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 밖의 세상으로, 또 다른 우물 속으로
부동산을 돌면서 역시 발품이구나 싶었다. 신기하게도 다른 부동산 사장님은 내가 본 18층 매물 가격을 1억 3천이라고 하셨다. 나는 어이가 없으면서도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1억 3천만 원이요?”
“네, 주인이 1억 3천이면 된다고 했어요. 근데 협상은 안 된다고.”
“아, 그래요?”
“다른 부동산에서 여기 봤어요?”
“네…. 4천이라고 했었거든요.”
“우리도 먹고살아야죠. 중개사잖아요.”
“네. 근데 지하철 정말 들어오겠죠?”
“뭐, 신도시 개발 계획도 있고 하니까 언젠가는 들어오겠죠.”
그 말에 순간 반장님이 떠올랐다. 악착같이 돈을 모아서 눈 감고 일산에 땅을 샀다고, 그런데 1기 신도시 들어오면서 자식들한테 부끄럽지 않은 부모로 남을 기회를 얻었다고, 정말 운이 좋았다고….
나는 귀신에 홀린 사람처럼 입을 열었다.
“계약금 넣을게요.”
“네? 잘 선택했어요. 뭐, 조금 중심 상권이랑 멀긴 한데 그래도 뭐 도보 10분 차이고 도로 옆이니까 교통도 좋고요.”
뉴스에서는 ‘깡통전세’니 뭐니, 수많은 말들이 떠돌고 있었다. 희망이라면 금리가 낮아질 거라는 것이 유일한 희소식이었지만, 그 두려움과 막연함보다 내 것을 가지고 싶은 열망이 나를 지배했다. 이 땅 위에 부모님을 포함해서 누구도 나를 책임져 줄 수 없는데, 내 이름은 남기고 싶었다. 적어도 미래의 내 자식들에게 여기저기 끌려다니며 주인집 앞에서 고개 숙이는 초라한 아빠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전화로 계약금 천만 원을 입금했다. 가슴이 콩닥콩닥거렸다. 마치 어린 시절 문방구에서 몰래 샤프를 훔치다가 주인아저씨한테 걸려 엄마가 올 때까지 울면서 기다렸던 그날처럼 심장은 요동쳤다.
반짝거리는 샤프가 너무도 갖고 싶었는데, 돈을 달라고 할 수 없었다. 친구들도 가끔 훔친다는 말에 미친 용기를 내서 샤프를 가슴에 넣고 나가려는 순간, 주인아저씨가 내 목을 잡았다.
“잡았다, 이 도둑놈의 새끼! 너구나! 그동안 샤프 다 훔쳐갔던 게.”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너 엄마 전화번호 뭐야!”
“죄송합니다. 근데 이번이 정말 처음이에요. 믿어주세요.”
“뭐? 거짓말하고 있네.”
사장님은 내 말을 믿지 않았다. 한순간 10번도 넘게 학용품을 훔친 도둑놈 새끼가 되어버렸다.
엄마가 오고, 가게에서 죽을 만큼 혼났다. 죽는 줄 알았다. 엄마는 또 나 때문에 사장님한테 욕을 먹고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집에 도착한 엄마는 나에게 회초리도 들지 않고 혼내지도 않았다. 대신에 조용한 어조로 말했다.
“아들, 다음부터는 엄마한테 말해. 엄마가 그런 거 충분히 사줄 수 있어. 그리고 살면서 가장 중요한 건 떳떳하고 정직하게 사는 거야. 그렇게 부끄럽지 않게 살 수 있지?”
‘떳떳하고 정직하게 사는 거.’
완벽하게 이해되지는 않았지만, 교과서 바른생활처럼 살라는 말처럼 들렸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큰소리로 엄마에게 안 그러겠다고 말하고 엄마를 끌어안았다. 엄마는 그렇게 없는 돈 대신 더 큰 사랑으로 나를 보듬어 주었다.
