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불피해지 자연림복원을 위한 <산과 자연의 친구들> 여름생태학교 참가기념
가뭄으로 건조했던 올 봄, 3월 22일 의성에서 실화로 시작된 산불이 순식간에 바람을 타고 비화飛火가 되어 안동, 청송을 지나 26일 새벽에는 영덕의 해안 마을까지 불태웠을 때의 공포심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24일 산불이 안동 길안으로 확산하고 3월 25일에는 천년 고찰 고운사가 불탔다는 비보를 들었을 때에는 공포심에 더해, 식물애호가로서 내 마음 속에 슬픔과 분노가 일어났다. 다음은 그때 나와 같은 심정이었던 페친 한분의 포스팅을 공유하면서 적었던 메모이다.
“제 고향 안동을 포함한 경북 지방이 초현실적인 산불 화마에 휩싸인 요 며칠 마음의 불안과 어지러움을 떨쳐버릴 수 없습니다. 저는 식물애호가로서 소나무 위주의 조림 정책을 반대하고 있습니다. 소나무숲은 산불에 취약할 뿐만 아니라, 소나무 조림을 위해 엄청난 돈을 들여서 참나무 중심의 자연림을 제거하여 자연상태의 식생을 파괴하기 때문입니다. 하루 속히 비가 내려 불길이 잡히길 기원하며, 산불 피해 복구시, 제발 자연림 생태로 복구되어 산불에 내성이 강한 숲이 내 고향 안동에 만들어지길 희망합니다. 지역의 시장, 국회의원 등 힘 있는 공직자들이 반복되는 산불 예방을 위해 인위적인 침엽수 조림을 막아주시면 좋겠습니다. 이것도 시민 운동을 해야 하나요?” (3.26)
산림 분야 종사자도 아니고, 관련 정책에 영향을 미칠 수도 없는 한 시민으로서 안타까운 마음 뿐이었다. 엄청난 인적, 물적 피해를 남기고 3월 28일 산불이 진화된 후에도, 산불 피해지 복원은 주로 자연의 힘에 맡겨야 한다는 페친의 포스팅을 몇 차례 더 내 친구들에게 공유했다.
“이제 한 달포 전 며칠간 마음의 지옥이었던 경북 산불의 피해 복원이 논의되고 있는 듯 합니다. 페친이신 남준기 내일신문 환경전문 객원기자님의 포스팅을 공유합니다. 저도 산불 피해를 입으신 피해 주민의 생활 복구에 최대한 자원을 지원하고, 산림 복원은 자연의 힘에 맡기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관광지나 경관용으로 일부 송림을 복원하는 것이야 좋겠지만 광대한 피해 지역을 인공조림을 통해 복원하는 것은 비용도 많이 들지만 향후 산불 예방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많은 전문가들의 의견이 있습니다.” (4.22)
산불이 한창 기승을 부릴 때 적었던, “지역의 시장, 국회의원 등 힘 있는 공직자들이 반복되는 산불 예방을 위해 인위적인 침엽수 조림을 막아주시면 좋겠습니다. 이것도 시민 운동을 해야 하나요?”라는 발언은 그 후에도 오랫동안 내 마음에 짐으로 자리잡았다. 그래서 환경운동 시민운동단체 ‘산과 자연의 친구들’에서 기후위기와 에너지&양수발전 및 산불&복원방향을 주제로 8월 14~17일 4일간 청년생태학교 “이어달림’을 개최한다는 소식을 7월 중순에 접하자 마자 선뜻 참가신청을 했다. 항상 그렇듯이 시간은 쏜살같이 흘렀다. 생태학교 일정이 코앞에 닥쳤을 때에는 행사 기간 중 비 소식이 있어서 살짝 걱정스럽기도 했다. 그렇지만 8월 13일 저녁 안동 친구들 몇명이 저녁을 먹는 자리에서 다시 산불피해지 자연복원 주제를 조심스럽게 꺼내면서 시민단체의 산불피해현장 방문에 동참할 거라고 했더니, 몇 몇 친구들이 동조를 해 주었다. 안동 친구들은 대개 전통의 영향 때문인지 소나무를 많이 좋아한다. 물론 나도 소나무를 좋아하지만, 환경이 변하고 있어서 인공으로 소나무 단순림을 조성하는 것은 피하자는 뜻이라고 했다.
