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달나무와 단檀 (향토문화의사랑방 안동, 2021년 5/6월호)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교육을 받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단군신화를 알고 있을 것이다. 삼국유사에 실려있는 이 신화는 고조선의 건국 설화와 홍익인간의 이념이 담겨있다. 나는 이 단군檀君의 ‘단檀’을 박달나무(Betula schmidtii Regel)로 오랫동안 이해하고 있었다. 사실 박달나무는 우리나라에 자생하고 있고 널리 알려진 나무이지만 직접 만나기는 쉽지 않다. 공해에 약하고 이식이 어려워 조경용으로는 활용되지 않고 있어서 인가 근처에서는 거의 볼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나무>에 의하면, 박달나무는 자작나무과 낙엽교목으로 우리나라 전국의 산지에 자라며 주로 해발고도 1,000m 이하에 분포한다. 수피는 흑갈색-회갈색이며 오래된 나무의 수피는 두꺼운 조각으로 불규칙하게 벗겨진다.
나는 도감에서만 보던 박달나무를, 2018년 여름에 겨우 감악산에서 직접 만날 수 있었다. 꽤 큰 고목으로 암회색 수피가 꺼칠꺼칠하게 벗겨져 있었고, 하늘을 향해 솟구쳐 있는 길쭉한 과수가 익어가고 있었다. 아마 이전에도 박달나무를 만났을 가능성이 있지만, 신화 속의 나무를 실제 식별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어서 조금은 감격스럽기도 했다.
어느날 <시경식물도감>을 살펴보다가, 중국에서는 위풍魏風 ‘벌단伐檀’의 단檀 등 <시경>에 나오는 단檀을 박달나무가 아니라 느릅나무과의 청단靑檀(Pteroceltis tatarinowii Maxim.)으로 보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坎坎伐檀兮 쾅쾅 단檀 나무를 베어다가,
寘之河之于兮 황하 물가에 내버려 두곤,
河水淸且漣猗 황하 물만 맑게 물놀이 치네.
不稼不穡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건만
胡取禾三百廛兮 어찌 삼백호 세금을 곡식으로 거둬들이며,
不狩不獵 짐승 사냥도 하지 않건만
胡瞻爾庭有縣貆兮 어찌 그대 뜨락엔 담비 걸린게 보이는가?
彼君子兮 참다운 저 군자는
不素餐兮 놀고 먹지 않는다던데.
앞의 시 ‘벌단伐檀’은 이가원 선생이 “청렴한 군자는 등용되지 못하고, 탐욕스런 관리가 일도 안하고서 잘 사는 모순된 모습을 노래한” 것이라고 해설한 시이다. 청단은 중국 황하유역에 자생하는 나무이지만 한반도에는 자생하지 않는다. 갑자기 단군신화의 단檀이 내가 고정관념으로 가지고 있는 박달나무가 아닐 가능성이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흥미가 생겨서 먼저 내가 애용하는 민중서림 <한한대자전>을 찾아보았다. “단檀. (1) 박달나무 단, 자작나무과에 속하는 낙엽교목, (2) 단향목 단, 자단紫檀, 백단白檀 등의 향나무의 총칭. 전단栴檀”*으로 설명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옥편에서 가장 앞에 나오는 해설을 흔히 참고하게 되므로, 내가 이 글자를 박달나무로 이해하게 된 것은 너무나 당연했다.
이제, <시경의> 단檀이 어떤 나무를 가리키는지 더 살펴본다. 단향목檀香木으로 알려진 자단紫檀, 황단黃檀, 백단白檀 등은 모두 열대지방에서 자라는 나무이고, 위魏나라가 있던 황하 유역에는 자라지 않으므로, 이 위풍魏風의 단檀은 황하 유역에도 분포하는 청단靑檀이라는 게 <시경식물도감>의 설명이다. 일본의 <식물의 한자어원사전>에서도 <시경>의 단檀을 청단靑檀(Pteroceltis tatarinowii Maxim.)으로 설명하고 있다. 단 이 글자는 일본에서는 참빗살나무(まゆみ, Euonymus sieboldianus Blume)를 뜻한다고 했다.
