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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경인 Mar 25. 2022

아름답고 뛰어난 인재를 상징하는 조장나무와 녹나무

예장豫樟

<한국의 나무>에 의하면, 무등산, 조계사 등 전라남도 산지 계곡가 및 숲 가장자리에 드물게 자라는 나무로 털조장나무(Lindera sericea [Siebold & Zucc.] Blume)가 있다. 2019년 봄 4월 초, 봄비가 내리던 날 나는 이 털조장나무를 보러 김태영 선생의 안내를 받아 광주 무등산에 갔다. 길 가 조릿대 숲에 자라고 있는 털조장나무 몇 그루를 어렵사리 발견하여 기쁘게 감상할 수 있었다. 털조장나무는 생강나무 꽃과 대단히 유사한 노란 꽃을 피우고 있었다. 두 나무 모두 녹나무과 Lindera 속의 낙엽관목으로 암수딴그루이고, 풍성한 수꽃에 비해 암꽃이 작은 점 등 꽃은 비슷했지만, 잎 모양은 판이했다. 즉, 생강나무는 윗부분이 얕고 크게 갈라져서 뫼산(山) 자 모양인데 반해, 털조장나무는 “끝이 뾰족하고 밑부분은 좁은 쐐기형이며 가장자리가 밋밋하다. … 뒷면은 회백색이고 부드러운 긴 털이 밀생”*하고 있다.


털조장나무 수꽃차례, 2019.4.7 무등산


그 해 10월 초에 순천 선암사 근처 골짜기에서 다시 털조장나무 열매를 구경했다. 열매도 생강나무와 비슷했지만 듬성듬성 열리고 색이 더 짙은 갈색이고 윤기가 났다. 이우철의 <한국식물명의 유래>를 보면, ‘조장나무’를 “털조장나무의 중국 옌벤 방언”으로 기재하고 있다. 나는 중국의 나무 이름으로 조장釣樟이 있고, 이 나무와 유사하여 ‘털조장나무’라는 이름을 붙었을 거라는 추측을 해본다. 이번에는 털조장나무와 비슷한 조장釣樟과 관련된 고전의 용례를 살펴본다.

 

털조장나무 잎과 열매, 2019.10.6 순천

<묵자墨子> 공수公輸편에 묵자가 공수반公輸盤이 만든 운제雲梯를 써서 송나라를 공격하려는 초나라를 설득하여 전쟁을 막는 이야기가 나온다. 묵자가 초나라 임금을 만나 초나라는 넓고 물산이 풍부해 비단옷을 입는 대국임에 반해 송나라는 좁은 땅에 거친 옷밖에 없는 소국임을 설명하면서 공격해서 땅을 취해도 초나라를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설득한다. 이 때, “초나라(荊)에는 장송長松과 아름다운 개오동(梓), 편남楩柟과 예장豫章이 있습니다만 송나라에는 좋은 나무라곤 없습니다. 이것은 마치 비단과 갈옷의 차이와 같습니다”라고 말한다. 이 표현은 <전국책戰國策>에도 나온다. 이후, 편남楩柟***과 예장豫章(혹은 豫樟)은 아름다운 나무, 동량지재棟梁之材를 상징하는 글자로 사용되었다.

 

털조장나무 암꽃차례, 2019.4.7 무등산

<본초강목>에서는 조장釣樟의 이명으로 예豫와 침枕, 오장烏樟 등을 나열하고, 이시진李時珍은 “장樟에는 큰 것과 작은 것 두 종류가 있고, 자색과 담색의 두 색이 있다. 이것은 장樟의 작은 것이다. 예豫는 <별록别錄>에서 말한 조장釣樟이라는 것이다. 뿌리가 오약향烏藥香과 비슷하여 오장烏樟이라고도 한다”고 했다. 장樟에 대해서는, “그 나무 결의 무늬가 아름다와서(文章=文彩) 장樟이라고 한다. 나무 크기는 한 길 남짓하고 작은 잎이 남楠과 비슷하나 좁고 긴데 뒷면에는 황적색의 털이 있다. 사철 시들지 않고 여름에 자잘한 꽃이 피며 작은 열매를 맺는다. 큰 나무는 여러 아름이 된다. 나무 결이 가늘고 이리저리 뒤섞인 무늬가 있어서 다듬고 조각하기에 적당하다. 냄새를 맡으면 향기가 좋고 진하다. 예장豫樟은 두 가지 나무로, 한 종류의 두 종을 이름한 것이다. 예豫는 조장釣樟이다”****라고 했다. <본초강목>이 잘 설명하고 있듯이, 예豫는 조장釣樟인데, <중국식물지>에 의하면, Lindera reflexa가 조장釣樟이다. 이명으로 대엽조장大葉釣樟 등을 적고 있는데, 이 나무가 우리나라의 털조장나무와 대단히 유사하다. 또한 장樟은 우리나라 제주도에 자생하는 녹나무(Cinnamomum camphora [L.] J. Presl)이다.

