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권경인 May 07. 2022

서로 도우면서 함께 성장하는 봉마상장蓬麻相長의 봉蓬은?

민망초(비봉飛蓬)와 산흰쑥(봉호蓬蒿)

        “나는 공과 함께 형설螢雪로 공부했으므로 사귄 정이 독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속으로 가만히, 저 삼밭에 난 쑥대처럼 서로 도우면서 함께 성장함을 기뻐하였다.”*


이 구절은 몇 해 전에 내가 정성을 기울여 읽고 번역했던, 조고祖考 님의 문집 <경와유고敬窩遺稿>의 서문에서 인용한 것인데, 이 서문은 선친께서 안동 도산 출신의 교육자 이국원李國源(1919~1993) 선생에게 부탁하여 받은 글이다. 나는 이 글에서 봉마蓬麻, 즉 삼밭에 난 쑥이라는 표현을 처음 만났다. 이 표현의 출전은 순자荀子 권학勸學 편인데,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 문장 전체를 인용해본다.


“쑥(蓬)이 삼(麻) 가운데 자라면 붙들어주지 않아도 곧게 자란다. 구릿대(蘭槐)의 뿌리가 백지白芷 이다. 그렇지만 백지를 오줌에 담그면 군자도 가까이 하지 않고 서민들도 먹지 않는다.  이것은 그 질이 나쁘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을 담근 곳 때문이다. 그러므로 군자는 마을을 잘 가려서 거처하고, 반드시 훌륭한 선비에게 나아가 교유한다. 이는 사악하고 편벽됨을 막고 중정中正에 가까이 가기 위함이다.”**


쑥, 2020.10.17 남한산성


어린 시절 자란 산골 동네에는 쑥이 흔했고, 삼(麻)도 길렀다. 삼대를 삶아 껍질을 벗긴 후 남은 길고 하얀 삼대 더미가 어렴풋이 기억난다. 이 글을 해석하면서는 이 삼밭에서 쑥이 쑥쑥 곧게 자라는 광경을 떠올렸다.


봉蓬이 들어간 표현을 더 살펴보면, 머리털이 쑥대처럼 헙수룩하고 흐트러진 모습을 가리키는 봉두난발蓬頭亂髮, 옛날 중국에서 남자가 태어나면 뽕나무로 만든 활로 쑥대로 만든 살을 천지 사방에 쏘아 큰 뜻을 이루기를 빌던 풍속에서 유래하여 남자가 큰 뜻을 세움을 이르는 상호봉시桑弧蓬矢 등이 있다. 이러한 표현들에서 봉蓬은 대개 ‘쑥’이나 ‘쑥대’로 이해하며, 특히 봉두蓬頭를 ‘쑥대머리’라고 한다. 호기심이 생겼다. 쑥을 표현하는 한자로는 단군신화에 나오는 쑥을 가리키는 애艾도 있고, 또 사철쑥을 가리키는 인진호茵蔯蒿의 호蒿도 있는데, 과연 봉蓬은 또 어떤 종류의 쑥이란 말인가? 아니면 일반적인 쑥류의 대궁이나 줄기를 봉蓬이라고 할까?


개망초 (좌) 2019.6.8 성남, (우) 2020.11.21 남한산성


봉蓬은 <시경>과 <초사>에 실려있는 식물로, <시경식물도감>은 현대 중국명 비봉飛蓬(Erigeron acer L.)으로 소개하고 있는데, 비봉飛蓬은 우리가 민망초(Erigeron acris L.)로 부르는 개망초속 식물로 추정한다. <식물의 한자어원사전>도 봉蓬을 중국명 비봉飛蓬으로 보고 있다. 단, 일본에서는 Artemisia princeps, 즉 쑥(Artemisia indica Willd)으로 보고 있어서, 우리나라에서 쑥이라고 하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중약대사전>에는 봉蓬은 실려있지 않고, 대신 봉호蓬蒿는 중국명 백호白蒿(Artemisia sieversiana Ehrh. ex Willd)와 동호茼蒿(Chrysanthemum coronarium L. var. spatiosum Bailey)의 이명으로 나온다. 백호白蒿는 우리가 산흰쑥이라고 부르는 쑥류이고, 동호茼蒿 는 식용으로 재배하는 쑥갓을 가리킨다. 이러한 중국과 일본의 연구서의 해설에 따르면, 봉蓬은 개망초속의 민망초류나 봉호蓬蒿, 즉 산흰쑥류로 일단 이해할 수 있다.


