해 나 자신을 계속해서 구성해가는 과정이다.
살아낸다는 것은, 그 과정을 버티고 감당해낸 자에게만 주어지는 말이다.

나는 지나온 날들을 자주 돌아본다.
그 시절엔 왜 그렇게 애를 썼을까,
왜 그렇게 힘겨워했을까,
왜 그렇게 많은 걸 미뤘을까.
후회와 반성, 회한이 섞여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난 지금,
그 시절의 나를 미워하지 않는다.

그때의 나도 그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고,
그 모든 시간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중년 이후의 삶을 종종 '내리막'이라고 표현한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지금이야말로
불필요한 욕심을 비우고,
진짜 중요한 것들을 바라볼 수 있는 시기다.
젊은 시절의 나는
늘 미래를 향해 뛰어갔고,
현재는 그저 과정에 불과했다.
하지만 지금은
오늘 하루가 온전한 삶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이 하루를 무사히 보내는 것,
그 자체로 충분히 의미 있다.

살아낸다는 건 멋진 일이 아니다.
누구에게도 자랑할 수 없는
지극히 사적인 투쟁이자 감내의 시간이다.

상처받은 말을 삼키고,
실패의 책임을 홀로 짊어지고,
때로는 모든 것에서 등을 돌리고 싶던 순간을 버텨내는 일.
그런 것들이 쌓이고 쌓여
‘살아냈다’는 말이 비로소 입에 붙는다.

나는 지금도 완성된 삶을 살고 있지 않다.
계속 흔들리고, 후회하고, 미련을 품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다.


오늘도 괜찮았다.
아니, 오늘도 견뎠다.
그 말 한마디면
충분하다.


50대 후반,
삶은 아직도 명확하지 않고
끝도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살아냈다’는 감정이 내 안에 들어오기 시작한 순간,
나는 이전보다 더 나 자신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삶은 계속되고,
나는 그 속에서 또 하루를 살아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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