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작은 일 01화

눈물이 먼저 고인 날

by 권성선


그동안 너무 많은 감정들을 꾹꾹 눌러 담고 있었나 보다.

감정이 엉뚱한 곳에서 터졌다.

참으려는 마음보다 눈에 눈물이 먼저 고였다.

언제부턴가 힘들어도 ‘힘들다’는 말을 삼켰고,

아파도 ‘괜찮다’는 말로 덮으며 살았다.

처음엔 괜찮지 않은 걸 괜찮다고 말하는 것이

나를 지키는 방식 같았다.


하지만 나중에는 정말 내가 괜찮은 사람인 줄 착각하게 되었다.

울지 않는 게 강함이라 믿었고,

다른 사람들의 기대 속에서

'늘 밝은 사람', '긍정적인 사람'의 역할을 맡은 채 살아갔다.


사람들은 내게서 긍정의 기운이 느껴진다고 했다.

그 말이 고맙기도 했지만, 어딘가 막막했다.

나는 마치 슬퍼서도 안 되고, 아파서도 안 되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누구에게도 내 감정의 진짜 결을 들키고 싶지 않아

괜찮은 척, 무덤덤한 척, 그렇게 하루하루를 버텨냈다.


그런데 왜 이제 와서야,

그 억눌렀던 감정들이 엉뚱한 곳에서 터지는 걸까.

길을 걷다 갑자기 발이 멈추고,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불쑥 가슴이 먹먹해지는 순간들.

이제야 내 안에 쌓였던 것들이 제자리를 찾아

조용히 문을 두드리는 것만 같다.


나는 지금, 감정의 번아웃 상태에 있다는 걸 느낀다.

무언가를 느끼고 싶어도 감정이 잘 떠오르지 않고,

기뻐도 기쁜 줄 모르겠고,

힘들어도 그게 힘듦인지조차 알 수 없는 날들이 많았다.

지치고, 텅 빈 감각이 오래도록 나를 붙잡고 있었다.

그런데도 멈출 수가 없었다.


늘 웃고, 괜찮다고 말해야 했고,

기대를 걸고 있는 사람들에게

내 진짜 얼굴을 보여주기 어려웠다.

슬픔과 피로가 겹겹이 쌓여 있었던 걸까.

나는 결국, 감정이 말라버린 사람처럼 살아왔다.


그래서일까, 어느 날 문득

나조차도 나의 마음이 어땠는지 기억하지 못한 채

그저 살아내고만 있었다.

그러다 이제야 비로소 알게 된 것 같다.


감정이란 건 억누른다고 사라지는 게 아니라는 걸.

언젠가는, 어디선가는

무너질 수밖에 없는 순간으로 돌아오게 된다는 걸.

나는 이제 슬퍼도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누군가에게 “나, 요즘 좀 힘들어요”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그게 약함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증거라는 걸 이제야 조금씩 배우고 있다.

울컥하는그 순간들이 말했다.

그동안 말없이 잘 버텼다고 나를 조용히 다독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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