빗 속에 시작된 생태학교는 꽉 짜여진 일정대로 운영진의 노고로 잘 진행되었다. 14일 아침 8시 경에 양수역에서 출발하여 오전에는 홍천 풍천리 마을회관에서 양수발전소 반대운동을 하시는 목사님의 강연을 듣고, 하부댐 건설을 가정하여 도로를 이설하는 공사현장을 예정지를 들러보았다. 오후에는 현재 운용 중인 양양 양수발전소 상부댐에 올라 진동호 둘레의 환경과 식물상을 산림전문가이신 강릉원주대학교 생물학과 이규송 교수님의 안내로 둘러보았다. 저녁에는 <기후위기 시대의 숲과 산불 그리고 복원 – 자연기반 해법의 가능성과 도전>이라는 주제로 이 교수님의 열띤 강연을 듣고 많이 배웠고,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했다.*
광복80주년 기념일인 8월 15일은 아침부터 부지런히 움직여서 오전에 동해휴게소 전망대와 배롱나무 꽃이 반발한 울진의 도화(道花)동산에서 산불피해지역의 수목을 모두 벌채한 후 다시 나무를 심은 현장을 보았다. 청송 휴게소에 잠시 들러 주변의 불에 탄 숲 모습을 보고, 지난 봄 나를 공포심에 떨게 했던 안동 임하면 추목리 화재 현장을 방문하여 녹색당 관계자의 설명을 들었다. 마지막으로 의성 고운사의 불탄 현장과 주변의 숲을 보는 것으로 긴 하루 일정을 마치고 문경에 자리잡은 숙소로 어두워져 이동했다.
식물애호가의 눈길은 참혹했던 피해지를 돌아보는 중에도 온갖 식물들을 향했다. 추목리 현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마을 이름이 추목楸木으로 추정되니 가래나무나 안동에서 추자나무라고 부르는 호도나무가 있을까 기웃거리기도 하고, 들판에 자라는 콩이며, 팥, 고추, 탐스럽게 익은 자두에 눈길이 주기도 했다. 안내하시는 분이 추목리 노인정 마당에서, 산불 피해자들의 생활을 설명할 때 즈음인가, 내 눈길은 한 곳에 꽃혀버렸다. 카메라를 들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집은 무너지고 겨우 남아있는 담장 옆 길에 어저귀 한 촉이 노오란 꽃을 피우고 있지 않은가?
어저귀는 내가 몇 해 전부터 식물 답사를 다닐 때 마다 오매불망 보고팠던 식물이었다. 나는 2024년 여름에 “<앙엽기盎葉記>의 황규黃葵 재해석과 해바라기 도입시기에 대하여”라는 글을 써서 문헌과해석에 발표하고 기고한 적이 있다. 글의 핵심은 우리나라에 해바라기는 최소한 이덕무(1741~1793)의 청년 시절인 1750년대에는 도입되었을 것이라고 추정하는 것인데, 이 때 핵심 역할을 한 식물이 어저귀였다.** 그런데 그 소중한 어저귀를 2017년인가 어느 해 겨울 강원도에서 열매를 달고 있는 모습을 본 후, 8년여만에 추목리 산불 피해지 현장에서 꽃이 핀 모습을 본 것이다. 아마도 산불 피해지 복원을 자연의 힘에 맡기자는 시민 운동에 작은 마음을 보탠 데 대한 하늘의 선물이 아닌가 느껴졌다. 기쁜 마음으로, 내가 쓴 해바라기 글에서 어저귀 관련 구절을 인용한다.
“경(莔)은 경(顈)·경(檾)과 같은데, 우리나라 속명은 어저귀(於作爲)이다. 예서(禮書)에서 이른바 ‘칡 없는 고을에는 경(顈)을 쓴다.’라고 한 것이다. 우리나라 곳곳에 있는데도 그것이 민생에 유용한 것인 줄을 모른다.”라고 설명했다. <강희자전>에서는 <당본초(唐本草)>를 인용하여 “경檾, 경莔, 경마莔麻로 쓴다. 일명 백마白麻이다”라고 했다. <조선어사전>에도, “어저귀[名][植] 莔麻いちび(莔麻, 白麻).”가 나온다. 이를 통해 이덕무의 글에서 경(莔)은 어저귀로 해석해야 함을 알 수 있다. 어저귀(Abutilon theophrasti)는 인디아 원산이며, 섬유식물로 한 때 재배했으나 들로 퍼져 나가 우리나라에서 야생화된 일년초이다. 경마(莔麻), 혹은 백마(白麻)라고도 하는데 잎 모양은 잎자루가 길고 둥근 심장형으로 해바라기 잎과 유사하다.“***
뜻깊은 광복절날 동해에서 의성까지 산불 현장을 돌아본 감상을 뭐라고 이야기해야 하나? 산불 피해 현장은 참혹했으나, 산불 피해지 복원에서는 인공보다 자연의 힘이 더 크고 효율적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하면 될까? 4달여 시간의 힘으로 새카맣게 불탄 키큰 나무들 아래엔 벌써 초록 융단이 깔려 있었다. 소나무들은 불탄 모습 그대로이지만 참나무들은 다시 새 잎과 가지를 뻗으며 삶으로 복귀하고 있었다. 자연의 힘으로 숲은 되살아날 것이라는 희망과 확신이 마음 속에 자리잡았다. 추목리 길 가에 핀 어저귀 노란 꽃은 그 희망과 확신의 상징인 듯 여겨졌다. 산불로 탄 피해지역을 자연림 중심으로 복원하자는 시민운동에 적어도 한 번은 참여해야 한다는, 마음의 빚을 갚는 심정으로 참석한 청년생태학교는 한 식물애호가가 오랫동안 보고싶었던 어저귀 한 촉을 꽃이 핀 모습으로 선물처럼 안겨주었다.
