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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경문 Jan 17. 2021

우리 아빠는 차장 2년째 떨어졌어요

난 아빠가 과장이든 차장이든 상관없어

                               "정 과장~!"


"얼른 와서 설거지 해"

"까르르르"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식탁에 울려 퍼진다.

아내는 내가 차장 진급에 미끄러진 이후로 하루에도 몇 번씩 놀려댔다.



'가진 것이 없으면 열심히 해야 한다'


치열한 20대와 30대를 보내며 자기 계발서를 독파하고 깨달은 사실이었다.

그렇게 10년 넘게 사회생활을 이어왔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아침부터 저녁까지 회사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집에서 쉴 때도 회사일과 관련된 좋은 아이디어가 생각났다. 그럼 메모해두었다가 다음날 실행에 옮겼다. 주말에는 괜히 바쁘다는 핑계로 회사에 나가는 날이 많았다. 평일 저녁은 상사의 술자리 초대에 거절하는 법이 없었다. 안타깝지만 그랬다. 워커 홀릭인 동시에 남의 평가와 평판에 유난히 신경을 썼다.


그 덕분일까? 여태까지는 이른바 백이 없어도 제때 진급했고, 대체로 좋은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나는 해가 갈수록 회사라는 경기장에서 벌어지는 게임에 심취해 있었다.

게임의 룰은 점점 익숙해졌고, 이제 그 경기에 맞는 몸과 마음의 근육들이 있다고 자만했다.


이런 나를 지켜봐 온 아내는 내가 진급에 누락되었을 때 잘 되었노라고 했다.

이제 진정 소중한 것을 찾으라고, 정신 차리라고 했다.


노력은 늘 최대치로 끌어올렸으니 성과도 평가도 좋은 해였기에 더욱 상심이 컸다.

난 오랜 기간 동안 좌절했다.

회사는 열심히 하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보상이 주어지는 성과주의 세상이라고 생각했다.


아내가 얼마나 놀렸으면 아이들까지도 놀려댄다.

"아빠가 그러니까 차장이 떨어지지~"

아이들에게 공부로 잔소리라도 하면 "아빠는 차장 떨어졌으면서" 라며 반론한다.


버릇이 없다고 느낄 수도 있겠지만 난 용인했다.

그냥 너희들도 나중에 커서 아빠 나이가 되면 아빠를 이해할 거라고 했다.


처음에는 화를 낼까도 생각해보았지만, 그러지 않기로 했다.

사실 이 놀림에는 가족애가 묻어 있기 때문이다.



우린 괜찮아 아빠가 과장이든 차장이든 상관없어
아빠는 그냥 우리랑 잘 놀아줘서 좋아




이렇게 일 년 동안 매일같이 가족들의 놀림을 받았다.

그러면서 아주 자연스럽게 그것이 그리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차장 진급은 연봉 인상이 없었다.

요즘 같은 실무중심 시대에서 직급이 사람의 높낮이나 권위, 명예의 상징도 아니었다.

보이지 않는 헛 것에 집착했던 나 자신이 다소 유치하게 느껴졌다.


"아빠 근데 차장이 높은 거야?" , "아니 높은 거 아니야~"

"그럼 그다음은 뭐야? 부장, 그다음은? 상무, 그다음은? 전무.. 부사장, 사장, 회장"

"그럼 높은 거 아니네~" ㅎㅎㅎㅎㅎ


그럼 아빠가 물어볼게~

"대통령이 더 높아 아빠 더 높아?" "대통령?"

"그럼 옆집 아저씨랑 아빠랑 누가 더 높아?" "몰라" 아들이 대답했다.

"옆집 아저씨가 나이가 더 많으니까 옆집 아저씨가 음.. 부장이니까 더 높지 않을까?" 딸이 끼어들었다.

"그럼 우리 할아버지가 대통령보다 나이가 더 많으니까 더 높게?"

"어? 그렇네?"


"사람은 높고 낮은 것이 없어. 그런 건 옛날 왕이 있었던 시대에 있었던 거야~ 우리는 현재에 살고 있잖아. 지금은 국민이 주인이고, 대통령은 그냥 직업일 뿐이야. 직업이나 차장, 부장 이런 거에 따라 높고 낮은 거는 없단다. 각자 맡은 역할이 우리의 관계이지."


"아빠는 너희보다 높지 않아. 그냥 너희 아빠야~"


우리는 종종 착각하며 산다. 갑이니 을이니 하는 말들

내가 돈이 많으면 상대방보다 높다고 생각한다. 전문직에 종사하면 스스로 고귀하다고 착각한다.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우리는 불행의 피라미드에 빠지게 된다. 가 높은 상황은 아주 잠깐이지만, 결국 나보다 돈이 많고 사회적으로 권위가 있는 누군가가 존재하기 마련이다. 이 불행을 주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닌 우리 자신이다.


난 사실, 차장보다 짜장이 더 좋다.


기분이 울적할 땐 달달한 짜장면 한 그릇 어떠세요?
난 차장보다 짜장이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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