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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직장은 피아노 학원

그리고 밴드활동

by 엄살 Feb 12. 2025

1년 휴학 후 바로 3학년으로 복학했다.

보통 언어 전공자들은 휴학하면 어학연수를 다녀오는 게 필수코스이나, 난 일 년 동안 피아노를 가르치며 어학 학원을 다녔을 뿐이었다. 한층 심화된 전공수업은 내가 문학에는 도통 관심이 없다는 사실을 제대로 일깨워 주었기에 전공필수학점만 이수하고 전공과는 '이별'을 고하기로 했다. 3학년 내내 들을 수 있는 전공학점을 최대한 맞춰서 1년을 버티고, 4학년 때는 취업 혹은 듣고 싶은 교양으로 시간표를 채웠다. 


'비즈니스 매너'라는 수업은 면접 인사법을 시작으로 조를 짜서 면접 예행연습으로 시험 봤던 게 기억에 남는다. 음악수업도 들었는데, 중간고사로 할 수 있는 악기를 연주해 보라 했다. 김광민의 재즈곡 '애나'와 쇼팽의 왈츠 한 곡을 준비했다. 다시 피아노와 친해지려고 노력 중이었지만 많은 학생들 앞에서 등을 보이고 업라이트 피아노를 연주하다니, 더구나 재즈의 감성을 전달하기란 내 역량으로 어려운 시도였다. '앞에 나가서는 쉽더라도 충분히 잘하는 걸 하는 게, 어려운 걸 틀리면서 하는 것보다 낫다는데...' 그날 그것을 배웠다.


취업의 길은 험난했다. 어학 전공자가 이력서를 낼 수 있는 곳은 많지 않았다. 새벽에 종로에 있는 어학원으로 가서 토익수업을 듣고 낮에는 호텔에서 알바를 하며 원서를 넣었다. 친구의 권유로 '승무원'에 도전했는데, 1차에서 붙고 2차에서 낙방하기를 몇 차례 하다가 당시 사용하던 신용카드빚이 계속 쌓이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알바를 해서 버는 돈만으로 어학원이며 취업준비를 하기엔 많은 무리가 되었다.   






내 사정을 알게 된 교회의 피아노학원 원장님께서 학원에서 강사로 일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하셨다. 평소 내 피아노 소리를 유심히 듣고 계셨다고 했다. 전공자가 아니지만 전공자에 준하는 대우를 해주겠다는 감사한 말씀까지 해주셔서 한번 해보기로 했다. (지금은 전공하지 않으면 피아노학원에서 강사로 일할 수 없다. 20여 년 전이라 가능한 일이었다) 


피아노 학원이라는 시스템은 내 생활 리듬과 아주 잘 맞았다. 초중고 12년+대학 4년까지 학생으로 살았던 시간은 새 학기 시작과 함께 힘차게 달리다가 여름에는 방학 기분을 만끽하고, 가을부터 차분하게 가다가 겨울이 되면 방학을 하는 분위기에 적응돼 있었다. 이젠 학원에 나오는 학생들의 시간에 함께 흘러가면 되었다. 더구나 근무시간이 12시-6시여서 출퇴근 스트레스도 없었다. 


교재는 내가 어려서 배웠던 그대로를 사용하고 있어서 배운 대로 가르쳤다. 연주 시연을 위해 집에서 틈틈이 손가락을 풀었다. 예전 생각이 나면 어려운 작품들을 한 번씩 펼쳐보았다. 클래식 전공에 대한 마음이 조금씩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새 교회 찬양단도 많이 변했다. 피아노만 놓고 찬양하던 때는 오케스트라가 된 양 처음부터 끝까지 마음껏 휘저으면(?) 되었는데, 드럼 베이스기타 일렉기타 건반 1,2 가 같이 하는 밴드라는 형식에서는 다르게 쳐야 했다. 그저 느낌으로만 해오던 것들을 악보 위에 그려서 모두가 알아볼 수 있게 만드는 능력도 필요했다. A, B, C, D.... 정도의 코드만 알았는데 Am, AmM7, Adim, A2, A13, Asus4.... 암호들이 쏟아져 나왔다. 


한동안은 CCM가수를 수소문해 반주법 개인레슨을 받고, Jazz 책에 있는 코드를 수학공식처럼 외웠다. 

'수학을 잘하는 사람이 피아노를 잘 친다는데...' 외우는 것만이 살 길이라는 각오로 집중했다. 

코드를 외우고 나자 다음 단계는 copy였다. 다른 밴드가 하는 것을 듣고 그대로 따서 쳐 보기. 그전에는 피아노 소리밖에 안 들렸는데, 사실은 꽤 많은 소리가 어우러지는 거였다. 건반도 메인은 피아노 소리를 주로 사용하지만, 세컨드는 스트링부터 오르간과 각종 효과음을 찾아서 낼 수 있어야 했다. 


피아노는 그냥 치면 되는데,  건반으로 사용하는 신시사이저는 소리를 찾는 것부터가 시작이었다. 대신 소리 자체에 효과가 들어가 있어 적당히 쳐도 분위기를 살릴 수 있다는 대단한 장점이 있었다. 생목으로 부르는 것보다 효과가 들어간 마이크에 대고 부르면 더 잘 부르는 것처럼 들리듯이 말이다. 


출처. 핀터레스트(밴드 이미지)


가장 어려웠던 건 소리를 많이 내는 게 아니라 많이 빼는 거였다. 피아노가 주인공이 되어 치던 스타일은 밴드랑은 맞지 않았다. 특히 일렉기타가 너무 생소한 데다 소리 색깔 자체가 주인공이 되기 때문에 일렉주자와는 은근한 신경전이 있었다. 자연스레 내 소리를 냈다가 빼는데 몇 년의 시간이 걸렸다. 


어차피 매주 토요일마다 모여서 찬양단 연습을 했으므로 시간대비 실력이 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어쩌다 보니 나의 20대는 신시사이저라는 악기를 마스터하는 시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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