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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고개 숙인 엄마, 아빠

죄인으로 지목된 아이

by 고용환

그날 이후 나는 동생을 데리고 늘 집 밖으로 나갔다. 아니면 아빠 사무실로 향했다. 그러나 엄마는 사무실은 손님이 많고 아저씨들이 담배를 피우니 될 수 있으면 가지 말라고 했다. 이해는 되었지만, 답답한 단칸방에 갇혀 있는 건 참을 수 없었다.

무엇보다 어린 나이에 견디기 힘든 건 집 밖에 있는 화장실이었다. 우리 집 화장실은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 밑, 좁고 습기 찬 문 안쪽에 숨어 있었다. 여름이면 냄새가 진동했고, 구덩이 밑은 오래된 갈색 종이와 함께 부패한 냄새로 숨 쉬는 듯했다. 그 위를 하얀 구더기들이 작은 배처럼 노를 젓듯 헤엄치고 있었다. 나는 혹시라도 발을 헛디뎌 떨어지면, 그들이 한순간에 나를 집어삼킬 것만 같아 두려웠다.

엄마에게 무섭다고 하소연하면, 엄마는 늘 바빴다.


“괜찮아. 구더기는 무서운 게 아니라 그냥 똥 친구야.” 그렇게 웃으며 대답했다.


나름 명쾌한 답이었지만, 그 말이 내 두려움을 완전히 덮어주지는 못했다. 나는 ‘똥이 혼자 있으면 외로우니 구더기가 놀아주는 거다’라며 억지로 스스로를 달랬다. 하지만 한밤중, 화장실로 향하는 발걸음은 언제나 공포였다.

결국 나는 휴지를 콧구멍에 틀어막고, 변기 밑을 내려다보지 않는 방식으로 두려움을 견뎠다. 그러나 어느 날, 화장실에 있던 작은 노란 전구가 꺼져버렸다. 그 뒤로는 밤마다 손전등을 들고 가야만 했다. 벌벌 떠는 나를 보고 아빠는 “누굴 닮아 이렇게 겁이 많냐”라고 핀잔을 주었다. 하지만 나는 속으로 빌었다. 방이 한 칸뿐이어도 좋으니, 냄새도 공포도 없는 화장실이 있는 집에서 살고 싶다고.


시간이 흐르며 무서움은 조금씩 무뎌졌다. 나는 휴지를 말아 콧구멍에 꽂고, 밑을 보지 않으면 구더기도 덜 무섭다고 스스로를 설득했다. 그러나 어느 날, 손전등마저 배터리가 나가버렸다. 방 한쪽에 굴러다니던 라이터를 손에 쥐고 화장실로 향했다. 하지만 불꽃은 금세 뜨거워져 손에 쥐고 있을 수 없었다. 그 순간, 엉뚱한 생각이 떠올랐다. 휴지를 풀어 불을 붙여, 구더기들이 꿈틀대는 그 밑바닥으로 떨어뜨린 것이다. 주황빛 불꽃이 일렁이며 구더기를 집어삼키자 묘한 쾌감이 몰려왔다. 엉덩이가 따뜻해지고, 공포가 사라지는 듯했다. 그 순간 나는 불장난과 구더기 퇴치라는 유혹에 사로잡혔다. 휴지에 불을 붙여 계속해서 아래로 던졌다.

그러다 실수로 두루마리 전체에 불이 옮겨 붙고 말았다. 나는 황급히 그것을 구석에 던지고, 단칸방으로 도망쳤다. 심장이 귀 뒤에서 요동치듯 뛰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마당에서 외침이 울렸다.

“불이야!”


건너편 쪽방 아저씨의 목소리였다. 곧이어 주인집 아주머니의 목청이 울려 퍼졌다.


“빨리 물 떠 와! 다들 나와요!”


부엌문을 살짝 열고 화장실 쪽을 엿보았다. 작은 문 안쪽은 주황빛으로 가득했다. 전구가 켜져 있을 때보다 훨씬 더 밝았다. 어른들은 플라스틱 바가지를 들고 허둥대며 뛰어다녔고, 주인집 아주머니는 소방대장처럼 소리치며 지휘했다. 구멍가게 아주머니가 소화기를 들고 달려와 흰 연기를 뿜었고, 마침내 불꽃은 꺼졌다. 그러나 사람들의 눈빛 속에는 분노와 의심이 여전히 활활 타올랐다.

나는 방문 옆에 쪼그리고 앉아 숨죽였다. 그러나 주인집 아주머니의 집요한 추궁 끝에 결국 내가 용의자로 지목되었다. 엄마는 단숨에 내게 다가와 따져 물었다.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눈물이 먼저 흘러내렸다. 그 눈물은 곧 자백이었다.


엄마는 왜 그랬냐며, 동네가 떠나갈 듯 소리쳤다. 그리고 나를 바로 마당으로 끌고 나갔다. 주인집 아주머니는 내가 범인이라는 확신의 눈빛으로 나를 쏘아보았다. 아빠와 엄마는 땅에 머리가 닿을 듯 고개를 숙이며 용서를 빌었다.