이제 우리나라 문헌에서 봉蓬에 대한 이해를 추적해본다. 조선 중기 우리말의 보고인 <훈몽자회> 호蒿에 대해 ”다북쑥호 (중국)속칭 호초蒿草,  봉호蓬蒿,  청호靑蒿 배양으로 설명하고, 봉蓬에 대해서도 “다복쑥봉이라고 했다. 참고로 중국의 봉호蓬蒿는 산흰쑥이고 청호靑蒿는 사철쑥임을 고려하면, 훈몽자회에서는 봉蓬을 다복쑥이라고 하여 호蒿나 봉호蓬蒿와 같은 식물로 이해했고, 산흰쑥이나 사철쑥류를 가리킨 것이라고 추정해볼  있다. <전운옥편>에서도 “蓬봉, 호蒿이다라고 하여 <훈몽자회> 마찬가지로 봉蓬과 호蒿를 같은 류로 이해했다.


(좌) 쑥, (우) 참쑥, 2021.11.27 홍릉수목원
(좌) 뺑쑥, 2020.10.17 남한산성, (우) 사철쑥, 2021.11.27 홍릉수목원


지석영 선생의 <자전석요>도 “蓬봉, 蒿이다. 다복쑥봉”라고 했고, 일제강점기의 <한선문신옥편>과, <한일선신옥편>도 “蓬 다복쑥 봉, 蒿이다.”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설명은 현대까지 이어지고 있다. 한글학회 지은 <큰사전, 1947>도 봉호蓬蒿를 ‘다북쑥’이라고 하고, 다북쑥을 설명하면서 “Artemisia vulgaris L. var indica Maxim.”이라는 학명을 부기하고 있는데, 이 학명은 <조선식물향명집>에서 ‘쑥’이라고 명명했던 것이다. 즉, <큰사전>에서는 다복쑥과 쑥을 같은 것으로 본 셈인데, 이는 일본에서 봉蓬을 쑥으로 보는 것과 일맥상통하는데, 아마도 당시 식물학자들의 견해가 반영된 것일 터이다. 참고로, 민중서림 <한한대자전>도 “蓬 쑥봉”이라고 하고, 봉호蓬蒿에 대해서도 ‘쑥’이라고 하여, 다복쑥과 쑥을 동일시하고 있는 점이다. 이런 사정을 감안하면, 우리나라에서는 봉蓬을 ‘쑥’ 류로 이해한 점은 분명하다고 하겠다.


하지만 <물명고>를 저술한 유희 선생은 봉蓬을 쑥 류로 이해하는데 의문을 품었다. <물명고>의 봉호蓬蒿에 대한 설명은 상당히 복잡하다. “잎은 흩어져 나는데(刪省), 바람을 만나면 뿌리가 뽑혀 돌아눕는다. 이 주석에 의거한다면 마땅히 ‘다복쑥’이다. 또한, 백호白蒿와 더불어 같은 것이라고 하면, 지금의 ‘샹쑥’과 비슷하다. 그러나 시주詩註에서 날고 도는 것은 그 꽃의 솜이 모여 한 덩어리를 이룬 것이라고 했다. 이러한 (주석의) 의미에 의거하면, 무슨 식물인지 모르겠다.”*** 결국, 유희 선생은 봉호에 대해 ‘다복쑥’이나 ‘샹쑥’일지도 모르지만 이 다복쑥과 샹쑥은 시경 주석의 내용과 일치하지 않으므로 모르겠다고 한 것이다.


민망초 (Erigeron acris), 인터넷자료 - 열매 모양이 '솜이 모여 한 덩어리를 이룬 것' 같은 봉두난발을 표현하는 듯 하다.