(끝)
* 이규송 교수님의 강연 및 청년생태학교 참여를 통해 배운 점은,
- 숲가꾸기가 필요한 곳도 있겠지만, 인위적으로 자연 환경을 광범위하게 훼손할 수 있는 숲가꾸기 등이 기업의 그린워싱(기업이 친환경으로 허위 이미지 만드는 행위)에 이용되는 것은 막아야 하며,
- 현재 개인 산주의 산이 불에 탔을 때 산주의 돈을 쓰지 않고도 무상으로 전체 벌채 후 재조림할 수 있는 정부정책은 중단해야 함. (개인산주가 벌채를 하면, 새로 조림하는 비용을 정부가 세금으로 지원해주고 있음. 이 제도를 활용하여 업자들이 정부지원금으로 받을 수 있는 조림 비용과 벌채목 판매(?) 수익으로, 산주의 개인 투자 없이 벌채 및 조림을 할 수 있다고 함. 개인 소유 산지의 조림 비용 지원 정책은 산림녹화가 완료된 후에는 폐기되었어야 할 정책임. 이 때문에 남벌 후 재식목 행위가 계속 일어남)
- 천문학적 비용을 써서 인공조림을 해도 복원에 15-20년 걸리는데, 만약 소나무 단순림으로 조림하면 또 산불 피해를 겪을 가능성 큼. 예: 울진, 조림한 지역에 다시 산불, 다시 벌채후 조림
- 자연의 힘에 맡기면 활엽수 위주이지만 침엽수도 산등성이 등에 잘 자라므로, 혼합림이 15~20년에 걸쳐 이루어지고 이 혼합림이 산불에 훤씬 강함
- 고속도로나 주요 도로를 산불확산 저지선으로 사용하기 위해, 또 국가 주요 시설 (송전로 등)의 보호를 위해, 도로와 주요 시설 반경 1Km정도 내에는 반드시 자연 재생이나 활엽수 조림이 필요함. 침엽수림은 경관용으로 꼭 필요한 곳에만 조림.
** 이덕무는 앙엽기에서 해바라기 황규黃葵의 잎이 경莔 잎과 비슷하다고 했는데, 경莔을 대개 ‘패모’로 해석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나는 이덕무의 다른 글에서 “경莔은 경顈ㆍ경檾과 같은데, 우리나라 속명은 어저귀(於作爲)이다.”라는 구절을 바탕으로 황규 잎이 어저귀 잎과 비슷하다고 한 것으로 보았다. 옛글에서 해바라기로 불릴 수 있는 접시꽃, 닥풀, 해바라기 중에서 어저귀 잎은 단연 해바라기와 닮았으므로, 이덕무가 황규에 대한 글을 쓸 때 이미 해바라기가 우리나라에 도입되었음을 주장하는 글이다. (참고로 초의선사가 1812년에 그린 정약용의 다산초당도에 해바라기가 있다고 한다. 언젠가 이 그림 실물도 만나고 싶다.) 또한 중국식물지에서 어저귀는 '苘麻'로 莔이 아니라 苘자를 쓰고 있다. 苘은 '경'으로 발음되고 檾과같은 뜻의 글자라고 <강희자전>에 나온다. 莔은 '맹'으로 발음되고 패모를 뜻한다. 그러므로 본디 苘이 어저귀를 뜻하는 글자이나, 莔과 글자 모양이 비슷하여, 莔도 어저귀를 뜻하는 글자로 혼용된 듯 하다.
*** <문헌과 해석> 통권96호 (2024년 여름호), p.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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