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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머리는 말이 없다.

by 이문웅

흰머리는 단지 머리카락의 색이 바뀌는 현상이 아니다.

그것은 존재가 시간 위에 남기는 흔적이며,
삶이 지나온 궤적이 물리적으로 드러나는 방식이다.

철학적으로 보자면, 흰머리는 '시간이 축적된 증거'다.
인간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나이 들며, 사라지는 존재다.
그러나 그 변화는 대부분 내면에서 일어난다.


감정, 신념, 후회, 회복

이 모든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흰머리는 그 보이지 않는 시간의 흐름을 시각화한다.
그 자체로 인간의 유한성과 지속을 동시에 담고 있는 기호다.

우리는 보통 ‘흰머리가 났다’고 말한다.


하지만 흰머리는 갑자기 생기지 않는다.
그것은 오랜 시간 축적된 결과이며,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조금씩 번진다.
어느 날 문득 거울을 보았을 때,
이미 양쪽 귀 옆은 하얗게 변해 있었고,
그제야 우리는 인식하게 된다.


나에게도 ‘시간’이 흐르고 있었음을.

인간은 대개 시간에 무감각하다.
시간은 똑같이 흘러가지만,
그 시간의 진폭은 사람마다 다르게 느껴진다.
어떤 날은 하루가 몇 주처럼 느껴지고,
어떤 몇 년은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은 채 사라진다.


흰머리는 그 모든 시간들의 잔존물이다.
기억은 희미해지지만, 머리 위의 흰 선은 지워지지 않는다.

젊었을 땐 시간의 흔적을 지우려 했다.
주름을 펴고, 머리를 물들이고,
몸을 단련해 시간에 저항하려 했다.


그러나 결국, 우리 모두는 시간과 싸워 이길 수 없다.
그 싸움은 어느 시점에서 멈추게 되어 있다.
그리고 그 멈춤의 첫 신호가,
바로 ‘흰머리의 수용’이다.

흰머리를 받아들이는 일은
단순히 외모를 내려놓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자기 인생에 대한 태도이며,
삶을 바라보는 관점의 전환이다.


흰머리는 묻는다.
"너는 너의 삶을 어떻게 살아왔는가?"
그리고 또 묻는다.
"그 과정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가?"

어떤 이는 흰머리를 노쇠함의 상징이라 여기고,
또 어떤 이는 지혜의 상징으로 여긴다.
철학은 그 둘 모두를 넘어서서,

흰머리는 존재의 고요한 기록’이라는 제3의 언어로 말한다.
그 기록에는 수많은 말들이 들어 있다.
침묵한 순간들, 분노를 삼킨 밤들,
끝내 꺼내지 못한 말들과,
마지못해 보낸 사람들의 이름들.

흰머리는 기억의 집적이기도 하다.
기억은 종종 왜곡되거나 사라진다.
하지만 흰머리는 사라지지 않는다.

지워지지 않는다는 것,
그것이 존재의 진실을 말하는 방식일 수도 있다.

하이데거는 인간 존재를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존재(Dasein)"라 했다.
그 말은 삶이 끊임없이 소멸을 향해 움직이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하지만 동시에,
그 죽음을 인식할 수 있는 존재는 인간뿐이다.
흰머리는 바로 그 인식의 물리적 징표다.
“당신은 지나온 시간보다 남은 시간이 적은 쪽에 있다.”
이 말을 직접 하지 않지만,
흰머리는 조용히 그것을 전달한다.

그렇다고 흰머리를 ‘죽음의 전조’로만 해석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흰머리는 생존의 증거이기도 하다.


그만큼의 시간을 버텨낸 사람,
그 모든 관계와 감정과 판단과 실수를 견뎌낸 사람,
그 사람이 흰머리를 갖는다.
어떤 사람은 나이를 숫자로 헤아리지만,
나는 가끔 흰머리의 밀도와 위치를 통해
그 사람의 삶의 결을 짐작해 본다.

나는 한때 흰머리를 감추고자 했다.
그게 자연스러운 선택이라 여겼다.



외적인 변화를 늦추는 행위,
사회적 이미지의 방어.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염색은 나를 편하게 만들지 못했다.
오히려 스스로를 부인하는 느낌마저 들었다.
하지만 그건 그냥 나의 또다른 우상일뿐.
나이든 나를 정면에서 바라보고자 하는
성숙한 마음으로 하루를 산다.


중요한 건 형태가 아니라 태도다.
나는 나 자신과의 관계 속에서
이 흰머리를 어떤 감정으로 받아들이고 있는가.
그 질문이 삶의 방향을 바꾼다.

사람은 결국 자기 자신과 화해해야 한다.
그 화해는 외면의 수용에서 출발해
내면의 인정으로 이어져야 한다.

흰머리는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첫 계단이다.
“나는 여전히 나다.
하지만 그런 나도 변하고 있다.”
이 고백을 담담히 꺼낼 수 있는 사람이
비로소 흰머리를 품을 수 있다.

흰머리는 말이 없다.



그러나 그 침묵은 질문을 낳는다.
삶은 무엇이었는가?
나는 누구로 살아왔는가?
앞으로는 어떤 존재가 되고 싶은가?

그 질문을 끝내 외면하지 않을 때,
흰머리는 나를 부끄럽게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흰빛 안에서
우리는 삶의 전체를 다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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