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 반주자라니...
예배시간에 유아실에서 아이를 보다가 특송 할 때가 되어서 후다닥 나가서 반주를 하고 들어오는 거랑은 다른 무게감이 갑자기 나를 짓누르기 시작했다.
사실, 무게감은 '이제야 나의 실력을 발휘할 때...'라는 교만함에서 온 거였다.
메인 반주자는 예배의 처음부터 끝까지의 모든 순서에 반주를 한다. 입례송부터 중간에 부르는 찬송가, 성가대 찬양, 마지막 폐회송까지... 결혼하기 전, 20년 가까이해왔기에 당연히 괜찮을 줄 알았는데 내 손가락은 마음과 다르게 움직였다. 심지어 그전 반주자가 가끔 자리를 비울 때마다 쳤던 곡도 다 틀리고 있었다.
차이코프스키의 곡을 편곡한 폐회송은 전주가 매우 길고 빠른 곡이었는데, 매주 틀려서 듣는 사람들이 민망해했다. 반년이 지나서야 폐회송이 바뀌었고, 그동안 나의 상태에 따라 곡은 이리로 저리로 흘러갔다.
반주를 시작하면서 내 귀를 좀 정갈하게(?) 해보고자 검색했던 피아니스트 명단이 어느 때부터 '손열음'으로 고정되었다. 모든 곡을 그녀만의 스타일로 해석해 내는 유려함에 빠져들었고, 그녀의 연주와 내 연주를 비교(?)하며 교만했던 마음은 그 크기만큼의 좌절감으로 바뀌었다. 그럴수록 틀리는 빈도수는 늘어났고, 어떻게 쳐야 할지 갈피를 못 잡았다.
피아노 앞에서 편안하고 자유로웠던 난 어디 간 걸까? 예전에는 나의 감정과 상관없이 기계적으로 피아노를 쳤었는데, 이젠 그게 아예 불가능했다. 찬송가 중에 '네 맘과 정성을 다 하여서 주 너의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가사가 있는데, 그게 딱 나한테 적용되는 듯했다. 조금이라도 다른 생각에 주의를 빼앗기면 영락없이 반주가 산으로 갔다. 마음을 집중하고 정성스럽게 임해야만 반주가 제대로 되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각오로 임했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 교회에서 원하는 반주자는 손열음이 아니고 너야. 너는 너만의 반주를 하면 되는 거야. 아무도 너와 손열음을 비교하지 않아.'라는 깨달음이 왔다.
비로소 자유로워졌다. 나니까 안되고 손열음이니까 된다는 억지스러운 생각도 내려놓았다. 난 손이 작은 편이라 오른손 옥타브에 자신이 없고, 왼손으로 스케일을 치는 것도 어려워했다. 그런 곡이 나오면 지레 겁을 먹고 움추러들었다. 그런데, 반주자는 어떤 곡이든 쳐내야 한다. 그게 예배에 필요하면 말이다.
성악을 전공한 우리 지휘자님은 (대학을 졸업하고 아직 30대가 안 됨) 오페라부터 다양한 곡의 반주를 들고 왔다. 난 일단 받아서 내 깜냥에 따라 연습시간을 정했다. 쉽게 마스터가 될 곡이면 주중에 한두 시간으로 끝내고, 어려운 곡이면 하루 오전시간을 통으로 비워서 연습했다.
'치라고 만든 곡인데 연습하면 되겠지.'라는 나만의 낙천성을 발휘했다.
매년 돌아오는 부활절과 성탄절에는 여러 곡을 묶어서 합창으로 연주하는 칸타타를 한다. 크리스마스에는 오페라의 한 부분을 공연한다. 이 모든 곡을 때마다 쳐내는 건 내 실력으로 매우 부족하다. 그래서 연습하고 또 연습하는 수밖에 없다.
전공자처럼 잘 칠 수는 없지만 나만의 스타일로 최선을 다해 그 곡에 맞는 색깔을 입히는 게 계속해서 내가 나나아갈 방향이라 생각한다. 40년이 되고 나서야 비로소 피아노 앞에서 겸손을 배우게 된 것이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