우리나라 문헌으로 1527년에 출간된 <훈몽자회>를 찾아보니, 아쉽게도 단檀은 나오지 않는다. 정조 때 간행된 <전운옥편>에는, “단檀은 향목으로 전단栴檀이다. 강인한 나무로 수레 바퀴살에 알맞다”**로 나온다. 그리고, 정약용은 <아언각비雅言覺非>에서, “단檀은 두 종류가 있다. 국풍國風에서 일컬은 ’단檀을 베어서’의 나무 단檀은 굳세고 질긴 나무로서 수레의 바퀴살을 만들 수 있다. 부남扶南, 천축天竺에서 생산되는 전단栴檀, 침단沈檀 같은 것은 별도의 향목香木인데, 백단白檀과 자단紫檀이 있으며, 통틀어 전단栴檀이라고 말한다. … 우리나라 사람들이 느닷없이 겨울에 푸른 만송蔓松(향나무)을 가지고 자단향紫檀香이라고 부르고 이것을 피우며 제사 지내고 환약으로 조제하니 어찌 잘못된 것이 아니겠는가?”***라고 설명했다. 즉 단檀에는 두 종류, 즉 <시경> 국풍의 굳세고 질긴 나무인 단檀과 향기로운 나무인 전단栴檀(Santalum album)이 있다고 했지만, ‘박달나무’와 관련한 언급은 없다. 참고로, 박상진이 <우리나무이름사전>에서 “<아언각비>에서 단(檀)을 두 가지 뜻으로 풀이하고 있다. 하나는 원래의 뜻인 박달나무이고, 다른 하나는 백단·자단 등 열대지방의 향목(香木)이다”라고 해설한 것은 오독일 것이다.
<물명고>에는 단檀이 꽤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다. “황단黃檀과 백단白檀 2종이 있다. 잎은 회화나무 같다. 껍질은 푸르고 광택이 있으며, 표면은 세밀하고 부드럽다. 재질은 무겁고 굳세다. 우리나라 민간에서 이 글자를 박달나무(牛筋木)로 부른다. 그러나 박달나무는 잎이 크고 마주나기가 아니므로, 믿을 만한 말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즉, <물명고>의 앞 부분 설명은 <본초강목>의 설명과 일치하므로, 유희柳僖 선생은 <본초강목>의 단檀을 생각하고, 우리나라 민간에서 ‘우근목(박달나무)’으로 말하는 것은 믿을 수 없는 말이라고 한 것이다. 참고로, 황단黃檀(Dalbergia hupeana Hance)은 잎 모양이 회화나무 비슷하지만, 백단(Santalum album)은 단엽이다. 그리고, 청단靑檀도 어긋나는 단엽이다.
<광재물보>에서는 <물명고>와 같은 해석을 했지만, 한글로 ‘박달’이라고 설명하고 박달나무를 뜻하는 ‘곡리목曲理木’이라고 했다. 확실하게 단檀의 훈으로 ‘박달’을 달고 있는 것을 보면, 1800년대 당시 단檀을 ‘박달나무’로 부른 것은 확실한 듯하다. 그 후, 1870년에 간행된 황필수黃泌秀(1842~1914)의 <명물기략>에서 단향檀香을 소개하는 부분에, “우리나라에 별도의 한 종이 있는데, 박단駁檀이다. 전轉하여 ‘박달’이라고 부르며, 또 육박六駁이라고 한다. 껍질 색은 푸르고 희며 얼룩 무늬가 많다.”***** 즉, 육박나무를 뜻하는 박단駁檀이 변하여 ‘박달’이 되었다는 주장이다.
그리고 홍만선洪萬選(1643~1715)의 <산림경제> 구황救荒 편에도, “2월 이후가 되면, 들나물, 산나물, 단엽檀葉(팽나무 잎), 櫷葉(느티나무 잎), 쑥은 모두 굶주림을 구할 수 있다.”******가 나오는데, 여기에서는 팽나무를 단檀으로 본 것이다. 정태현의 <조선삼림식물도설>에서도 물론 한자명 단목檀木은 박달나무에만 기록했지만, 팽나무의 한자명 중 하나로 청단靑檀을 들고 있고, 당단풍나무, 산딸나무의 이명으로 ‘박달나무’를 표기했다. 당단풍나무와 산딸나무의 이명으로 ‘박달나무’가 사용된 사실은 이우철 선생의 <한국식물명의 유래>에도 기재되어 있다. <나무백과(4)> 동백나무 편에서도 임경빈은 1982년도에 여수 돌산도 임포 부락을 답사하면서, “산딸나무도 많았는데 마을사람들은 박달나무로 부르고 있었다”라고 적고 있기도 하다.
