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일이 쉽지 않은 이유는 모든 시간이 첫 시간이기 때문이다. 이십 대도 처음이었고, 오십 대도 처음이다. 인생에 두 번째란 없다.
— 권여선, 《레가토》 중에서
마흔 중반에 이르러서야 나는 이 문장을 오래 붙잡게 되었다. 살아온 세월만큼 익숙해졌을 줄 알았는데, 어쩐지 여전히 매 순간은 낯설다. 여전히 내 안의 초보자는 어제보다 조금도 자라지 않은 듯하다.
스무 살의 나는 청춘의 무모함으로 세상을 마주했다. 실패도 두려움도 '처음이니까'라는 말로 덮을 수 있었다. 마흔이 되면 달라질 줄 알았다. 삶이란 여러 번의 연습 끝에 이제는 어느 정도 요령이 생길 줄 알았다. 그런데 요령은커녕 매번 새로운 문제 앞에서 다시 연필을 쥔 학생처럼 서 있다.
아이와 함께 걷는 길에서도 그렇다. 어제까지 내 손을 꼭 잡던 아이가 이제는 내 곁을 앞질러 간다. 여전히 집 안에 머물러 있지만, 이미 마음은 어딘가 다른 곳을 향하고 있다는 걸 느낄 때가 있다. 이런 작은 변화를 받아들이는 일도 내겐 '첫 시간'이다. 익숙하지 않아서 서툴다.
문학을 시작하는 일 역시 마찬가지다. 오랫동안 마음속에서만 품고 있던 글을 이제야 꺼내기 시작했을 때, 나는 또 한 번 초심자가 된다. 하얀 화면 위에 커서가 깜박일 때, 나는 또다시 초보자가 된다. 이전의 경험이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문장은 매번 도망치고, 마음은 늘 늦게 따라온다.
권여선의 말처럼 인생에는 두 번째가 없다. 같은 계절이 다시 와도 같은 날은 없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 초보자의 얼굴로 오늘을 맞는다. 그 사실이 때로는 막막하지만, 동시에 위안이 되기도 한다. 완벽해야 할 이유가 없으니 나는 그저 처음처럼 오늘의 첫 시간을 살아내면 된다.
마흔 중반의 나는 이제야 조금 알겠다. 삶은 숙련의 무대가 아니라 매번 새로운 초연의 무대라는 것을. 매번 무대 위로 불려나가는 나는 늘 떨린다. 하지만 그 떨림 속에서 여전히 살아 있다는 것을 여전히 노래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오늘도 나는 첫 시간 앞에 서 있다. 어설프게, 그러나 진심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