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와 피아노는 양립할 수 있을까요
결혼 직후부터 우리는 2년 정도 시댁에 들어가서 살았다.
다행히 입덧도 거의 없었는데, 단 한번 복숭아가 먹고 싶다는 말에 남편이 늦은 시간 마트에서 황도와 백도 통조림을 사 왔다. 겨울에 복숭아를 구한다는 게 불가능할 거라 생각했는데, 남편의 센스와 정성이 고마워서 국물까지 싹 다 마실 정도로 마음이 훈훈한 새댁으로 지내고 있었다.
친정엔 어려서부터 나와 함께한 까만 영창 피아노가 있었다. 엄마도 동생도 치지 않는다며 가져가라고 했다. 그걸 시댁으로 옮기고 조율하는 데만도 돈이 꽤 들었다. 욕심껏 가지고는 왔는데, 막상 시부모님과 시아주버님까지 있는 집에서 치기는 쉽지 않았다. 그렇게 나의 피아노는 자리만 차지하고 있었다.
2년쯤 뒤에 분가를 했다.
살림은 특별히 산 게 없어서 이불과 두꺼운 라텍스매트, 옷가지와 책, 그리고 피아노가 전부였다.
이사 가는 집이 작아 피아노가 들어갈 공간이 마땅치 않았다. 피아노를 포기하기는 싫고, 그렇다고 가져갈 수도 없어 피아노를 조율했던 분에게 연락을 드렸다. 그분이 원래 피아노를 매입하면서(너무 오래되고 커서 그냥 가져가주시는 것도 감사해야 하는 상황) 그보다 조금 작은 가정용 삼익 피아노를 권해주셨다.
작은 집이지만 나의 공간이 생기니 가끔씩 피아노에 앉게 되었다.
아이가 어릴 때는 잠들면 깰까 봐, 기어 다닐 때는 눈을 뗄 수 없어서, 어린이집에 보낼만하니 둘째가 태어나고 둘 다 어린이집을 보내기 시작할 때쯤에야 교회에서 특송 반주를 시작했다.
내가 피아노를 칠 수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어느 정도 치는지 몰라서 다들 반주부탁을 못 하고 있었단다.
(우리는 결혼 후 집 근처에 있는 아파트 상가 안 작은 교회로 옮기게 되었고, 난 거기서 계속 어린 딸들을 데리고 유아실에서 예배를 드렸다) 반주를 하려면 두 손이 자유로워야 하니 남편에게 혹은 시어머니에게 아이들을 맡기고서야 피아노 앞에 앉을 수 있었다.(훗날 셋째가 태어났을 때는 아기띠로 업고 피아노를 쳤다)
오랜만에 반주를 하던 날, 너무 감격스러웠다. 예전에는 잘 들고 다니지도 않던 악보와 연필, 지우개를 들고 가서 열심히 채보를 하고 코드를 땄더니 어떤 집사님이 나보고 모범생이란다.
피아노를 마음껏 칠 수 없고, 사정이 허락될 때만 가능한 그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이제야 깨달은 어리석은 사람이 나라며 멋쩍게 웃었다.
아이들이 어려서 예배 반주를 메인으로 할 수는 없었지만, 특별한 행사가 있을 때 따로 연습해서 참여했다. 마침 피아노를 전공한 우아한 집사님이 새로운 반주자로 오셨다. 오랜만에 들어보는 전공자의 피아노 소리에 난 또 매료되었다. 그분은 그 옛날 통통 튀는 연주를 하던 목사님 따님 하고는 스타일이 다른 중후하고 여유 있는 연주를 하셨다. 교회 창립 기념으로 음악회를 열었는데, 그때 그분과 함께 듀오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정통 클래식은 아니었고, 찬양을 편곡해서 듀오로 만든 곡이었다. 내가 치기에는 조금 어렵고 기교적인 부분의 궁금증이 많았는데, 그런 부분을 그분께서 해소시켜 주셨다. 그 덕에 레슨도 받고 내 실력도 조금 향상되는 오아시스 같은 시간을 가졌다.
작은 소극장 무대를 빌려서 했던 그날의 행사에서 그분과의 듀오는 성공적이었고, 내게는 성인이 되어 처음으로 서보는 나름 클래시컬한 무대로 남았다.
4년 후 그분이 교회를 떠나시게 되면서 내가 메인 반주자가 되었다.
결혼하고 딱 10년 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