이런 기록을 보면, 박달나무’라는 이름은, <조선식물향명집> 등 현대 분류학 서적에서 자작나무과의 ‘Betula schmidtii Regel’에 단목檀木과 함께 ‘박달나무’라는 종명을 부여하기 이전에는, ‘굳세고 질긴 나무’를 뜻하는 일반 명사가 아니었을까 추론해 볼 수도 있다.(++) <본초강목>에서 단檀의 뜻은 “좋은 나무(善木)”라고 했으므로, 박달나무는 굳세고 질기고 쓰임새가 많은 좋은 나무에 붙인 이름일 것이다.
사실 사전류에서 단檀을 ‘박달나무’로 명기한 역사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구한말 지석영의 <자전석요>에는, “檀단, 향목香木 향나무 단”이라고 나온다. 1913년 간행 <한선문신옥편漢鮮文新玉篇>에 “檀 향나무(단), 박달나무(단)”이라고 나오지만, 이때 박달나무는 “강인한 나무로 수레 바퀴살에 알맞다”라는 뜻이 들어있다. 그리고, 앞에서 <조선식물향명집>에서 단목檀木을 식물 종의 이름으로 ‘박달나무’라고 했다고 언급했는데, 이를 반영하여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 사전으로 1947년에 초판이 간행된 한글학회 지은 큰사전을 보면 “단목(檀木) [이] =박달나무”로 되어있다. 아마 이후 발행된 모든 사전과 옥편은 단檀을 식물 이름으로서 박달나무로 설명하고 있을 것이다. 이러한 사전류의 설명 때문에, 우리들은 자연스럽게 단檀을 박달나무로 생각하고, 단군신화의 나무로 믿게 된 것이리라.
그렇다면 단군신화의 나무를 무엇으로 봐야 할까? 간혹 단군신화의 나무가 무엇인지 논쟁이 일어나기도 하지만, 이를 특정 종의 나무, 특히 박달나무로 볼 필요는 없다. 박달나무라고 해야 단군신화의 품격이 올라가는 것도 아닐 것이다. 사실 신단수의 글자도, <제왕운기>에는 ‘단수신檀樹神’으로 되어 있지만 <삼국유사>에는 ‘신을 모시는 제단의 나무’를 뜻하는 ‘신단수’神壇樹’로 나오는 점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1512년 경주 간행 목판본 <삼국유사>에서 단군신화를 좀 더 인용해본다.
“옛날 환인의 서자 환웅이 늘 천하에 뜻을 두어 인간 세상의 일을 탐구하였다. 그 아버지가 아들의 뜻을 알고 굽어살펴 세 가지의 위험이 있음을 발견하였다. 태백산 주변이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할 수 있음을 알고 곧 천부인 3개을 주고 가서 다스리게 하였다. 환웅이 무리 3천명을 거느리고 태백산 마루턱 신단수神壇樹 아래로 내려와 그곳을 신시라 하였으니, 그가 이른바 환웅천왕이다”******* 사실 해발 1500m가 넘는 태백산 정상 부근에는 박달나무 대신 주목이 자라고 있다. 묘향산 정상에는 오르지 못하지만, 아마도 박달나무는 없을 것이다.
이제 중국 고전 뿐 아니라 우리나라 고전에서도 단檀을 만나면, 이 나무가 박달나무가 아닐 가능성도 있으므로, 신중하게 문맥을 살펴야 한다. 유몽인柳夢寅(1559~1623)의 <어우집於于集>에 “오래된 단檀은 요 임금 시절 보았을 텐데, 태백산 봉우리에서 사당 흔적은 찾기 어렵네 (古檀應閱唐堯曆 遺廟難尋太白峯)”가 나온다. 단군신화와 관련하여 단檀이 쓰인 경우인데, 이때에는 ‘박달나무’로 번역하기보다는 그냥 ‘신단수’로 해석하는 것이 옳을 듯하다. 시경 정풍의 둘째 아들(將仲子)을 읽으면서 글을 마친다.
둘째 아들 - 將仲子, 鄭風
將仲子兮 둘째 아드님
無踰我園 우리집 정원을 넘어오지 마세요.
無折我樹檀 내가 심은 청단靑檀을 꺾지 마세요.
豈敢愛之 어찌 나무가 아깝겠어요?
畏人之多言 남의 말 많은 게 무서워서죠.
仲可懷也 둘째 아드님도 그립기는 하지만
人之多言 남의 말 많은 것도
亦可畏也 역시 두려운걸요.
