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동적인 상하이 중국어 (2)
6월의 첫 주말, 금요일 오후 늦게 도착한 상하이는 곧 노을이 지는 시각이었다. 푸동공항에서 그랜드센트럴호텔까지의 거리는 짧지 않았지만, 차창 밖으로 보이는 상하이의 화려함은 피곤함보다 설렘을 자극했다.
호텔 체크인 후, 곧바로 예약해 둔 Mercato로 향했다. 메르카토는 미슐랭 3 스타로 등재된 고급 이탈리안 레스토랑으로 동방명주가 한눈에 보이는 뷰로 유명하다.
산책 겸 난징동루와 황푸강을 따라 걸어갔다. 끝없이 늘어선 고층 빌딩들과 대조되는 유럽식 와이탄 건물들, 미디어에서만 보던 동방명주가 나를 반갑게 맞이하는 듯했다.
저녁 6시가 조금 지난 시각에 레스토랑 입구에 도착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레스토랑이 위치한 층에 올랐다. 드넓은 통유리창 너머로 빛나는 와이탄과 황푸강, 그리고 그 너머로 동방명주의 모습이 펼쳐졌다.
이날 저녁은 이 도시의 밤을 오롯이 느껴보기로 한 날이었다. 중국에서 가장 세련된 도시 중 하나답게 상하이의 야경은 늘 기대 이상의 무언가를 보여준다고들 했다. 나는 마음먹고 가장 아름다운 방식으로 이 도시의 밤을 맞이하고 싶었다.
그래서 한국에서 미리 레스토랑을 조사하여 예약을 해두었고, “我想要靠窗的位子。” (창가 자리를 원해요.)라는 문장까지 준비해 두었다. 고급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창가로 안내받았지만, 막상 자리에 앉아보니 와이탄(外滩) 쪽 전망만 보이고 동방명주(东方明珠)가 시야에 들어오지 않았다. 순간 망설였지만, 용기를 내서 말했다.
“可以换到能看到东方明珠的座位吗?” (동방명주가 보이는 자리로 바꿔주실 수 있나요?)
라고 이야기했으면 완벽했겠지만 급한 마음에
我想看东方明珠。 (동방명주가 보고 싶어요.)
라는 간단한 말만 했다. 하지만 직원은 친절하게도 조금 더 안쪽이지만 탁 트인 전망의 자리로 나를 안내해 주었다. 전망을 즐기며 주문한 음료수와 피자와 미트볼 등을 먹으며 해가 지는 시간까지 기다렸다.
드디어 저녁 7시, 하늘이 점점 어두워질 무렵 동방명주에 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보랏빛, 파랑빛, 붉은빛… 그 변화무쌍한 조명에 맞춰 창밖은 살아 움직이는 예술 작품처럼 빛났다.
솔직히 말하면 음식은 그렇게 맛있다고 느껴지지 않았지만 식사 내내 생전 보지 못한 아름다운 풍경에 취해, 음식의 맛은 흐릿하게 남았을 정도였다.
레스토랑을 나선 후, 동방명주 아래에서 펼쳐지는 드론쇼를 보기 위해 황푸강 쪽으로 걸어갔다. 수많은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꺼내 들고 하늘을 바라보는 사이, 수많은 드론이 하늘 위를 수놓기 시작했다.
셀 수 없는 드론들이 춤추듯 하늘을 가르며 형상을 만들고, 상하이의 상징들이 눈앞에 떠올랐다. 거대한 도시의 기술력과 예술이 어우러지는 순간, 한동안 말없이 하늘만 바라봤다.
쇼가 끝난 후에는 와이탄의 강변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조명이 반짝이는 유럽풍 건물들, 노을이 완전히 내려앉은 강가,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들. 그 모든 것이 섞인 상하이의 밤이 깊어갔다.
걸어서 이동한 마지막 목적지는 예원의 밤거리. 낮보다 밤이 더 아름답다는 이곳은, 고풍스러운 건물과 조명이 만들어내는 분위기가 마치 무협 영화 속 배경 같았다.
예원의 옛 거리로 가는 길에 덥고 목이 말라서 노점에서 파는 하미과도 사 먹었다. 그리고 그 골목 깊숙한 곳에 자리한 한 찻집. 낮에 왔으면 지나칠 수 있었던 장소였지만, 음악과 조명에 이끌려 들어가게 되었다.
중국의 전통 차에 대해 생소했기 때문에 찻집에 들어가면서 중국어로 소통하는 것이 다소 걱정되었다. 하지만 찻집 주인은 국제도시 상하이답게 영어에 능숙했다. 덕분에 차에 대한 설명과 마시는 방법 등을 상세하게 들었다.
밤이 늦은 시간이라 카페인이 적은 백차(白茶)를 주문했다. 조명이 음악에 맞춰 부드럽게 반짝이는 모습을 감상하며 테라스에서 조용히 차를 음미했다. 뜻밖에도 은은한 단녹차 맛이 느껴져 한 모금 한 모금이 부드럽고 따뜻했다.
그렇게 상하이의 첫날밤은 천천히 마무리되었다. 말이 통해서 좋았고, 말없이도 감동할 수 있어서 더 좋았다. 빛나는 도시에 내가 좋아하는 언어들이 녹아들었고, 그 안에서 나는 어느새 조금은 이 도시의 일부가 된 듯한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