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사랑
어느새 서른한 살이었다.
'서른 살이 심리학에게 묻다'란 책을 열심히 읽었으며, 또래 중 결혼한 친구의 집에 놀러 가기도 했다.
더 이상 귀엽지도, 상큼하지도 않은 삼십 대... 가 되었다고 느꼈다.
갑자기, 아는 지인으로부터 '단국대 음대는 편입이 된다더라.'는 얘길 들었다.
이십 대를 지나면서, 2년간 피아노학원 강사를 했고 그 후엔 다른 직업을 가져보면서
음악교사에 대한 마음이 생기던 차였다. 교사가 되려면 수능밖에 길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편입이 가능하다고?
갑자기 모든 것을 내려놓고 뛰어들고 싶어졌다. 마음을 먹어서 그런가? 간간히 바이올린을 가르쳐 주던 친구가 레슨선생님을 소개해주었다. 나보다 나이 어린 이대 대학원생이었다.
레슨을 받으려면 연습실이 필요한데, (당시 우리 집엔 업라이트 피아노가 있었지만 낮에 일하고 밤에 집에서 피아노를 칠 수는 없었다) 마땅한 장소가 없었다. 레슨샘이 내 사정을 알고 이대연습실에서 연습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다.(외부인이 연습실에 들어가는 게 지금도 가능한지는 모르겠다)
내 인생에서 어쩌면, 정말로, 진짜로 피아노를 전공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초인적인 힘이 발휘되었다. 일하고 퇴근해 이대 연습실에 가서 밤늦게까지 연습하고 돌아오는 게 힘들지 않았다. 물론 실력은 기막힐 정도로 안 늘었다. 십 년간 해온 게 밴드다 보니 베토벤 소나타를 순수 그 자체로 표현하려면 한 마디만 연습하는데도 100시간은 잡아야 할 것 같았다. 가을 편입시험을 앞두고 4월 경에 시작한 피아노는 마음처럼 쉽게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었다.
인생의 새로운 길을 준비할 즈음, 기막힌 인연이 시작되었다. 평생의 반려자를 하필 그때 만났다. 우린 서로 공부 중(?)이어서 응원도 해줬지만 연애에도 열정적이었다. 내 연애상대는 섬세한 로맨티시스트어서(저의 다른 작품 '섬세한 남편과 삽니다'에 가시면 자세히 나와 있답니다) 따뜻하고 다정하기 그지없었다.
여자 친구가 생기면 꼭 보고 싶었다는 뮤지컬 '김종욱 찾기'를 보러 대학로에 갔다. 가기 전부터 들려줬던 '좋은 사람'이라는 곡.
https://youtu.be/AF0Ie4cxtsM?si=6gK2waAhlZ6D29aB
피아노 악보를 다운 받아서 연주를 하고, 옆에서 부르라고 시켰더니 어찌나 박자를 틀리던지... 그래도 이미 콩깍지가 씌어서 넘어가지더라.
일과 편입준비와 연애의 삼박자는 한동안 잘 굴러가는 듯 보였다.
그러던 어느 날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이상하게 자꾸 눈물이 나고, 평소 먹지도 않던 음식이 당기고, 잠이 자꾸 쏟아지고....
좋아하는 영화를 같이 보자며 3편씩이나 되는 '반지의 제왕'을 보기로 한 것이 원인이었다. 밀폐된 공간에 한창 들끓는 남녀가 붙어있던 그날 내 뱃속에 새 생명이 생겼다.
병원에서는 하루 10시간가량 앉아서 피아노를 치는 건 절대로 안 된다고 했다.
편입이냐, 결혼이냐... 를 고민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양가에서는 그 해가 가기 전 결혼식을 올리자고 했고, 편입준비는 자연스럽게 물 건너갔다.
이상한 건 피아노를 전공할 수도 있었던 기회를 놓치는 게 생각만큼 아쉽지 않았다는 것이다.
예비신랑은 "나중에 음대 보내줄게."라고 했다.
그리고, 그해 11월 평생의 반려자를 맞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