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작은 일 02화

이마에 굳은살이 생겼습니다

— 맨땅의 헤딩으로 여기까지 온 나의 이야기

by 권성선

나는 늘 그렇게 살아왔다.

즉흥적인 건 아니었다.

계획 없이 덤비는 스타일도 아니다.

하지만 마음먹은 건, 꼭 실천하고 마는 사람.

계획은 조용히 세우고, 결심이 서면 행동은 멈추지 않았다.

그래서 돌이켜보면 내 인생은 계획된 맨땅의 헤딩이었다.


하도 맨땅에 헤딩을 많이 했더니 요즘은 이마에 굳은살이 만져진다 ㅎㅎ

정말이다 .

놀랍게도 그 굳은살은 나를 지켜줬고, 지금도 다시 시작할 수 있게 만든다.


아이가 어릴 때, 세 아이를 키우며 출퇴근을 한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다.

특히 아이가 아픈 날이면,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하루 종일 마음은 집에 가 있는데,

몸은 회사에 붙들려 발만 동동 구를 뿐이었다.


그 시간들 끝에 남은 건 “이건 아닌데…”라는 마음뿐이었다.

그때부터 진지하게 생각했다.

‘내 삶에 맞는 일, 아이 곁을 지키며 할 수 있는 일을 찾자.’

그때 큰아이는 초등학교 4학년,

둘째와 셋째는 아직 엄마 손이 꼭 필요한 나이였다.

엄마가 집을 오래 비우면 아이들 마음에도 바람이 들었다.


그래서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다가

내가 좋아하는 두 가지, 아이와 책을 떠올렸다


사실 공부방이라는 발상은 처음 생긴 생각이 아니었다.

첫째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이었을 때, 아들의 친구들을 모아 독서논술 그룹 수업을 직접 운영했었다.

아이들과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고, 글을 써보는 그 시간이

내겐 너무도 즐겁고 자연스러웠다.


그때의 기억이 다시 떠올랐다.

‘아, 그걸 좀 더 제대로 해보면 어떨까?’

그게 공부방 창업의 시작이었다.


공부방 운영 관련 책을 사서 읽고, 운영자 카페에 가입해서 밤마다 글을 읽었다.

노트에 수업 구성을 정리하고, 학부모 상담 예시를 따라 적으며 머릿속 리허설을 했다.


전단지를 만들어 학교 앞에 나가 조심스럽게 돌렸다.

엄마들 틈에 섞여서 전단지를 돌릴 때, 심장이 뛴 건 부끄러움 때문이 아니라 설렘 때문이었다.


그리고 정말로 첫 아이가 찾아왔다.

초등학교 1학년 여자아이.

엄마는 바이올린 강사였다.

아이를 믿고 맡긴다는 그 엄마의 말에 나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책임감을 느꼈다.


수업은 정성이었다.

책 읽고 나누고, 교과목을 가르치던 시간.

그 아이가 웃을 때마다 나는 조금 더 어른이 됐다.


오래 가진 못했지만, 그 시간은 실패가 아니라 시작이었다.

누군가에게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이 된 경험.

지금까지도 내 마음속 자존감의 뿌리가 되어 있다.


그다음 헤딩은 시민단체 활동이었다.

아이를 키우며 세상과 단절된 느낌이 들던 시절.

뉴스를 보며 분노했고, 엄마로서 세상을 바꿔야 한다는 다짐이 생겼다.


정의감 하나 들고, 그 세계로 뛰어들었다.

처음엔 동지들이 있는 줄 알았다.

나와 비슷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 줄 알았다.

하지만 곧 깨달았다.

사람은 정의보다 훨씬 더 어렵다는 걸.

논리보다 감정이 더 예민하고, 이상보다 관계가 더 복잡하다는 걸.


오늘의 동지가 내일의 적이 되기도 했고,

겉으로는 이상을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관계가 더 중요하게 작동하는 분위기 속에서

나는 점점 말을 줄이게 됐다.


그런 줄도 모르고 나는 정말 '이상'을 믿었다.

하지만 정작 내가 속한 집단은 이상보다 관계 중심이었다는 걸

뒤늦게 깨닫게 됐다.

그때부터, 나는 스스로를 조용히 접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서로가 생각하는 ‘정의’의 의미조차 달라지고 있었다.

같은 말을 하면서도, 서로 다른 세계를 말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그 시간을 후회하지 않는다.

그곳에서 나는 ‘정의’란 무엇을 외치느냐보다 누구와 어떻게 살아가느냐의 문제임을 배웠다.


그곳에서 나는 배웠다.

정의란 큰소리로 외치는 게 아니라 내 곁의 사람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을.



그다음 도전은 온라인 쇼핑몰이었다.

위탁판매였다.

직접 물건을 사입하지 않아도 되는 구조.

사업자 등록증을 받고, 도매몰에 가입하던 날.

왠지 모르게 큰일을 하는 기분이었다.

다이소 회사 사장이 된 듯한 기분.

그게 말이 안 되는 비유라는 건 알았지만, 그날만큼은 진짜 사장이 된 듯했다.


게다가 사업자가 두 개나 있었다.

하나는 ‘웰빙포유’, 또 하나는 ‘미소상점’.

대표 권성선.

그 문구가 모니터 화면에 떠 있는 걸 보자,

괜히 어깨가 으쓱해졌다.

‘그래, 이제 나도 사장이다.’


실제 매출은 커녕, 아직 올린 상품도 없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세상을 하나 연 기분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냉정했다.

상세페이지가 뭔지도 모르고, 상품 등록법도 몰라 책을 사서 보고, 도서관에서 관련 서적을 빌려 읽고, 유튜브 강의를 보며 새벽을 넘겼다.


낮엔 본업, 밤엔 쇼핑몰.

하루의 마감은 늘 노트북 앞이었다.

혼자서 주문 확인하고, 도매몰에 위탁 주문을 넣고,

새벽이면 택배 조회를 돌려보며 다음 날 고객 문의에 대비했다.


주문 하나 들어오면 온 가족이 들썩였고,

클레임 하나 들어오면 며칠을 앓았다.


“엄마, 또 주문 들어왔어?”

아이들의 목소리에 그날 하루의 피로가 조금씩 풀리던 밤들.

비록 큰 수익은 없었지만, 그 시간은 분명 내 삶의 한 장면이었다.

결국 수익은 크지 않았지만, 그 시간은 내게 실행력이라는 유산을 남겼다.

아무것도 몰라도, 시작해보면 알게 된다는 걸 몸으로 배웠다.

그게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아이들의 말 한마디.

내가 뭘 하나 시작할 때마다 가장 먼저 나를 믿어준 건 아이들이었다.


큰아이는 말했다.

“엄마는 진취적이니까 뭐든 잘할 거야.”


딸아이는 말했다.

“엄마는 겁도 없고, 씩씩하잖아. 잘할 수 있어.”


그 말들이 내 등을 밀었다.

엄마가 누군가의 믿음이 되기 전에 아이들은 이미 엄마를 믿고 있었다.

실패하더라도 괜찮다는 듯, 엄마의 가능성을 의심하지 않는 그 말들.

그 믿음 하나로 나는 또다시 맨땅 앞에 설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다시 한 번

지금 나는 또 새로운 일을 시작하려 한다.

예전보다 많이 알고 있지만, 여전히 낯설고 두렵다.

그래도 괜찮다.

이마에 굳은살이 생겼으니까.


그 굳은살은 나를 보호하는 방패이자, 새로운 세계로 뛰어드는 용기다.

나는 다시 한 번, 이마로, 정면으로 부딪칠 준비가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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