차를 타고 길을 나서면서 생각했다. 이렇게 집 계약하는 게 쉬운 거구나, 그냥 돈 보내고 찜하면 되는 거구나 싶었다. 절차가 너무도 간단했다. 내 것을 가지는 그 절차가 너무도 간편한 것이 무서웠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엄마가 떠올라서 전화를 걸었다.
“엄마! 나 지금 가요. 김치찌개 먹고 싶어.”
엄마한테 연락하고 집을 계약했다고 자랑하기 위해 액셀을 밟았다. 좁고 좁은 거실, 아니 주방의 일부인 작은 공간에서 엄마는 검은색 다용도 밥상을 펴고 반찬을 올려두고 있었다. 단칸방에 살 때부터 지겹게 우리를 따라다니던 검은색 다용도 밥상 위가 금세 음식으로 가득 찼다.
“우와…. 냄새 좋다. 엄마도 먹어요.”
“응. 일은 할 만하고? 요즘도 야근 많이 해?”
“뭐, 이제 5년 차인데 할 만하고 못 하고 어딨 어요. 그냥 일하는 거지.”
“아빠는?”
“아빠는 똑같지. 일은 다니는데 맨날 늦게 들어오고, 주말이면 누가 맨날 불러서 나가기 바쁘고….”
“그래도 일하고 있는 게 어디야.”
저번에 아빠를 일터에 찾아갔을 때 일하고 있던 모습이 떠올랐다. 초라하게 세차장을 이리 뛰고 저리 뛰는 그 모습. 창문을 내리고 왕처럼 쿠폰을 건네는 아빠한테 주는 사람들.
난 그날 이후로 한 번도 자동세차장을 간 적이 없다. 아빠 생각이 나서 세차장에 갈 수가 없었다. 내 몸 닦을 시간도 부족한데 차 닦는 데 3천 원씩이나 주는 게 아깝기도 했다. 어차피 세차하고 도로 나오자마자 먼지로 다시 더러워질 텐데. 차 닦을 돈으로 동생이랑 가끔 목욕탕을 갔다. 그래도 내부는 항상 청결히 유지했다. 가끔 타는 사람들을 위해서. 작은 배려이자 예의였다.
엄마한테 아빠가 어떻게 일하는지 말할까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닫았다. 대신 아파트 이야기를 꺼냈다.
“엄마…. 나 집 계약했어.”
갑자기 고요해졌다. 엄마는 오래된 486 컴퓨터처럼 몇 초간 버퍼링 상태로 있다가 나를 쳐다봤다.
“집? 너 집을 샀다고?”
“응. 아파트야. 그것도 18층이야. 작은 방에서 한강도 조금 보여.”
“아니, 돈 모은 거로 위험하게 집을 덜컹 사면 어떡해. 그리고 4천만 원짜리 아파트도 있어?”
“아니, 대출받아야지. 아마도 한 8천만 원 조금 넘게 받게 될 거 같아.”
“아니, 무슨 대출을 받아. 큰일 나려고. 그리고 매달 이자 내는 게 얼마나 무서운데.”
“아니야. 괜찮아. 내가 알아서 할게요. 걱정하지 말아요.”
“요한아, 엄마 요즘 뭔 일 안 터지나 조마조마했는데 왜 그러니, 너까지.”
“엄마, 정말 걱정하지 마. 나 이제 자퇴생 미성년자가 아니야. 벌써 사회생활 9년 차고 나름 공무원이야. 문제없어.”
스물여섯, 아직도 어린 나이지만 사회생활 9년 차라는 말이 엄마 가슴에 박힌 것 같았다. 엄마는 말이 없었다. 계약이라도 당장 취소하라고 말하고 싶어 하는 두려움이 보였다. 결국 엄마는 말을 아끼고 참는 듯했다. 아니, 꺼내지 못하셨다. 못난 부모라며 그런 말을 할 자격도 없는 부모라고 스스로 자책하는 게 보였다.
엄마 반응이 좋지 않으니 괜히 내가 큰일이라도 낸 건 아닌가 무서웠지만 눈을 질끈 감고 잊으려고 노력했다.
