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이 소중해지는 이유
첫사랑의 설렘처럼 외로움과 이별이란 독립적인 감정으로 남아 쉽게 익숙해지지 않는다.
언젠가 정말로 아끼고 사랑하던 강아지를 떠나보낸 적이 있었다. 그동안 많은 동물들을 키워오고 많은 이별을 겪었지만 유독 보냄이 쉽지 않았던 아이가 하나 있었다.
그 강아지의 이름은 까미였고 10년이 넘게 우리 가족과 함께한 충견이었다. 까미는 12살의 겨울을 넘기지 못하고 하늘의 구름이 되어 저 멀리 희미하게 사라져 갔다.
또 한 번의 이별을 하며 나는 느꼈다. 정을 나눈 존재와의 이별은 좀처럼 익숙해지는 것이 아님을.
이별이 익숙지 않은 가슴에 몇 마디 말을 건넨다. "넌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니?" 무언가 떠나간 빈자리를 다시 채우는 일을 하고 있을 내 가슴에 물어본다. 무엇으로 그 자리를 다시 채워나갈 생각인지.
이별은 익숙해지는 과정이며 무뎌지는 과정이라고들 한다. 마음에서 떠나보내고 곁에서 멀어지는 것에 익숙해질수록 어른이 되어간다고들 말한다.
실제로 어른이 된다면 더욱 많은 이별을 해야 할 때가 있다. 나도 시간이 지날수록 영영 이별해야 하는 이들이 주변에 더 많아짐을 느낀다. 마음을 나누고 그 존재를 받아들인 이들이 언젠가 떠나간다는 것을 인지할수록 그들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은 더욱 커진다.
그러나 그런다고 하여 떠나보냄이 내게 익숙해짐은 아니었다. 나는 아직 그 부분에서는 어른이 될 준비가 되지 않았을는지도 모른다.
나는 이별이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만남이 더욱 귀하다. 잠깐의 만남이라도 더욱 소중해짐을 느낀다. 찰나를 내게 스치는 존재들이 얼마나 소중했는지를 깨닫게 된다. 그것이 내가 이별의 슬픔을 대하는 자세였다.
지금 비워진 자리를 애도하고 슬퍼한다. 그런 뒤에는 이제 내 곁에 있는 이들을 돌아본다. 그들을 보며 나의 존재를 다시 깨닫는다. 나를 기억하고 알아주는 이들이 있기에 나의 존재가 건강하게 만들어져가고 있음을 깨달으며 이별만큼 찬란하고 아름다운 만남들을 만들어가고자 한다.
아끼는 형이 유학을 가고, 사랑하던 친구가 먼 타지로 취업을 한다. 가족들도 독립을 해서 멀어지고 자연스럽게 잊혀가는 이들이 하나둘 생긴다. 만남을 계속할수록 그만큼 이별도 쉬워지는 걸까. 나는 인격과 인격이 그렇게 쉽게 대해지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면서도 그것이 자연스러운 과정임을 배워간다.
누구에게나 나는 인격적인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것은 전인적인 존중과 존경으로 상대를 대하고, 자신과 같이 사랑하는 마음으로 타자를 타자화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과정을 말한다. 그러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이 처럼 부족함이 많은 나를 받아들이고 사랑할 줄 아는 과정이 필요했다.
내게 있어 인격은 결코 쉽게 대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소중했고 그렇기 때문에 조심스러웠다. 이별이란 마주하던 인격을 이제 가슴 한편에 두고 잠시 혹은 아주 오래 떨어져야만 함을 그리고 그것을 인정하는 과정이었다. 더욱 사랑하고 아낄수록 이별이 쉽지 않음은 그런 이유에서였다.
이제 열었던 글을 닫는다. 이 글을 읽는 독자 여러분과도 잠시나마 이별을 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다음 글로 다시 당신을 만나러 오겠지만 나는 그대가 언제인지를 확언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것 하나만큼은 기억해줬으면 한다. 나는 이글 하나하나를 마치 편지와 같이 정성 들여 당신을 위해 보냈다. 사랑을 담아서, 당신은 이 글로도 사랑을 받을 수 있음을 깨닫게 해 주기 위해서 이 글에 마음을 실어 보냈다.
인격을 묵상하고 인격을 생각한다. 그것을 더욱 깊이 받아들이고 가슴속에 묻는다. 나는 이 모든 과정을 사랑이라 생각한다. 서로 모르는 우리가 글을 통해 알아가고 자신을 깨달아가며 스스로가 자신다워지는 일련의 모든 과정을 나는 사랑이라 믿는다.
부디 다음 글로 만날 때까지 건강하길 바라며, 이만 글을 줄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