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여고생의 고민

3년의 시간만큼

by 엄살

다행히 원하던 인문계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중학교와 달리 집에서 걸어 다닐 수 있는 거리였고, 광명시에서 알아주는 공부 잘한다는 광명북고등학교였다. 춘추복은 무난한 남색인데 동복은 '똥색'이라 부르는 갈색재킷을 입고 다니는 것으로도 사람들의 시선을 잠깐씩 받았다. 물론, 그런 것들은 학교 생활하는데 아무 소용도 재미도 없었지만...


입학하기 전 엄마랑 백팩을 사러 시장에 갔다. 내가 얼토당토않은 누런색의 삼각형모양 백팩(별로 튼튼해 보이지 않는)을 골랐는데 엄마는 별말 없이 허락해 주셨다. 입학하고 2-3일째 되는 날, 선도부들이 쫙 서있는 교문을 지나치는데 '투둑'하면서 가방 한쪽 끈이 끊어졌다. 다행히 반대쪽 끈이 버티고 있어서 가방이 바닥에 추락하는 건 면했지만, 뭔가 준비 안된 고등학교 생활을 시작하는 듯한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중학교 3년의 시간은 역변하기에 충분했다. 나만 빼고.

국민학교 졸업 후 여중을 거쳐 남녀공학에서 다시 만난 남자친구들은 키가 많이 커 보였다. 물론 서로 인사도 안 했다. 여학생들은 아는 척은 했지만 국민학교시절 공부 잘하고 피아노 잘 치던 나로 봐주지는 않았다.

'난 지난 3년 동안 무엇을 한 것일까? 지금 난 도대체 뭐지?'

불안감이 엄습했다.


정규수업은 5시 정도에 끝났지만, 그다음부터 계속되는 자율학습은 매일밤 9시 40분까지 이어졌다. 50분 공부, 10분 휴식이 반복되는 동안 풀지도 않는 문제집을 펼쳐 놓고 선생님의 시선을 피해 친구랑 수다를 떨거나, 이어폰을 귀에 꽂고 음악을 들었다. 자율학습이 끝나면 부리나케 집으로 걸어와 라디오로 10시에 시작하는 '별에 빛나는 밤에'를 틀었다. 12시에 별밤이 끝나면 잠들고, 아침에 일어나 학교에 갔다.


1년을 그렇게 보낸 내 성적은 바닥을 뚫고 들어갈 지경이었다. 담임선생님과 만나고 돌아온 엄마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당장 학원을 보낸다며 날 수학학원으로 데려갔고, 그날부터 자율학습시간 마치고 나오면 학원버스가 대기하고 있었다. 엄마로부터 내 성적을 듣고 날 거의 바보(?) 정도로 생각했던 학원선생님은 대놓고 나를 무시하는 게 보였다. 그게 날 자극했을까. 남들처럼 자율학습 끝나고 학원버스를 타고 가서 공부를 한다는 새로운 스케줄이 순간적인 각성효과를 일으켰을까. 마침 그 학원에는 얼굴을 아는 몇몇 친구들도 있어 의연한 척 다녔고, 한 달 만에 성적이 올라 그만두었다. 자존심을 지킨다고 12시까지 공부시키는 학원 스케줄을 소화하기엔 한 달이 마지노선이었다. 그만두고 나니 계속 그렇게는 못 살았겠다 싶었다.

첫 겨울 방학이 되었다.



스크린샷 2025-01-01 194522.png 출처. 핀터레스트


오랜만에 피아노 앞에 앉았다. 매주 교회에서 성가대 반주를 하고 있었지만, 집에서 피아노를 치는 건 오랜만이었다. 예전에 낑낑거렸던 작품집을 꺼내어 쳐 보았다. 베토벤도 쇼팽도 여전히 만만치 않았다. 그래도 계속해서 손가락을 놀렸다. 그게 나를 표현할 수 있는 무엇이 될 수 있는 것처럼.


방학 동안 자주 피아노를 열었다. 바흐나 모차르트가 생각나는 날도 있었다.

'별밤에서 피아노 곡을 소개해주면 좋을 텐데....'

낮시간에는 클래식 라디오도 입문했다.


2학년부터는 문과 이과를 나누었는데, 고민 없이 문과를 선택했다. 다행히 2학년부터는 조금씩 성적이 올랐는데, '대학수학능력시험'이라는 형식이 그나마 나랑 맞아서 '어쩌면 대학...'이라는 희망을 주었다. '신문방송학과'라는 과에 가고 싶다는 희망도 생겨서 조금 더 공부에 집중할 수 있었다.


2학년 말 음악실기평가는 '본인이 할 수 있는 악기연주'였다. 난 쇼팽의 '강아지왈츠'를 선택했다. 음악실 앞쪽의 업라이트 피아노로 '남들 앞에서 연주'를 오랜만에 하려니 긴장되었다. 나도 모르게 빨라지다가 마지막에 스르륵 내려오는 부분에서 마구 틀리면서 연주를 마무리했다. 민망하고 창피했다.

크리스마스에 카드를 한 장 받았다.

손원평(아몬드의 작가이자 당시 같은 반 친구였다)에게 받은 카드였는데,

'너의 강아지왈츠를 듣고 집에 가서 나도 쳐 보려고 했는데, 너만큼 잘 되진 않더라...'는 겸손한 칭찬이었다. (그 카드를 받고 그런가 보다 했는데, 원평이가 이렇게 유명한 작가가 될 줄 알았다면 잘 간직해 둘걸 그랬다)


다음 해 겨울, 대학에 입학했다. 한양대 에리카 캠퍼스.

원하던 신문방송학과가 아닌 중어중문학과에...




keyword
이전 04화여중생의 취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