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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용환 Jan 25. 2021

각방을 쓰게 된 이유

기숙사 같은 우리 집

결혼 6년 차  다문화 가정이다. 캐나다 영어선생과 직업군인의 결혼은 진보와 보수의 만남과도 같았다. 모든 불안을 뒤로하고 결혼을 결심하고 살기 시작한 지금 우리는 각방을 쓴다. 아내, 딸, 나는 잠을 모두 떨어져서 자고 있다. 가끔 딸에 방에 숨어서 잠을 자기도 하지만 요즘은 중간에 딸이 일어나면 나가라고 한다.


우리 집 두 여자는 나보고 다 나가라고 한다.

다행히도 방이 3개여서 거실이 아닌 방에서 잔다.


시작은 아주 간단한 문제에서 시작되었다. 가족은 잠을 일찍 잔다. 군인보다 더 규칙적인 생활을 한다.


아내의 일과표는 아주 간단하다.

06시 기상

08시 식사 및 출근 준비

16시 퇴근

18시 저녁식사

19시 딸 목욕 및 놀아주기

1930시 딸 강제 취침

2000~2200시 : 휴식 <유튜브나 반려견 산책>

2200시 : 취침


일탈은 없다. 항상 한결같다. 반면에 나는 밤잠이 별로 없다. 아니 직장 때문에 퇴근 후 공부나 다른 일을 하다 보면 항상 새벽 2시쯤 잠이 든다. 신혼 초에 가끔 회식을 하고 같이 자면 새벽에 나를 깨웠다. 코를 곤다는 이유였다. 한참 잠을 자다가 일어나면 화가 나기도 했다. 밤귀도 밝고 눈 귀도 밝다. <눈귀: 불빛에 매우 민감하다.>

그러던 어느 날 회식을 한다고 말하고 퇴근을 하니 이불이 거실에 던져져 있었다. 나를 반겨주는 것은 우리 반려견 촬리뿐이었다. 2300시 집에 왔는데 우리 집은 언제나처럼 불빛 하나 없이 고요했다.


순간 기분이 나빴다. "어이가 없네. 내가 울 아버지처럼 뭔 잘못을 한 것도 없는데,,,"

서운했다. 그 이후에도 이런 일은 반복되었다. 술을 먹지 않은 날도 피곤해서 코를 골면 중간에 거실로 나가는 신세를 반복하게 됐다. 이렇게 사는 건 아니다 싶었다. 근데 가족도 잠을 방해받고 싶지 않았는지 나에게 제안을 했다. 본인이 작은 방으로 옮기겠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쿨 하게 내가 갈게 라고 말하고 2층 침대를 주문했다. 밑에는 책상과 서재를 만들고 완벽한 아지트를 구축했다.  그리고 아내에게 한마디 했다.


"한번 나가면 다시는 안 들어가, 나란 사람이 좀 독해서 알아둬."


그리고 어느덧 1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물론 난 내 말에 책임을 지는 사람이라서 그 후에 합방은 없었다. 가끔 가족이 서운하다는 식으로 말하지만, 이미 무엇인가 잘 못된 방향으로 흘러버린 강물은 되돌리기는 쉽지 않다.

개인주의에서 비롯되는 것인지, 문화 차이인지 몰라도 갈등은 끊이지 않는다.

하지만 한번 방을 떠나니 나도 들어가고 싶지가 않다. 항상 예민하게 굴어서 자기 전에 책도 못 보고 팟캐스트 같은 것도 이어폰 끼고 들었는데 따로 잠을 자니 너무 자유롭고 좋았다.


단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은 내 딸이다. 아빠, 엄마가 방을 따로 쓰는 것에 대해서 너무 당연히 생각하고 미래에 영향을 미칠까 걱정이 된다. 아마 모든 사람들은 한방에 만 자는 거라고 생각지도 모른다.


주변에 말을 들어보면 한국 부부끼리도 아이가 태어나고 나서 각방을 쓰는 경우가 꽤 있는 듯 보였다. 그런 사람들과 말을 하면 가끔 위안이 되지만, 한편으로는 안쓰럽다. 라이프 스타일이니 존중을 해줘야 하지만 각방을 쓰게 되면 가족의 의미는 자녀 양육이라는 한 가지 과제를 위해서 생활하는 모습으로 변해버린다.

내가 어릴 때 상상했던 결혼 생활은 이런 것이 아니었는데 역시 현실은 다르다.


부부가 각방을 쓰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크게는 배우자의 외도, 성격 차이, 경제적 문제부터 작게는 출산 후 수유, 육아, 생활패턴 등 생활습관의 차이로 각방을 쓴다. 미국 국립 수면 재단의 2015년 조사에 따르면, 방은 한 방을 쓰지만 침대를 따로 쓰는 부부가 전체의 25%인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아예 침실을 따로 쓰는 각방 부부도 10%인 것으로 조사됐다. 우리나라 한 여성 포털이 조사한 결과를 보면 '현재 각방을 쓰고 있다'라고 응답한 사람이 52%로 집계됐다. <출처: 매일신문 찢어진 '한 이불'… 각방 쓰는 부부 2019. 4.>


저녁 10시가 되면 집에 혼자 남은 듯한 느낌이 든다. 껌껌한 거실, 굳게 닫쳐 있는 방문들이 외로움을 불러온다. 그렇게 기숙사에 사는 것 같은 느낌을 받으며 이층 침대에 올라 잠을 자려고 하면 옆집에서 가족끼리 늦은 밤 떠들면서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린다. 나를 사실 저런 삶을 꿈 꾸기는 했다. 연애할 때부터 예측했던 일이기도 했기에 결혼과 동시에 그 꿈을 접었어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았던 거 같다.


최근의 트렌드는 각방을 너무 나쁘게 생각하지 않고 존중의 문화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결혼생활이 참으로 쉬운 일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번 실감하게 된다.



국제시장 영화의 마지막 엔딩 장면을 기억하는 모르겠다. 결혼 후에 우연히 다시 본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나 홀로 밖에서 소주 한잔을 마시게 했다.


마지막 장면에서 수많은 고생을 하고 다 늙어버린 황정민 집에 자녀들이 놀러 온다. 손주들도 데리고 와서 거실은 음식과 함께 시끌 시끌하다. 그때, 카메라는 밖에서 아파트 전체를 잡는다. 늙은 황정민은 옆 방에 혼자 앉아 있다. 그러면서 아버지에게  말한다.

"아버지, 저 잘 산거 맞죠."


만약에 내 모습이 저렇게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됐다.

그것도 낯선 땅 캐나다에서 저런 모습으로 생을 마감한다면 참으로 외로울 것 같다.  내 사위가 한국 사람일 거라는 보장도 없다. 너무 이른 걱정이지만 다문화 가정이기에 그런 생각도 종종 하게 된다.


오늘도 나는 이층 침대에서 옆집의 사람 사는 향기를 라디오 삼아 잠을 청한다.

선택에 대한 책임이라는 것은 그 결과가 현실로 다가오기 전까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선택을 되돌리기에는 너무 많은 피해가 따라온다. 대부분 감수하기 힘들 정도로 치명적이다.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 딸에게 미안한 아빠로 남지 않기 위해 나는 오늘도 플래시를 켜며 거실을 지나다닌다.


결국 나도 다양한 라이프 스타일 창조자였다.


#각방 #부부생활 #침대 #다문화가정 #코골이 #캐나다 #국제결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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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잘것없는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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