<물명고>의 시주詩註는 시경詩經 위풍衛風의 시 ‘임께선 (伯兮)’의 “머리가 흩날리는 봉蓬 같네 (首如飛蓬)에 대한 <시경집전詩經集傳>의 “봉蓬, 풀 이름이다. 그 꽃은 유서柳絮(버들개지, 버드나무 씨앗)와 같다. 모여서 이리저리 흩날린다.”****는 주석을 말한다. 특기할 점은 다북쑥이든 산흰쑥이든 쑥류의 꽃과 열매는 솜처럼 날리는 버드나무 씨앗과는 확연히 다르다는 점이다. 이 <시경집전>의 해석은 봉蓬을 비봉飛蓬(Erigeron acer L.), 즉 우리가 민망초(Erigeron acris L.)로 부르는 개망초속 식물로 이해하고 있다고 추정된다.


농사를 짖지 않는 쑥대밭 모습, 2023.7.8 횡성 - 경작하지 않는 밭에 개망초와 쑥류가 자라고 있다. 개망초가 먼저 자리잡고, 여러해 지나면 쑥류가 우점종이 될까? 망초대밭


고사성어의 식물을 연구한 반부준의 <성어식물도감>에서도 상호봉시桑弧蓬矢, 봉생마중蓬生麻中, 봉두구면蓬頭垢面 등의 봉蓬을 민망초(Erigeron acris L. 비봉飛蓬)로 해설하고 있는 점으로 보아도, 중국에서 봉蓬은 쑥으로 이해하지 않는 것은 틀림없는 듯하다. 꽃이 지고 난 후 민망초 씨앗이 여문 모습을 인터넷에서 찾아보면, 정말로 헙수룩한 머리털 모양이다. 하지만 “머리털이 쑥대강이같이 헙수룩”한 것을 뜻하는 사자성어 봉두난발蓬頭亂髮을 ‘민망초 열매’처럼 흐트러진 머리라고 해설하면 어색하긴 하다. 사실 나는 아직 민망초를 만나지 못했다. <대한식물도감>에 의하면, 민망초는 ‘금강산 이북에서 자라는 월년초’라고 했으므로, 중부지방 이남에서는 만나기 어렵다. 하지만 언젠가는 들판에서 봉두난발한 민망초를 만날 수 있을 것이라 희망해본다. 이제 민망초를 읊은 <시경> 위풍衛風의 시 ‘임께선 (伯兮)’ 을 감상한다.


伯兮朅兮          임께선 용감하셔서

邦之桀兮          이 나라의 호걸이라네.

伯也執殳          임 께선 긴 창을 들고

爲王前驅          임금의 선봉 되셨네


自伯之東          임께서 동쪽으로 가신 뒤부터

首如飛蓬          내 머리 흩날리는 민망초 열매 같아,

豈無膏沐          머리 감을 기름이야 어찌 없을까만

誰適為容          내 누굴 위해 단장하겠나?


돌이켜보면 큰 키로는 자라지 못했지만 나도 나름대로 학창시절 봉마상장을 같이한 훌륭한 친구들이 많이 있었다. 최근에도 식물애호가들과 함께 식물을 감상하면서 이름을 알아가고 있다. 식물애호가 친구들이 없었다면 아마도 내 식물에 대한 관심은 관념에 머물렀을 것이고, 모람도 목서도 피나무도 박달나무도 식별하지 못했을 것이다. 작든 크던 나와 인연을 맺고 배움의 길을 함께 했던 친구들이 고맙다.


<끝 2022.1.16>


*不侫 共與公 螢雪同業 交情不爲不篤 而竊竊然 自喜其蓬麻之相長矣 - 敬窩遺稿 서문

**蓬生麻中 不扶而直 蘭槐之根 是為芷 其漸之滫 君子不近 庶人不服 其質非不美也 所漸者然也 故君子居必擇鄉 遊必就士 所以防邪僻而近中正也 – 荀子 勸學編

***蓬蒿(봉호) 葉散生  遇風則拔根旋轉 若据此註 當曰 다복쑥. 又與白蒿合一 則似今之 샹쑥. 然詩註則以飛轉者爲其華之絮 聚成一團者 若据此義 未知何物 –물명고

**** 蓬 草名 其華如柳絮 聚而飛如亂發也 – 시경집전

표지사진: 민망초 - 인터넷자료


이전 07화 옛 글 속의 억새와 <훈몽자회>의 '달 뎍(荻)'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