그날 엄마랑 좁고 좁은 작은 방에 세로로 누워서 엄마가 좋아하는 드라마를 보다가 저녁에 되어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엄마는 마지막까지 잘 알아보라고 걱정 어린 눈빛으로 나를 배웅해 주셨다.
‘잔금 날’
의미 있는 날을 기다리는 것은 언제나 기쁨 그 자체였다. 어릴 때 산타 할아버지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믿는 척 선물을 위해 기다리곤 했다. 생일날도 그랬고, 첫사랑과 사랑에 빠졌을 때도 데이트하는 날만 쳐다보곤 했다. 하지만 나이를 먹고, 사는 게 힘들어지면서 그런 설레는 마음도 사라졌다. 더 이상 크리스마스에 선물을 받을 수도 없었고, 생일은 축하받는 것도 어색해졌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행복의 크기를 줄이는 과정과도 같았다. 당연하게 느껴졌던 행복도 아무렇지 않은 것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순수했던 첫사랑과의 추억이 인생 뒤편으로 밀려나는 것처럼.
하지만 잔금 날을 기다리면서 어딘가 모르게 힘이 넘쳐났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박카스 10병을 마신 것처럼 들떠 있었다. 기다리는 날 동안 퇴근하면 노트를 펼치고 추가 경비와 비용을 수도 없이 계산했다. 마치 반복적인 훈련을 하듯이 머릿속에 그 장면을 상상하며 시뮬레이션하곤 했다. 어떤 표정으로 서명해야 하는지, 혹시 계약이 파기되는 건 아닌지, 집주인이 당일 집값을 더 올려달라고 하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등등 수많은 질문 속에서 잠이 들었다.
아파트 매매가 1억 3천만 원
주택담보대출 8천5백만 원
계약금 1천만 원
잔금 3천5백만 원
추가 금액(수수료, 취득세 등) 400만 원
내가 필요한 돈은 대략 5천만 원 정도였다. 그동안 더 아껴 쓰면서 모아둔 돈이었다. 큰 문제는 없어 보였지만 불안한 마음에 은행을 찾았다. 위기에 대처하는 방법은 준비밖에 없었다. 대출 번호표를 들고 순서를 기다렸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마이너스 통장 만들려고요.”
주택담보대출로 많은 돈을 빌림에도 추가 대출을 받겠다고 상담받는 내가 미쳐 보였다. 돈을 빌리는 게 맞는지, 올바른 선택인지 은행만 오면 마음이 흔들렸다. 외벌이로 생계를 이어가는 선배들은 입버릇처럼 말했다. 마이너스 통장 없으면 바로 파산이라고, 신용카드와 마이너스 통장은 생활필수품이라고. 장난처럼 말했지만, 그들은 정말 카드로 한 달을 버티고 그래도 안 되면 마이너스 통장을 사용했다. 이런 용도로 만드는 게 아니고 정말 ‘만약’을 위해 만드는 거라고 스스로에게 말하며, 직원이 요구한 대출 서류들을 건네줬다. 주택담보대출 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꼼꼼히 확인하는 듯했다. 말끝마다 ‘신용', '신용’. '신용'이라는 말이 귀에서 맴돌았다.
“연체도 없고, 신용도 좋으시네요. 2천만 원짜리 가능할 것 같은데 진행해 드려요?”
“아… 2천만 원이요. 이거 안 쓰면 아무 문제없는 거죠?”
“그렇죠. 그런데 신용대출로는 잡혀 있어요.”
“알겠습니다. 그럼 만들어 주세요.”
1억을 빌리는 게 이렇게 쉽다니 정말 미쳤나 싶었다. 월급으로 1억을 모으려면 몇 년이 걸리는지 계산해 보니 까마득했다. 한 달에 60만 원 저축한다고 하면 167개월 후 1억을 모을 수 있었다. 14년이란 세월을 저축해야 하는 것이었다. 상상만 해도 앞이 캄캄했다. 26 더하기 14는 마흔 살이었다.
