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자는 아닙니다만
피아니스트. 는 어렸을 때 내 꿈이었다. 그게 뭔지도 모르면서 그냥 꿈이었다.
피아노를 치는 게 좋았다.
1979년에 태어난 우리 집에 피아노가 있었다고 하면 다들 "엄청 부잣집이었나 보다."라고 한다.
태어난 집의 피아노는 기억나지 않고, 어려서 이사한 외풍 심한 이 층집 마루의 까만 영창피아노가 내가 기억하는 우리 집 피아노이다. 겨울이면 온 가족이 내복에 점퍼를 입고 덜덜 떨면서 지하실에 연탄 갈러 내려가던 집과 피아노는 너무나 안 어울리는 조합이었다. 엄마아빠, 동생들, 할머니, 할아버지, 삼촌, 고모 등 대가족이 사는 집에선 하루종일 텔레비전 소리와 식구들이 북적이는 소리가 났다. 거기서 어떻게 피아노를 연습했지? 식구들이 날 참아준 건지, 내가 낯짝이 두꺼운 건지 잘 모르겠지만 하여튼 피아노 치는 게 재미있었다.
'나래피아노'
학교에서 집으로 거의 다 올 때쯤 골목에 피아노학원이 있었다. 새시로 된 유리문에 하얀색으로 시트지를 붙여 안이 들여다보이지 않았다. 문을 당겨서 열고 들어가면 바로 앉아서 피아노를 칠 수 있을 만큼 좁은 공간에 양쪽 벽을 등진채 피아노 두대가 있었고, 그 사이에 간이 벽이 하나 있었다. 이쪽에서 피아노를 치면 저쪽에 소리가 다 들리고, 저쪽에서 치면 이쪽에 소리가 다 들렸다. 선생님 겸 원장님은 눈이 크고 예쁘장한 얼굴이셨다. 내가 치는 곡을 먼저 시연해 주실 때면 난 우리 선생님이 세상에서 피아노를 가장 잘 친다고 생각했다.
어려서부터 혼자 피아노를 치다가 학원에 다니게 되니 무척 신났었다. 바이엘 A를 한 달 만에 끝내고 B도 몇 달 안에 마쳤다. 그럴 수 있었던 건 그 당시 나의 취미가 음악감상이기 때문이었다. 바이엘로 시작해 베토벤, 쇼팽에 이르는 음악가들의 곡이 수록된 전집 앨범을 카세트에 꽂아 매일같이 듣는 게 하교 후 피아노학원에 들렀다가 집에 와서의 루틴이었다. 손으로 치지 못했던 익숙한 곡들을 직접 치다 보면 악보는 대충 보고 들었던 기억으로 쳐 내려갔다. 이것 때문에 몇 년 후 나는 기초가 안 잡혀있고, 손모양도 엉망에 악보는 대충 본다는 혹평을 (독일에서 피아노를 전공하고 잠시 한국에 귀국한 목사님의 막내따님으로부터) 듣게 된다. 그때 어른들이 하는 얘기가 '나래피아노 선생님은 사실 전공자가 아니고, 피아노를 조금 칠 줄 알아서 피아노학원을 차렸다.'였다. 어린 마음에 '나래피아노 선생님 댁이 우리 집 앞집이고 렛슨비도 저렴해서 내가 그 학원에 다녔을 거'라는 예상이 되면서도, 처음 시작부터 전공한 선생님을 만났다면 난 기초도 탄탄하고 손모양도 잘 잡혔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시작이 그래서였을까. 초2부터 중3초반까지 학원을 두어 번 옮기며 7년 반동안 피아노를 쳤지만 전공자는 될 수 없었다. 거기서 피아노와의 인연은 끝인 줄 알았는데, 지금까지 줄기차게 40년간을 이어오고 있다. 그 얘기를 풀어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