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nninghamia lanceolata
졸저 『옛글의 나무를 찾아서』에는 ‘근대에 조림된 남부 지방의 삼나무, 그리고 잎갈나무 – 삼杉’이라는 글이 실려있다. 옛 글에서 삼杉이 뜻하는 나무가 무엇인지 검토한 글이다. 근대에 일본으로부터 도입된 ‘삼나무’무는 학명이 Cryptomeria japonica이고, 원산지가 일본이다. 일본명은 ‘스기(スギ)’이며 한자어 ‘삼杉’을 쓴다. 그러므로 ‘삼나무’라는 이름은 일본 이름에서 유래한다고 할 수 있다. 조선시대 문헌에서 우리나라의 나무를 지칭할 때에도 사용된 ‘삼杉’은 주로 잎갈나무(Larix gmelinii)를 뜻한다. 중국 고전에서 ‘삼杉’은 중국 원산의 Cunninghamia lanceolata로, 우리나라에는 추천명 ‘넓은잎삼나무’로 도입되어 있다. 즉 한자문화권인 동양 삼국에서 삼杉으로 표기한 나무가 모두 달랐던 것인데, 이는 중국에서 한자로 표기한 나무가 우리나라나 일본에 자생하지 않을 경우, 비슷한 나무에 그 글자를 사용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러한 내용을 중심으로 ‘삼杉’에 대한 글을 쓸 당시에 나는 삼나무와 잎갈나무는 직접 찾아본 후였다. 그러나 중국의 ‘삼杉’인 ‘넓은잎삼나무’는 보지 못한 상태였다. 넓은잎삼나무가 무척 보고싶었고, 우리나라에 도입되었다는 정보는 접했지만 어디에 자라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그러다가 2023년 3월에 포천 국립수목원 온실에서 어린 ‘넓은잎삼나무’를 처음으로 만났다. 이로써 동양 3국에서 ‘삼杉’으로 표기한 나무 3종을 모두 실견하여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금년 여름 휴가차 전주로 가족여행을 계획할 때 나는 말로만 들어왔던 전주수목원을 식물애호가로서 방문 희망지 목록에 넣었다. 날씨가 너무 무더워 가족들에게 함께 가자고 권하기가 미안하여, 여행 둘째 날 오전 일찍 혼자 방문했다. 한국도로공사가 운영하는 전주수목원은 시민들에게 무료로 개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구석구석 잘 관리되고 있었다. 오전이라 더위가 심하지는 않을 것이라 예상했지만, 조금만 걸으면 땀이 나서 오래 돌아다니기도 힘든 날씨였다. 하지만 잘 가꾸어진 식물원이라 식물애호가인 나는 에게 수목원은 언제 가도 좋은 곳이다. 솔비나무 꽃을 처음 감상했고, 탐스러운 사람주나무 열매도 만났다. 멀구슬나무가 전주에도 자란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고, 흰색 꽃이 피는 진짜 어리연꽃도 처음으로 만날 수 있었다. 물무궁화 혹은 단풍잎부용으로 불리는 Hibiscus coccineus와 털모과로 불리는 Cydonia oblonga도 처음이었다. Cydonia oblonga의 중국명은 ‘올발榅桲’이다.
이렇게 더위도 잊은 채 수목원 곳곳을 빠른 걸음으로 돌아다녔다. 그러다가 뜻밖에 “넓은잎삼나무 Cunninghamia lanceolata (lamb.) Hook. 낙우송과”라는 팻말을 단 침엽수 교목 몇 그루를 만났다. 아니 넓은잎삼나무가 야외에서도 자라고 있다니! 중부지방에 자리잡은 국립수목원은 추위 때문에 온실에서 키우고 있었지만, 넓은잎삼나무는 우리나라 남부 지방에서도 잘 자라는 나무였던 것이다. 국립수목원 온실에서 넓은잎삼나무를 처음으로 봤을 때 나는 지레짐작으로 넓은잎삼나무가 우리나라에 도입되긴 했지만 주로 온실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었다. 아마도 당시에 전주수목원에 넓은잎삼나무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책에 멋진 사진을 싣기 위해서라도 벌써 방문했을 것이다.
아무튼, 넓은잎삼나무가 크게 자라고 있는 모습을 코앞에서 보는 것은 한마디로 옛글의 나무를 찾아 헤매이는 나에겐 감동적이었다. 잎 모양은 어느정도 삼나무와 비슷했지만 구과 모습은 잎갈나무와 비슷해 보였다. 한참동안 침엽 모양, 수형, 수피, 구과, 구화수 등을 사진으로 남겼지만, 조금의 아쉬움을 가지고 넒은잎삼나무를 떠났다. <중국식물지>에 의하면 넓은잎삼나무의 중국명은 삼목杉木, 삼杉, 자삼刺杉, 정삼正杉, 사목沙木 등이다 키는 30미터까지 자라는 큰 교목으로 양자강 유역, 해발 700~2500m에 자란다.
지금 전주수목원의 넓은잎삼나무는 키가 10여 미터 정도 되어 보였다. 아마도 수십년은 더 자라야 키가 30m에 이르는 거목이 될 것이다. 그 때까지 수목원이 잘 운영되길 기원하면서, 『옛글의 나무를 찾아서』를 꺼내어 넓은잎삼나무 ‘杉’이 등장하는 두보의 시 ‘영회고적’을 다시한번 읽어본다.**
촉나라 임금 유비가 오나라 치려고 친히 삼협에 왔다가
돌아가신 해에도 영안궁에 있었네.
쓸쓸한 산 속에서 화려한 임금 행차 생각하니
궁전은 허무하게 들판의 절이 되었구나.
옛 사당의 삼나무**와 소나무에 학이 둥지를 틀고
계절마다 지내는 제사에 촌로들이 달려가네.
제갈량의 사당도 그 곁에 있으니
임금과 신하가 한 몸 되어 제사도 함께 받는구나.
蜀主征吳幸三峽
崩年亦在永安宮
翠華想像空山里
玉殿虛無野寺中
古廟杉松巢水鶴
歲時伏臘走村翁
武侯祠屋常鄰近
一體君臣祭祀同
두보 시의 杉은 분명히 ‘넓은잎삼나무’일 것이지만, 시어임을 감안하여 ‘삼나무’로 번역했었다. 개항 후 일본에서 삼나무가 도입되기 전, 우리 조상들은 중국 고전에 나오는 杉을 진짜 ‘삼나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기에 정약용은 <아언각비>에서 우리나라 문인들이 잎갈나무를 ‘삼杉’으로 표기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일갈했던 것이다. 정약용 선생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는 일본을 통해 강압적으로 반쪽짜리 근대화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삼나무’라는 이름도 중국의 ‘삼杉’이 아니라 일본의 ‘삼杉’, ‘스기’가 차지하게 되었으니 역사의 아이러니다. 하지만 엄격한 규칙이 적용되는 학명(scientific name)이 아니라면 나무 이름은 참과 거짓의 문제가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사용하는가가 중요할 것이다.
<끝>
*『옛글의 나무를 찾아서』 p.138에 국립수목원 온실에서 찍은 넓은잎삼나무 사진이 실려있다.
**앞의 책, p.1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