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뮈와 실존주의
지난 글 https://brunch.co.kr/@giugw/401 에 이어서 그 뒷내용과 해소를 이곳에 적습니다.
그리스 신화에서 시지프는 신이 내린 징벌을 받아서 끊임없이 돌을 굴려야 한다. 아무 의미 없는 고된 행위를 반복하며 습관으로 전락한 인생을 산다. 의미가 없어서 인생은 막막해진다. 막연한 시간은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다. 아무런 희망이 없기 때문에 반복이 끝나기만을 바라야 한다.
그 삶을 무엇으로 멈추는가? “죽음”이다. 스스로 굴레를 벗어나고자 한다면, 자력으로 죽음을 향해 질주해야 한다. 그것이 “자살”이다. 의미와 희망을 상실한 인생을 아무도 붙잡아주지 않을 때 일어나는 제일가는 비극(Das tragischste Ereignis)이다.
실존주의, 실존철학은 “실제로 그곳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는 일”이라 생각한다. 결국 인간을, 그리고 그곳에 있는 타자들을 사랑하는 일이다. 사랑한다면 타자가 아니다. 내가 알고, 나를 알게 될 친구가 된다. 추억을 공유했기 때문에 상대방으로 인해 비로소 “나”라는 존재를 설명할 기반이 생긴다.
그래서 ‘타자’는 ‘나’의 근거이다. ‘나 됨’은 ‘당신’이 없으면 이뤄질 수 없다. 삶은 함께 살아야 비로소 의미를 얻는다. 가치는 사랑이 만든다. 그래서 사랑은 모든 비극을 막는 힘이다. 사랑이 작용하는 자리에 희망이 수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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