“아니, 애 교육을 어떻게 하는 거야? 맨날 마당에서 자기 집인 양 시끄럽게 노는 것도 참아줬더니, 이젠 집을 태워버리려고 하네. 방 빼야겠어.”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화장실은 저희가 변상할게요. 제발 한 번만 용서해 주세요.”

“이젠 불안해서 같이 못 살겠어.”

“다시는 이런 일 없게 잘 가르치겠습니다.”

“애를 혼자 두지 말고 차라리 가게에 데리고 가든가 해.”


아주머니는 만화 속 악당 같았다. 아니, 그보다 더 악랄해 보였다. 그날 밤 나는 아빠에게 나무빗자루로 종아리가 파랗게 될 때까지 매를 맞았다. 종아리가 따끔거렸지만, 사실 더 아픈 건 마음이었다. 그 순간, 나는 아이가 아니라 죄인이 된 것만 같았다.


냉장고 밑 내 자리에 웅크려 누워 울음을 삼켰다. 시간이 흐르자 엄마가 다가와 종아리에 바셀린을 바르고 속삭였다.


“미안해, 많이 아팠지. 엄마가 다 미안해.”


엄마는 주인집 아주머니에게 그렇게 빌고 또 빌었던 그날, 내게도 미안하다며 사과했다. 나는 엄마 품에 안겨 울고 또 울었다. 다음 날 아침, 아빠는 친척 형들을 불러 화장실을 수리했다. 내가 던진 불붙은 휴지는 화장실 구석의 휴지통과 잡동사니들에 옮겨 붙은 것이었다. 아빠는 탄 자국을 모두 걷어내고 페인트칠까지 했다. 그동안 주인집은 자기 집 화장실을 쪽방 사람들과 우리에게 쓰게 해 주었다. 주인집 화장실에는 우리 집에는 없는 의자가 있었다. 반짝이는 하얀 뚜껑이 달린, 번듯한 좌변기였다. 주인집에는 의자가 정말 많았다. 소파, 식탁 의자, 책상의자, 그리고 화장실 의자. 맨날 바닥에 아빠 다리를 하고 앉아 지내는 우리와는 달랐다. 하지만 우리 집에는 주인집의 모든 의자를 대신하는 무적의 검은 접이식 밥상이 있었다. 밥을 먹을 때도, 내가 숙제할 때도, 아빠가 돈을 셀 때도, 엄마가 가계부를 쓸 때도, 조그만 텔레비전을 보며 간식을 먹을 때도 그 밥상 하나면 충분했다.

아빠의 손재주 덕분에 화장실은 다시 쓸 수 있게 되었다. 노란 전구 대신 환한 백열등이 달렸고, 그 덕분에 이후로는 손전등을 들고 화장실을 가는 일이 사라졌다. 어린 나에게 집은 늘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그리고 아픔도 주었다. 그 아픔은 마음의 상처뿐 아니라, 몸에 남은 고통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다섯 살에 반지하를 벗어나 지상으로 올라온 뒤, 우리는 열 살이 될 때까지 그 집에 살았다. 발육이 빨랐던 나는 또래보다 키가 컸다. 어느덧 냉장고 밑 내 자리에 눕자 두 발을 뻗을 수 없게 되었다. 옆으로 누워 다리를 접으면 괜찮았지만, 곧 그마저도 불편해졌다. 저녁마다 서랍장에서 이불을 내려 잠자리를 만들면, 방 안에는 남는 공간이 전혀 없었다. 가장 춥고 불편한 방문 옆은 아빠의 자리, 그 옆은 동생, 그다음은 엄마, 마지막이 내 자리였다.


어느 날, 내가 비스듬히 다리를 뻗은 탓에 엄마가 불편했는지, 엄마가 내게 말했다.


“우리 아들, 언제 이렇게 컸어? 다리도 못 펴네. 엄마한테 말하지 그랬어?”

“아니야. 불편하지 않아. 이렇게 자면 돼.”


엄마는 안쓰러운 눈길로 나를 바라보더니 말없이 부엌으로 갔다. 그날 밤, 잠자리 순서는 바뀌었다. 내 자리는 동생 자리로 옮겨졌다. 다리를 쭉 뻗고 잘 수 있는 편안함, 그리고 엄마 아빠 사이에 눕는 행복. 마치 동생이 태어나기 전으로 돌아간 것만 같았다.

늦은 저녁, 엄마와 아빠는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눴다.


“여보, 우리 이사 가면 좋을 것 같아.”

“그래. 이제 애들도 크고, 요한이도 자기 방이 있어야 하잖아.”


나는 잠결에 ‘내 방’이라는 말을 듣고 가슴이 벅차올랐다. 다음 날 학교에 가면 짝꿍에게 자랑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웃음을 지은 채 잠들었다.

집이란 공간은 내게 늘 두 얼굴이었다. 무섭고, 눈치 보이고, 때로는 부모님이 고개 숙여야 하는 장소. 크기의 문제가 아니라, 주인이 있느냐 없느냐가 더 큰 차이였다. 그날 밤, 나는 생각했다.