더 겁나고 소름 끼치는 것은 14년이 지난 후 집값은 더 올라가 있다는 것이었다. 전문적으로 뭘 공부하지는 않았지만, 인터넷으로 과거 집값과 현재를 비교해 봤다. 나는 손이 떨렸다.
이런저런 물가상승에 대한 생각과 계산을 하다 보니 잠시 잊고 있던 것들이 떠올랐다. 어린 시절 1층 구멍가게에 천 원 한 장 들고 가면 라면을 몇 개나 사 왔었는지, 버스 요금은 얼마였는지, 집값만 오른 게 아니었다. 조금조금씩 그렇게 모든 것들의 가격은 오르고 있었다. 문제는 월등하게 뛰어나지 않으면 월급은 그렇게까지나 오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상승하는 가격에 이익을 보는 사람들은 ‘소유자’들이었다. 자기 이름 앞으로 가진 것이라고 '등본' 뿐인 서민들은 점점 가난해졌다. 소유자들에게 골수까지 빨아 먹히나고 나면 너덜너덜한 껍데기만 남아있었다. 그 껍데기로 토끼 같은 처자식을 보호하기에는 너무 약했다.
이런저런 이유에서 나는 은행의 힘을 빌려서 167개월의 시간을 앞당겼다. 그 대가로 신용이라는 목줄이 잡혔고 매달 이자를 은행에 상납해야 했다. 신기하게 생긴 마이너스 통장과 카드를 들고 편의점에서 1+1 음료수 하나를 샀다. 평소 같으면 집에 가서 물 먹을 텐데, 몸속에 달콤한 걸 넣어줘야 할 것만 같았다. 차가운 음료를 들고 잠시 편의점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서 부모님의 삶을 떠올렸다.
이렇게 돈 빌리는 게 쉬운데 왜 엄마랑 아빠는 돈 몇백만 원 때문에 방바닥에 코를 박고 사정사정했을까…? 자영업자라서? 능력 없어서? 신용이 나빠서?
차라리 은행이 엄마, 아빠를 싫어해서 빌려주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게 속 편했다. 은행도 결국 장사꾼이라 절대 손해 볼 짓은 안 한다는 걸 깨닫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월급을 떠나서 은행이 원하는 건 확실한 담보였고, 직장도 언제 망할지 모르는 불확실한 시대에 부모님에게 돈을 빌리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이었다. 성실하고 착하다는 것은 보증이 될 수 없었다. 증거를 원했고 아빠와 엄마는 신용이라는 확실한 증거제공할 수 없었다.
든든한 예비금까지 준비하고 달력을 보니 잔금까지 일주일 남아있었다. 마침 부동산 사장님께 전화가 왔다.
“사장님.”
귀를 의심했다. 누구를 부른 거지 싶었다.
“네에…?”
“사장님, 집 세입자 한 분이 월세 계약하고 싶다고 하네요.”
졸지에 나는 ‘사장님’이 되어 있었다. 왜 내가 사장님인지 이해가 안 됐다. 얼마 전까지 그렇게 안 부르셨던 거 같은데, 나이도 한참 어린 내게 부동산 사장은 나를 사장님이라고 불렀다. 어색했지만 기분이 묘했다. 대접받는 것 같아서 좋았다. 이런 것이 호칭의 위력이구나 속성으로 배웠다.
“진짜요?”
“시세대로면 보증금 2천에 월 50만 원이 적당해요.”
월세 이야기를 듣고 심장이 두근거렸다. 매달 50만 원 고정적인 수입이 생긴다는 말이 한없이 달콤해서 솜사탕을 먹은 것만 같았다. 보증금만큼 예산을 아낄 수 있었다. 만약을 위해 만든 마이너스 통장이 필요 없게 되었다. 은행이자를 내고 매달 20만 원 정도 남았다. 수입의 크기를 떠나서 일하지 않고 돈이 나오는 시스템이 나를 웃게 만들었다.
