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나라 새 미술’ 전시회 관람 기념
국립중앙박물관에서 6월 10일 오픈한 <새나라 새미술> 특별전시회는 페북의 화제였다.전시회에 다녀오신 분들의 갖가지 감상평이 이어졌는데 한결같이 호평이었다. 조선시대 미술사를 잘 알지 못하는 나도 호기심이 생겨 6월 하순경 (6.25) 서울 나들이 겸 다녀왔다. 과연 도자기며 각종 문헌, 서화, 불상과 불교미술 등 조선 초기 예술과 문화를 집대성한 듯한 전시였다. 이현보 초상과 <애일당구경별록>의 ‘생일가’도 있었는데, 고향에서 세연이 있는 영천이씨 농암종택에서 출품한 것이었다. 지금까지 사진으로만 보아왔던 터라, 이현보 초상화를 실물로 보고 국문학사에 이름이 올라 있는 시조를 친필로 보니 느낌이 남달랐다.
서화가 전시되어 있는 곳에서, 특히 식물애호가인 내 눈길을 끈 것은 ‘궁중 정원의 신기한 꽃과 새’라는 제목으로 전시된 ‘화조도花鳥圖’ 네 폭이었다. 신잠申潛(1491~1554)이 그린 것으로 전해지는 그림이라는 표시와 함께, “문인화가 신잠이 그린 네 폭 그림으로, 원래는 병풍이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각 폭마다 각종 동물과 꽃이 어우러져 있습니다. 1폭에는 매화와 동백꽃이 핀 가지 위에 동박새 한 쌍이 앉아 있습니다. 2폭에는 태호석과 장미를 배경으로 연못에서 오리 한 쌍이 노닙니다. 3폭은 꽃가지 위에 앉은 수대조綏帶鳥로 보이는 새 한 쌍과 그 아래에 토끼 한 쌍이 등장합니다. 4폭에서는 여문 조 이삭과 들국화가 가을 분위기를 물씬 풍깁니다. 신잠은 신숙주의 증손으로 태어나 관료로 활동했으나, 기묘사화己卯士禍로 유배를 당한 뒤 서화에 전념하게 되었습니다.”*라는 설명이 있었다.
1폭의 꽃은 매화와 동백, 2폭은 장미, 4폭은 조와 들국화로 화훼식물을 특정하고 있는데 반해 3폭은 “꽃가지”라고 설명하여 어떤 꽃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신잠의 화조도는 처음 보는 것이어서 더 흥미롭게 그림으로 그려진 500년 전 식물을 살펴보았다. 그림은 1폭의 이른 봄 풍경에서 시작하여 계절의 흐름에 따라 4폭의 가을 풍경까지 묘사한 듯했다. 설명문에 이름이 기재되어 있지 않지만, 3폭은 산사나무 열매와 부용 꽃을 묘사하고 있는 듯했다.
산사나무(Crataegus pinnatifida)는 우리나라 전국의 산지와 중국, 러시아 등지에 분포하는 낙엽 소교목이다. 삼각상 난형 잎은 끝이 뾰족하고 가장자리에는 3~5쌍의 결각과 불규칙한 겹톱니가 있고 잎자루는 2~6cm이다. 꽃은 5~6월에 피며, 1~2.5cm의 편구형 또는 구형 열매는 9~10월에 적색으로 익는다. 열매 상단부에 꽃받침열편이 끝까지 남아있는 것이 특징 중 하나이다. 화조도 제3폭에서 2마리 새가 앉아 있는 나무의 붉은 열매와 잎은 산사나무열매와 잎을 그린 것으로 보인다. 산사나무의 한자명은 산사(山査, 山楂, 山樝), 산리홍山裏紅 등이다.
부용芙蓉(Hibiscus mutabilis)은 중국 원산으로 우리나라에는 제주도와 남부지방에 식재한다. 오각형 또는 둥근 모양 잎은 상단부가 3~7갈래로 갈래지며, 꽃은 8~10월에 핀다. 홑꽃도 있고 겹꽃도 있으며, 나는 제주도와 완도 등지에서 주로 홑꽃 부용을 감상했다. 활짝 핀 연꽃도 부용芙蓉이라고 하므로, 일부에서는 목부용이라고 부른다. 화조도 3폭의 바위 옆 그림은 잎과 꽃 모양으로 보아 겹꽃 부용을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목부용 꽃이 피고 산사나무 열매가 익은 시절이니 이 그림은 음력 8~9월의 정경으로 보인다.
산사나무 가지에 앉은 새 2마리와 목부용 꽃 아래 토끼 2마리는 무엇을 상징할까? 신잠은 산사나무 열매 자루를 길게 그려 열매가 더 도드라져 보이게 했다. <물명고>에서는 ‘산사山樝’를 ‘아가외’라고 했다. <동의보감> 탕액편에도 ‘산사자山楂子’를 ‘아가외’라고 했다. 체한 것을 내리는 약재로 쓰인다고 했으니, 산사나무 열매는 상비약으로 준비해야 하는 귀한 열매였을 것이다. <학고집鶴臯集>에 실려있는 김이만金履萬(1683~1758)의 시 ‘산사나무 열매 (山樝子)’를 읊어본다.
點點匀圓滿樹丹 점점이 둥근 열매 나무 가득 붉은데
可憐風味絶甘酸 어여쁜 풍미는 달고 신 맛 뛰어나네
林湖落日歸時路 숲속 호수에 해 저물어 돌아오는 길에
一槖秋香掛馬鞍 한 자루 가을 향이 말 안장에 걸렸네
<끝>
*조선 전기 미술 대전 – 새 나라 새 미술, 2025.6.10. – 8. 31.,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시실 1, 신잠 화조도 전시 설명문.
+산사나무의 가을 (2023.9.23 관악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