“조금 작아도 좋으니, 제발 다음 집엔 주인집이 없었으면 좋겠다.”


사실 엄마와 아빠도 주인집에서의 해방을 누구보다 갈망했다. 눈치 보며 주인집 마당에서 노는 아들을 보며 가슴은 무너진 지 오래였다. 사악한 사람은 아니었다. 하지만 친절한 사람은 더욱 아니었다. 돈 앞에서 감정을 지우고 철저히 자신의 영역을 지키며 강함을 표현하는 동물의 본능을 지닌 사람들이었다. 화장실 사건은 부모님에게 절대 지워지지 않는 마음의 상처를 남겼다. 그래서 이를 악물고 빨리 이곳에서 벗어나서 두 아들에게 작은 자유를 선물해 주겠노라 다짐했다.




초등학교 1학년 무렵, 그해 겨울은 유난히 추웠다. 아빠의 석유 배달은 바빴다. 엄마는 세 살 동생을 업고 이리저리 일을 도왔다. 그렇다고 나를 챙기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놀기 좋아하고 한글조차 서툰 나는 허술한 학생이었다.

학교에서 준비물이나 숙제 검사가 있을 때마다 나는 복도 뒤로 불려 나가 벌을 섰다. 처음엔 열 명 남짓 함께였기에 재미있다고까지 느꼈다. 하지만 한 달, 두 달이 지나며 벌을 서는 아이는 줄었고, 결국 나 혼자 남았다. 여덟 살짜리 아이였지만, 그 상황이 부당하다는 건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결국 담임 선생님은 수업을 마친 뒤 내게 말했다.


“엄마 좀 오라고 해라.”

“왜요?”

“네가 너무 부족하니까. 선생님이 엄마랑 중요한 이야기를 해야 해.”


하지만 나는 엄마가 걱정할까 봐 말을 전하지 않았다. 선생님은 내가 일부러 전하지 않은 줄 모르고, 엄마가 무시한 것으로 오해했다. 그날부터 나는 추운 복도에서 홀로 벌을 섰다.

마침 동네 구멍가게 아주머니 딸이 그 모습을 보고 엄마에게 알렸다. 그날 저녁, 엄마는 나를 불러 다그쳤다.

“왜 혼자 밖에서 벌을 섰어?”

“… 선생님이 내가 준비물이랑 이런 게 항상 부족하대.”

“너만? 엄마랑 같이 사준 거 그대로 가져갔잖아. 또 뭐가 부족하다는데?”

“친구들이랑 똑같은 걸 가져가도, 선생님은 나만 뒤로 나가라고 했어.”


엄마의 얼굴은 침착했지만, 분노가 서려 있었다. 나는 솔직히 털어놓았다.

“사실 저번에 엄마 학교 오라고 전해달라 했는데… 엄마도 바쁘니까 내가 말 안 했어.”

엄마는 씩씩거리며 밖으로 나갔다. 잠시 후, 구멍가게 아주머니와 이야기를 나누는 소리가 들렸다. 다시 방에 들어온 엄마는 조용히 말했다.


“다음부턴 꼭 엄마한테 말해야 해.”


그다음 날, 수업이 끝날 무렵 교실 문 앞에 얼굴에 진한 화장을 한 낯선 모습의 엄마가 서 있었다. 항상 편한 옷을 입고 색깔이 바랜 고무 재질로 된 앞이 막힌 슬리퍼를 신고 다니던 엄마는 그날 앞이 뾰족한 구두를 신고 있었다. 그런 어색한 엄마의 모습에 나는 자꾸 눈길이 갔다. 엄마의 작고 거친 손에는 작은 책 한 권이 들려 있었다. 엄마는 나를 향해 손짓했다.


“요한아, 잠깐 놀이터에서 놀고 있어. 선생님이랑 금방 얘기하고 올게.”


엄마는 정말 잠깐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눴다. 그날 이후, 나는 더 이상 복도에서 벌을 서지 않았다. 엄마가 화장을 하고 단정히 차려입은 채, 책 한 권을 손에 쥐고 학교에 나타났다는 사실만으로도 모든 것이 바뀌었다. 마치 마법 같았다.

한참 뒤에야 알았다. 엄마가 들고 간 책 사이에는 얇은 흰 봉투가 끼워져 있었다는 것을. 그 몇 장의 만 원짜리는, 엄마의 자존심과 함께 나를 복도에 세웠던 시간을 끝내기 위해 쓰인 값이었다. 엄마는 오랫동안 그 사실을 마음 아파했다. 주인집 아줌마도 선생님도 모두 겉과 속이 전혀 다른 악당이었다. 자신보다 약한 사람들을 귀신같이 찾아내서 그들을 괴롭히고 군림하고 가진 것 없는 그들에게 무엇인가를 빼앗았다. 어른들의 세상이란 어린 내게는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행동 덩어리 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엄마와 아빠는 희망을 놓지 않았다. 아빠 장사가 잘돼 우리도 곧 가난에서 벗어날 거라고 믿으며, 그 작은 단칸방에서 아침에 희망으로 눈을 떴다. 아무리 바빠도 웃음을 잃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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