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오늘을 살자
< 우리가 바라는 안정된 형태란 결국 허상이며
확실한 성공의 길은 없다. >
음악을 포함한 다양한 예술은 우물을 파는 일과 같다고 생각한다. 물을 얻기 위해서는 지대한 시간과 노력을 들여 땅을 파야만 한다. 물론 어디까지 파야 물이 나오는진 그 누구도 알 수 없다.(요새야 기술이 좋아서 탐지하는 장비가 있겠지만 옛날엔 그랬겠지) 예술도 마찬가지이다. 각자가 원하는 성공을 바라보며 열심히 달려가지만 결승점이 어디인진 알 수 없다. 게다가 시작점과 결승점은 저마다 다르다.
다섯 번째 정규앨범 제작과 책 출판 준비를 진행하고 있는 이 시점에서, 그리고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평범한 한 사람으로서 가장 크게 느끼고 있는 감정은 '불안함'과 '막연함'이다. 작업을 마무리까지 무탈하게 잘 진행할 수 있는가 하는 쓸데없는 걱정부터 잘 될지 안 될지 마저도 걱정한다. 이렇게나 시간을 투자했는데도 기대에 못 미치는 결과가 나오면 억울할 것 아닌가. 언제나 작은 기대를 했고 결과는 항상 전혀 기대하지 않은, 매우 초라한 모습으로 나를 찾아왔다. 그러니 매번 크고 작은 앨범의 발매 직후,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 현실에 번아웃과 무력함이 몰려왔으리라.
우리의 인생에서 가장 큰 불행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 것은 '내가 지금 어느 시점에 도달해 있는지'를 객관적인 지표로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마치 게임처럼, 우리의 눈에 보이는 레벨 시스템과 경험치 게이지가 세상에 존재했더라면 우리가 이렇게 태평하게 살고 있진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 있다. 만약 나의 성장치가 내 눈에 구체적인 수치로 보였다면, 즉각적인 보상에 엄청난 도파민이 분비되어 잠을 줄여서라도 성장하려고 노력하지 않았을까.
나는 대학을 다닐 때에도 시험 보는 것을 좋아했다. 동기들은 그러한 성향의 나를 보며 변태 같다고 하던 걸 보면 분명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험을 싫어한다는 것이 짐작 가능하다. 본인의 지식이 구체적인 수치로 환산되는 그 시험이라는 시스템은 나에게 있어서 동기의 가장 큰 요소 중 하나였다. 눈에 보이는 결과를 좋아하는 그러한 성향 때문에 어렸을 때엔 게임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빠져 살았던 것 같다. 다행히 요새는 현실이 더 즐거워서 게임을 자주 하지 않는다.
최근에 주변 지인들에게 고민을 털어놓았다. 작곡가 청월령을 그만둬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평소 속마음을 잘 드러내지 않는 편인데 조금은 감상적으로 변한 것일까. 작곡은 재미로 시작했고 아직도 어느 정도 즐기고 있긴 하다. 그러나 재미로만 지속하기엔 벌써 서른 살이 되어버렸다는 게 문제다. 요즘 시대엔 젊은 나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서른 먹고 본업이라는 게 이 정도로 벌이가 안된다면 이젠 슬슬 정리해야 하지 않을까 싶은 것이다. 점점 책임져야 할 것이 많아져가는 이 시기에 이렇게 막연히 살아간다는 것은 괜찮은 걸까. 혹은 누군가 괜찮다고 해준다면 괜찮아지는 걸까. 청월령으로 활동한 지 벌써 10년이 넘었다. 다른 분야를 포함하여 생활비만큼의 돈을 벌고 있긴 하지만 얼마나 더 해야 할지, 평생을 해도 원하는 성공을 가져다줄 수 있을지 확실치가 않은 청월령에 더 많은 시간 투자를 해도 되는 것인가 하는 불안감에서 온 생각이다.
달리 생각해 보면 음악이 아니라 무엇을 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취업을 한다 해도 한 직장에서 내 노후와 평생을 책임져 주지 않을 것이고, 자영업을 한다 해도 사업이 잘 될지 안 될지는 미지의 영역이다. 안 해보고는 모른다. 또 그렇다고 해서 미지의 불안으로, 새로운 영역에는 도전도 하지 않고 음악만 붙잡고 있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바라는 안정된 형태란 결국 허상이며 확실한 성공의 길은 없다. 각자 저마다의 불안을 안고 살아간다. 두려움이 앞서 다가오는 상황에 그저 회피만 하지 않고 당당히 살아가는 수밖에 없다.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
과거는 후회한다 해도 변하지 않고 미래는 계획대로만 되진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건 지금 현재뿐이지 않은가. 만족스럽지 않은 과거가 조금 후회되더라도, 미래가 조금 막연하고 불안하더라도 오늘을 살아야 한다.
오늘을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