어린 시절 돈을 좇아 준비운동도 없이 무작정 달리기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금방 도착할 것만 같던 결승선은 눈에 보이지도 않고, 몸은 점점 지쳐만 갔다. 숨은 턱까지 차오르고 호흡도 엉망이 돼서 산소가 부족해지는 느낌으로 계속 뛰었다. 결국 종아리에 쥐까지 나면서 땅에 주저앉았다. 하지만 가난은 나를 쉬게 하지 않았다. 멈출 수 없었다. 찢어질 것 같은 근육통을 참으며 쥐가 난 다리를 질질 끌고 결승선을 향해 한없이 걸었다.
결과는 비참했다 도착하지도 못한 채 구석에 쓰러졌다. 그 후로 한동안 나는 결승선 밖으로 도망쳤다. 다시는 이런 무모한 짓거리를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아무도 찾지 못하는 철책으로 둘러싸인 우물 속으로 몸을 던졌다. 남들은 나가고 싶어서 달력에 날짜를 지우는 그곳에 스스로 들어갔다.
그랬던 순간이 엊그제 일처럼 생생했다. 그런 내게 일을 하지 않아도 돈을 얻을 수 있는 월세는 오아시스보다 더 귀했다.
내가 선택한 철책으로 둘러싸인 우물 덕분이었다. 인생을 조금 살다 보니 보이는 것이 있었다. 모두 자기만의 우물 속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그것이 자신만의 세상이자 창조된 환경이었다. 그런데 가끔 어떤 사람들은 호기심을 가진다. 우물 밖의 세상을 동경하는 것이다. 남들이 위험하다고 말려도 벽을 타고 올라가서 결국 우물 밖의 세상을 본다.
우물 위에서 올라 눈물을 흘린다. 자신이 생각했던 바깥세상이 아닌 것이다. 어렵게 올라와서 본 것은 자신의 우물 옆에 있는 다른 사람들의 우물이라는 걸 비로소 알게 된다. 우물 밖 완벽한 세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부러움과 호기심이 만들어낸 허상일 뿐이다. 하지만 한 번 우물을 벗어난 사람은 자신에게 꼭 맞는 우물을 찾아 끝없이 도전한다. 비슷해 보여도 막상 다른 우물로 들어가면 또 다른 이야기가 펼쳐진다.
내게 아파트 월세는 새로운 우물과 같았다. 너무도 비좁고, 벽면이 거칠어서 기댈 수도 없는 그 속에서 상처투성이가 되어도 참고 올라가 얻어낸, 조금 더 넓고 쾌적한 또 다른 우물이었다.
나는 사장님에게 흥정조차 하지 않았다. 아니, 흥정을 할 만큼 영리하지 못했다.
“네, 감사합니다.”
“잘됐네요. 근데 집 상태 아시겠지만, 도배랑 장판은 사장님이 해주셔야 해요.”
“네.”
부동산에 ‘부’ 자도 모르는 나는 "왜 다 해줘야 하죠?"라는 질문을 떠올릴 수 없었다. “네.”라고 대답하는 순간 사장님은 알았을 것이다. 내가 정말 가지고 놀기 편한 장난감이라는 사실을….
전화를 끊고 달력을 보았다. 세입자까지 모든 준비가 끝나니 마음이 평온해졌다. 드디어 며칠만 지나면 내 이름 세 글자가 담긴 아파트 한 채가 이 땅에 생기는 것이었다. 잠도 오지 않았다. 시간이 이처럼 늦게 흘러가는 게 원망스러울 뿐이었다. 달력만 쳐다보며 시간을 보냈다. 마치 첫사랑과 첫 키스를 하고 다음 만남을 기다렸던 그 시절의 나처럼.
부동산 사무실에 30분 일찍 도착해서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문을 열었다. 수없이 열었던 문이지만 어색해서 괜히 챙겨 온 서류를 뒤적거리며 책상에 머리를 박고 있었다. 사장님은 내게 커피를 건네며 잘 사는 거라고, 걱정하지 말라고 농담인지 진담인지 구분하기 말로 분위기를 전환시켰다.
“조금 늦으실 수도 있다고 했는데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이제 집주인 돼서 좋겠네요.”