어쨌든, 박달나무 뿐 아니라, 단檀이라는 글자를 쓰는 나무들은 우리 민족의 역사와 함께했다. 언젠가는 청단靑檀, 백단白檀, 자단紫檀, 황단黃檀 등 이국의 나무들을 직접 볼 날을 기다려본다. 그 중 온대지방에도 자라는 느릅나무과의 청단靑檀은 ‘테로셀티스’로 불리며, 천리포수목원에서 자라고 있다고 한다.
<향토문화의사랑방 안동, 통권 192호, 2021년 5/6월호, pp.80~86. --- 2017.7.22일 처음쓰고 2021년 4월 보완>
(2021.8.9 추기)
몇 해 동안 보고싶어했던 테로셀티스, 청단을 지난 7월 말 휴가기간중 천리포수목원을 방문하여 감상했다. 테로셀티스는 우드랜드에서 억새원으로 넘어가는 언덕에 우람하게 자리잡고 있었는데, 우선 박달나무처럼 거칠게 벗겨지는 수피가 눈에 들어왔다. 짙푸른 잎사귀 모양도 어쩌면 박달나무 비슷하기도 했지만, 오히려 느릅나무 열매 모양과 비슷한 동전모양의 열매는 박달나무와는 확연히 달랐다. 이 테로셀티스가 " 내가 심은 청단靑檀을 꺾지 마세요 (無折我樹檀)"의, 시경의 그 단檀 나무라고 생각하며 한동안 시적인 감상에 젖을 수 있었다. 테로셀티스 사진 몇 장을 기록으로 남긴다.
* <중약대사전>을 참조해보면, 단향檀香, 백단白檀, 전단旃檀은 모두 단향과의 반기생 열대성 상록수인 “Santalum album”을 말하며 대표적인 향목이다. 자단紫檀은 “Pterocarpus indicus Willd”인데, 동남아시아에 자생하는 반 상록성 활엽 교목으로, Burmese rosewood로 불리기도 한다. 또한 중의학에서 단檀은 콩과의 황단黃檀, 즉 “Dalbergia hupeana Hance”로 본다. 단 일본에서는 전단栴檀을 센단(センダン)이라고 하는데 우리나라 남부지방에도 자라는 멀구슬나무(Melia azedarach)를 말한다.
** 檀단, 香木栴檀 强韌木中車輻 – 전운옥편
*** 檀有二種 國風所稱伐檀樹檀者 堅靭之木 可爲車輻者也 若扶南天竺之產栴檀沈檀者 別是香木 有白檀紫檀 總謂之栴檀 … 東人忽以蔓松之冬靑者 名之曰紫檀香 祭祀焚之 丸藥劑之 豈不謬哉 – 아언각비
**** 檀, 有黃白二種 葉皆如槐 皮靑而澤 肌細而膩 體重而堅 東俗謂是牛筋木 然牛筋木 葉大而不對肘 恐未可質言
***** 檀香 … 東國別有一種駁檀 轉云 박달 又名六駁皮色靑白 多癬駁 葉如槐 皮靑而澤 肥細而膩 體重而堅 卽國風所稱伐檀樹檀者也 – 명물기략
****** 二月以後則 田菜 山菜 檀葉핑나모닙 櫷葉난대닙 蒿葉쑥 皆可以救飢 - 산림경제 구황救荒
******* 昔有桓因庶子桓雄 數意天下 貪求人世 父知子意 下視三危 太伯可以弘益人間 乃授天符印三箇 遣往理之 雄率徒三千 降於太伯山頂 神壇樹下 謂之神市 是謂桓雄天王也 – 삼국유사
(++주석추가) 1934년 조선총독부중추원에서 발행한 <조선의 성명씨족에 관한 연구조사 朝鮮の姓名氏族に關する硏究調査> p. 133에 朴達에 대해 “朴達. (박달は車軸等に使用する堅き木にして樺檀等の字を充つ 學名オノオレカンバ 但地方により此名を以て呼ぶ其植物を異にす”로 조사 기록했다. 즉, “박달朴達. (‘박달’은 차축 등에 사용하는 굳센 나무로써, 화樺, 단檀 등의 글자에 해당한다. 학명은 오노오레칸바(オノオレカンバ, 박달나무의 일본명). 단 지방에 따라 이 이름으로 부르는 식물은 서로 다르다”
+시경은 이가원 번역 참조. 표지사진: 박달나무, 2020.10.10 유명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