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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표가 없더라도

일단 해보기

by 루씨



하나의 직업을 선택한다는 건, 어쩌면 아쉬운 일이다. 아직 해보지 않은 수많은 일 중 하나만 고르라고 한다면, 대체 무엇을 선택해야 할까. 호기심은 많지만 우유부단한 나에게는 더욱 어려운 일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기 전에는 최대한 빨리 취직하고 싶었다. 어떤 구체적인 회사나 직업에 대한 고민보다는, 그럴듯한 회사에 들어가 돈을 벌어야겠다는 막연한 생각만 하고 있었다. 뚜렷한 목표가 없었기에, 채용 과정이 길고 경쟁이 치열한 국내 대기업에 굳이 지원할 이유도 없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외국계 기업 취업이었다.



회사 생활은 무난했지만, 재미가 없었다. 다만, 남들과는 다른 경험을 쌓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고, 그러려면 한국을 벗어나 새로운 환경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일해봐야 한다는 막연한 바람이 있었다. 대학교 교환학생 시절 아쉬웠던 영어 실력을 만회하기 위해서라도 외국 생활은 꼭 한 번 더 해봐야겠다는 생각도 있었다. 그렇게 떠난 게 영국 워킹홀리데이였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번역가가 되겠다는 명확한 목표는 없었다.



학창 시절부터 특정한 직업에 대한 목표가 있었다면, 공부가 더 재미있었을까? 지금 돌이켜보면, 직업에 대한 탐구를 적극적으로 하지 않고 목표를 세우지 않아 흘려보냈던 시간이 아쉽기만 하다. 부모님이 하라니까, 선생님이 시키니까 그냥 하는 게 아니라, 내가 스스로 해야 하는 이유를 만들었다면 시간을 좀 더 유의미하게 보낼 수 있었을까.



남들이 하라고 해서 한다고 모두 지속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어릴 때는 시키는 사람이 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선택과 실행은 온전히 내 몫이다. 실행의 의지나 동기가 내 안에서 나오지 않으면, 버텨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하고 지쳐버리고 만다. 결국 스스로 목표를 설정하고, 추진하며, 성장의 보람을 느끼는 일련의 과정이 있어야 지속할 수 있다. 목표가 있다면 중간에 지쳐 쉬더라도 다시 일어나 나아갈 수 있지만, 목표가 없다면 다시 일어설 이유조차 찾기 어려울 테니 말이다.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 중요하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그런데 나는 이 ‘방향’이라는 말이 참 어려웠다.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 그 방향이 맞는지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 아마도 나는 한 번 정한 방향은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해서 더 어렵게 느꼈는지도 모른다. 방향은 나아가면서 조정할 수 있는 것인데 말이다. 일단 목적지를 정하고, 그곳을 향해 걷다 보면 남들과는 다른 길을 걷게 될지라도, 크게 보면 결국 맞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다. 만약 목적지에 도달한다면 새로운 목적지를 설정하면 되고, 아직 도달하지 못했다면 계속해서 그곳을 향해 걸어가면 된다.



사회 초년생 시절의 나는 목표가 뚜렷하지 않았고, 희미한 그림처럼 막연한 소망만 있었다. 실패를 피하거나 상처받지 않으려 쉬운 길을 택하기도 했고, 그 선택을 후회한 적도 많았다. 그럼에도 나만의 목표를 찾기 위해 꾸준히 탐색했다. 막연한 소망은 경험과 탐색, 회고를 거치며 조금씩 구체적인 목표로 발전한다. 어쩌면 처음부터 목표가 없었다고 해서 아쉬워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내가 바라는 막연한 소망이든, 아쉬움에 비롯한 만회의 선택이든 쌓여가는 경험들은 어느 순간 구체적인 목표가 되어있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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