“아… 네. 감사합니다.”
기다리는 시간은 초조했다. 묵직한 옥으로 만들어진 인감도장을 만지작거리며 엄마를 떠올렸다. 중학교 입학식 때 엄마는 옥으로 된 비싸 보이는 도장을 선물로 주셨다.
“이거 선물이야, 아들.”
“웬 도장이에요?”
“나중에 쓸 일이 많았으면 좋겠다. 엄마 아시는 분에게 부탁해서 만들었다. 돈이 굴러들어 온다고 하더라. 동생 것도 같이 만들었어.”
“고마워요. 도장 찍으려면 공부 열심히 해야겠네요. 근데 우리보다 엄마한테 필요한 거 아니에요, 도장?”
“나중에 만들면 돼. 우리 아들들은 모두 잘 살 거야.”
도장을 건네며 희망을 품었던 엄마의 미소가 스쳐 지나갈 때, 부동산 문이 열렸다. 집을 보러 갈 때 얼굴을 봤지만, 부부는 웃으며 함께 들어왔다. 표정은 왠지 모르게 행복해 보였다.
“여기 앉으세요. 서류 저 주시고요.”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어색’이라는 단어는 이 순간을 위해 세종대왕님께서 만든 건 아닐까 싶었다. 쳐다보기도 민망하고 뭐라고 딱히 꺼낼 말도 없었다. 입술이 마르고 손에서 땀까지 났다. 그때 긴장한 나를 보며 말을 꺼내셨다.
“잘하셨어요. 우리도 이 집 사고 살면서 정말 좋은 일만 있었어요. 신혼집으로 사신다고요?”
“네… 네… 집에 문제는 없죠? 제가 저번에 꼼꼼히 보지는 못한 것 같아서요….”
“집이 오래되긴 했죠. 그래도 큰 문제는 없어요.”
사장님은 뒤에서 분주하게 움직였다. 마치 내가 일할 때 보고서를 준비하는 것처럼 바빠 보였다. 조금 지나자 출력물과 함께 우리 앞에 앉았다. 문서 세 장을 겹쳐 놓고 양쪽 다 도장을 찍으라고 했다. 금속으로 된 거북이 모양 뚜껑을 열자 아주 빨간빛의 인주가 곱게 있었다. 옥도장에 힘을 줘서 순서대로 도장을 찍었다.
그 순간에도 잘못된 결정을 한 건 아닌지, 지금이라도 멈춰야 하나 하는 나약한 마음이 내속에서 요동쳤다. 그동안 피땀으로 모은 돈이 잘못될까 봐 무서웠다. 하지만 생각과 몸은 반대로 움직였다. 내 이름 세 글자가 겹친 종이 세 장에 뚜렷이 보이도록 정성을 다해 도장을 찍었다. 조금 있으니 법무사 쪽에서도 사람이 왔다. 취득세와 양도세에 대한 세금 설명을 듣고 최종 잔금을 집주인에게 입금했다. 이어서 은행에서 받은 대출금이 집주인 통장으로 들어갔다. 마지막으로 잔액을 확인하고 공식적인 모든 절차가 마무리됐다.
모든 게 너무도 간단했다. 그토록 갖기 힘든 집인데 절차는 복잡하지 않았다. 오히려 복잡했다면 집 사는 게 어려워서 사람들이, 아니 부모님이 반평생 남의 집에서 사는구나 이해했을 텐데, 가게에서 물건을 사고파는 것과 다를 게 없었다.
이렇게 나는 집주인이 되었다.
사람들이 퇴장하고 마지막으로 사장님께 중개수수료를 입금하려고 하는데, 사장님이 묵직한 톤으로 한마디 했다.
“원래 다른 데서 알아봤던 것보다 저 때문에 천만 원 싸게 사셨잖아요. 조금만 더 주세요.”
뇌가 정지된 것 같았다. 원래 이런 건가? 이런 말을 듣기는 했는데, 너무 당당하게 요구하는 사장님에게 한순간에 압도당해 버렸다. 안 된다고 딱 잘라 말하고 싶은데 최면에 걸린 것처럼 상황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 찰나에 사장님이 마지막 한마디를 던졌다.