 

녹나무, 2018.11.18 제주도

대체로 우리나라에서도, 장樟은 녹나무로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한의학에서 쓰는 장뇌樟腦라는 약재가 바로 녹나무의 줄기와 뿌리를 잘게 자른 나무 조각을 증류 냉각하여 만든 고형의 휘발성기름이고, 우리나라에 자생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참고로,  <물명고>와 <광재물보> 에서는 장樟은 <본초강목>을 인용하여 동일하게 설명하고 있지만, 예장豫樟에 대해서는 조금 다르게 설명한다. 즉,  <광재물보>에서는 “豫예는 조장釣樟이다”라고 했고, <물명고>에서는 예장豫樟을 한 종의 나무로 보고, 조장釣樟으로 기록했다. 약간의 혼동이 생긴 것이다. 그래서 고전의 예장豫樟을 ‘녹나무’, ‘예장나무’, ‘예(豫)나무와 장(樟)나무’ 등으로 모호하게 번역하고 있다. 한 종의 나무로 볼 지, 두 종의 나무로 볼지 등에 대해 혼동이 있었던 것이지만, 예장豫樟은 조장나무와 녹나무로 번역하는 것이 좋을 듯이다. 예장豫樟, 예장豫章, 여장櫲樟은 모두 같은 뜻이다. 환재瓛齋 박규수朴珪壽(1807~1877)의 ‘여장설櫲樟說’ 일부를 읽어본다.


녹나무 수피, 2018.11.19 제주도

“여장櫲樟은 나무 중에 큰 것이고 재목 중에 아름다운 것이다. 비에 젖고 햇볕을 쬐면서 서리와 눈에 흔들리며 7년 동안 뿌리를 펼치고 내린 뒤에야 비로소 그 줄기와 잎을 분별할 수 있다. 무릇 나무가 뿌리를 펼치고 내릴 때 열 아름 되는 나무는 다섯 아름 되는 뿌리를 뻗고, 다섯 아름 되는 나무는 두 아름 되는 뿌리를 뻗으며, 두 아름 되는 나무는 그 뿌리의 굵기가 서까래만 하고, 서까래만 한 나무는 그 뿌리의 굵기가 붓대만 하며, 붓대만 한 나무는 그 뿌리의 굵기가 화살대만 하다.  … 지금 자네가 나무의 뿌리가 깊고 튼튼한가를 살피지 않고 오직 나무가 무성하고 목재가 큰 것에만 현혹된다면, 자네의 현혹이 장차 불어나고 심해져 끝나지 않을 것이다”*****.


박규수가 배우고자 하는 사람의 급히 이루고자 하는 태도를 경계하여, 공수반公輸般의 가상대화에 의탁하여 쓴 글이다. 녹나무 목재를 ‘캄포(camphor)’라고 하는데, 장뇌樟腦라는 뜻이고, 녹나무의 종소명 camphora가 장뇌를 함유하고 있음을 뜻한다고 한다. 조장나무와 털조장나무는 관목이지만 녹나무는 높이 30m에 지름 3m까지 자라는 거목이어서 과연 동량지재가 될 만 하다. 우리나라에는 천연기념물 제162호로 지정되어 있는 제주도 서귀포시 도순리의 녹나무 자생지 군락에서 가장 큰 나무가 높이 15m에 지름 2.1m 가량이라고 한다. 몇 해 전 소목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친구의 목재 창고를 방문했을 때 본 수입산 ‘캄포’는 큰 식탁을 만들 수 있을 정도의 굉장히 큰 나무였다.


<2020. 6. 19. 끝>


* 털조장나무 <한국의 나무>

** 子墨子見王曰, … 荊有長松文梓 楩柟豫章 宋無長木 此猶錦繡之與短褐也 - 묵자

*** 편楩은 중국 남방의 큰 나무 이름이라고 하는데 정확히 무슨 나무인지는 모르겠다. 남柟은 남枏, 남楠과 같은데 중국명 남목楠木(Phoebe zhennan S. K. Lee & F. N. Wei), 혹은 전남滇楠(Phoebe nanmu (Oliv.) Gamble)이다.

**** 釣樟, 烏樟 棆 枕 豫 時珍曰 樟有大小二種 紫淡二色 此即樟之小者 … 豫即别錄所謂釣樟者也根似烏藥香 故又名烏樟. 樟, 時珍曰 其木理多文章 故謂之樟 木高丈餘 小葉似楠而尖長 背有黃赤茸毛 四時不凋 夏開細花 結小子 木大者數抱 肌理細而錯縱有文 宜於雕刻 氣甚芬烈 豫樟乃二木 名一類二種也 豫卽釣樟. 본초강목

***** 櫲樟者 木之大而材之美者也 雨暘之所煦濡 霜雪之所振撼 鋪根立柢 七年然後 始分其莖與葉也 夫木之鋪根立柢也 十圍引五圍 五圍引二圍 二圍引如椽 如椽引如管 如管引如矢… 今吾子 未甞究求其根柢之深且固。惟惑其樹之茂而材之巨也 子之惑將滋甚而不止也已 - 瓛齋集 蘇老泉閉戶讀書. (한국고전번역원 한국문집번역총서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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