“앞으로 세입자도 그렇고 쭉 잘 관리해 드릴게요.”
그래, 오늘 보고 말 것도 아닌데 이분들도 먹고살아야지.
“네, 정말 잘해주셔야 해요.”
“하하… 그럼요. 걱정하지 마세요. 다음 주에 또 봐요. 여기 계좌번호요.”
“입금할게요.”
“살펴 가세요, 사장님.”
“다음 주에 올게요. 고생하셨습니다.”
보기 좋게 ‘호구’가 된 나는 아주 친절하게 인사하며 문을 닫고 부동산을 나왔다.
발걸음은 마법처럼 매수한 아파트 단지 쪽으로 향했다. 멀리서 작은 상자를 쌓아 올린 것 같은 수많은 베란다 창문을 바라보며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1층, 2층, 5층, 9층, 15층, 18층… 그곳에서 시선이 멈췄다. 다시 한번 확인하고 싶었다. 좁고 좁은 대한민국 땅에서 얻은 하늘에 떠있는 아주 작고 귀한 공간을 눈에 담았다.
작은 단지를 몇 바퀴 돌면서 내가 산 아파트에서 사는 상상했다. 퇴근하고 저 높은 곳으로 올라가 현관문 비밀번호를 누르면 뛰어오는 아이들과 달콤한 냄새를 풍기는 주장에서 요리하는 아내의 모습을 떠올렸다. 적어도 가족들이 살아갈 작은 보금자리를 마련했다는 생각에, 조금이나마 가장의 짐을 덜어낸 것만 같았다.
내 주변 사람들은 대부분 빚을 끼고 집을 산다는 것을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마음은 기뻤지만 마땅히 자랑할 곳도 없었다. 기쁨을 속으로 삼키며 아무 말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내 명의로 된 집이 생겼지만 내 삶은 달라진 게 없었다. 작고 작은 숙소, 적고 적은 월급, 매일매일 반복되는 일상, 그리고 스틱 중고차—모든 게 그대로였다.
소유에 대한 기쁨은 아주 잠시 내게 머물렀다. 들어가서 살다면 실감할 텐데, 늘어난 건 세금과 부채뿐인가 싶었다. 그렇게 며칠이 흐르고 불안감에 휩싸였다. 정말 좋은 집이었다면 왜 그 사람들이 팔았을까? 혹시 내가 실수한 건 아닐까?
되돌릴 수 없음을 알지만 가지면 안 될 것을 소유한 건 아닌지 걱정스러웠다. 이런 불안감은 집을 사고 한 달 넘도록 계속됐다. 잠도 편하게 못 자고 머릿속은 정리 안 된 책상 서랍처럼 어수선했다. 그냥 결혼하면 주는 작은 관사에 살면서 퇴직 때까지 저축이나 꼬박꼬박 하며 사는 게 정답이었나 싶었다. 하지만 모든 것을 되돌리기에는 집문서 찍힌 도장이 너무나도 선명했다.
시간이 지나고 다시 방문한 부동산에 도착하니 중년의 여성분이 앉아 계셨다. 약속 시간보다 빨리 간다고 서둘렀는데 한참 먼저 와 계신 것 같았다. 보자마자 엄마의 얼굴이 떠올랐다. 엄마도 이렇게 집주인이라는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약속 시간보다 한참 빨리 와서 기다리고 계셨을 것만 같았다. 사장님이 도착한 나를 보고 서로 인사하라고 주선해 주셨다.
“인사하세요. 여기가 집주인이에요.”
“아… 젊으시네요. 처음 뵙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집주인이라고 나를 소개할 때 나도 모르게 부끄러워 얼굴을 돌렸다. 내게 어울리지 않는 호칭 같았다. 마치 어린아이가 몰래 부모님 옷을 훔쳐 입은 것처럼 어색하기만 했다.
“안녕하세요.”
“대단하시네요. 어린 나이에 집도 사시고, 우리 아들보다 3살 많으신데.”
“아… 아니에요….”
사장님 역시나 신속하게 준비할 것들을 가지고 우리 앞에 앉았다. 처음보다는 모든 절차가 어색하지 않았다. 어디에 서명하는지, 도장은 어떻게 찍는지 이미 알고 있어서 당황하거나 눈치 보지 않았다.
“사장님, 이거 대출 때문에 문제 안 되겠죠?”
“에이… 걱정하지 마세요. 1순위라서 문제 될 거 없어요. 여기 주인분 직업도 안정적이어서 더 걱정될 거 없고요.”
“직업 어떻게 되세요?”
“군인이요.”
“그러셨구나. 고생 많으시겠어요.”
어린 집주인인 나를 만나고 세입자 분들은 걱정이 많아 보였다. 혹시나 잘못되지 않을까? 주인이 너무 어린데 괜찮을까? 대출이 있다는데 깡통 주택이 되는 건 아닐까? 이런 걱정을 하는 모습이 얼굴에서 읽혔다. 충분히 불안할 만했다. 한참 어린 집주인과 계약한다면 나라도 걱정될 것 같았다.
“중간에 나가라고 하거나 그러시면 안 돼요.”
“네…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결혼하신다고 해서 여쭤봤어요.”
세입자분을 안심시켜 드리고 모든 보증금을 받은 후 다 함께 아파트로 올라갔다. 현관문 비밀번호를 누르고 문을 열었다. 다시 본 아파트 내부는 이삿짐이 빠져서 그런지 훨씬 더 낡아 보였다. 여기저기를 함께 둘러보는 데 보수할 곳들이 넘쳐났다.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지금 둘러보고 있는 집은 이제 내 집이었다. 집을 갖고 싶다는 마음하나로 둘러볼 때는 그렇게 좋아 보이던 이 아파트가 지금 내 가슴을 조여 오고 있었다. 그때도 지금과 같은 모습이었을 텐데 당시 내 눈에는 이런 모습이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마치 시각정보를 뇌에서 차단시킨 것만 같았다. 불안해하는 내 모습을 감지했는지 세입자분들은 더 걱정스러운 눈치로 집을 꼼꼼히 살폈다. 그 옆에서 눈치 빠른 사장님은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한마디를 던졌다.
“도배랑 장판이랑 주인분이 해주기로 했으니. 그럼 새집처럼 깨끗해져요. 걱정하지 마세요, 어머니.”
사장님의 도배장판 서비스 제공이라는 말에 세입자분들의 표정이 조금 좋아지는 게 보였다. 모든 게 끝났나 싶었는데 결국 추가로 보수해야 할 몇 가지가 더 발견되고, 그 부분까지 모두 보수해 주기로 합의하고 집을 나섰다. 도배랑 장판 그리고 싱크대 보수, 일부 부분 도색 등을 포함하니 160만 넘는 견적이 나왔다. 한 달에 고작 20만 원 남는 아파트를 사서 세입자를 구하는 순간 1년 치 월세 수입이 모두 사라져 버렸다.
너무 허탈해서 화조차 나지 않았다. 처음이라 그런 거라고, 괜찮다고 스스로 위로했지만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부동산 중개업을 하는 사장님만 좋은 일 시키는 꼴이었다. 집을 팔 때 수수료를 받고, 그 집을 산 주인에게 또 돈을 받고, 모든 책임은 집주인의 몫이고. 불합리한 명령과 지시를 수도 없이 받은 나였지만 이곳은 정말 이기적인 곳임이 분명했다. 돈 앞에서 사람들은 그렇게 변해갔다.
처음은 언제나 손해로 배운다. 그렇게 나는 26살, 월세 받는 직장인이 되었다.
집을 샀지만, 세상은 여전히 나는 이 세상에 세입자였다. 하지만 무엇인가 작은 변화가 안에서 꿈틀거렸다. 새로운 우물에서의 삶, 그 바닥이 생각보다 깊을지라도 내려가보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