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이 일생에 보름달을 몇 번이나 볼 수 있을까? 보름달은 매일 뜨지만 내가 그때마다 하늘을 올려다보는 것은 아니다. 뭐가 그리 바쁜지 삶에 늘 지쳐있다. 이제 사람들은 휴대폰의 노예가 되어 달이 아닌 휴대폰을 바라보다 잠이 든다.
생각해보면 맑은 밤하늘에 뜬 보름달을 보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마음이 차분할 때만 달이 눈에 찬다.
나는 달이 둥글다 했다.
내가 달은 본 날은 음력 15일이기 때문이다.
일주일 뒤에 달을 본 사람이 말한다.
무슨 소리냐고, 달은 반원 모양이란다.
며칠 뒤에 달은 본 사람은 초승달이라고 했다.
내가 본 이후로 15일 뒤에 하늘을 본 사람은
'달은 없다!'라고 완곡하게 말했다.
심지어 반달 모양이라고 우기던 두 사람도 다투기 시작했다. 달이 차있는 방향과 비어있는 방향이 다르다는 것이다.
"그 친구 좀 별로지 않아? 인사도 안 하고."
"아니요. 저한테는 인사 잘하던데요? 그날 무슨 일 있었던 거 아닐까요?"
"걔 공무원 되다니 엄청 고리타분해졌더라."
"엉? 인스타에 보면 파격적인 옷만 잘 입던데?"
우리는 성공한 사람이니까 성품도 바를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한 면만 보고 싶어 한다. 그러고는 자신 있게 말한다. "그 사람 알아' '걔는 꼭 그렇더라' 이렇게 단편적으로 다른 사람을 평가한다. 다른 사람을 평가하는 데는 몇 초가 걸리지 않는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어떤가?
항상 사람들을 만나고 사교적인 성격인가?
어느 날은 집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나?
퇴근길에 회사 밖에서 우연히 옆 부서에 부장님을 봤다. 회사에서는 어찌나 무뚝뚝했던 사람이었는가? 순간 "아빠" 하며 끌어안는 딸과의 만남을 목격했다. 난 몰랐다. 그가 회사에서 냉철하게 일하는 모습으로 그 사람을 인식했었다. 하지만 그도 딸과 미주알고주알 떠드는 자상한 아빠였다.
우리는 한쪽 면만 보고 '안다'라고 착각한다.
반면'나'는 다양한 모습을 가진 복잡한 인간이라고 인식한다. 그렇다면 왜 다른 사람은 '이렇다'라고 단편적으로 평가하는가? 사람의 모습과 마음은 정해진 것이 없다. 그것은 달과 같아서 실제로 마음속에 들어가 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다.
당신은 달에 가보셨나요?
누구도 진정한 달의 모습을 알지 못한다. 사실 완전한 원이 아니다. 표면이 매끄럽지 않고 울퉁불퉁 할 테니. 달을 만져보지 않았으니 부드럽다 거칠다고 말할 수도 없다.
"좋은 분이야. 잘 해 드려" "전, 잘 모르겠는데요?"
어떤 사람이 좋은 사람일까?
정답은 나에게 잘해주는 사람 = 좋은 사람
세상 사람들이 다 좋은 사람이라고 칭찬해도 '나'에게 못되게 굴면 그 사람은 '내게' 나쁜 사람이 된다. 다른 사람과 의견이 다를 수 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들이 '그'의 모든 면을 알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대중은 언론에 나오는 뉴스를 보고 유명한 사람을 비하하거나 존경한다. 하지만 그건 그 사람의 좋고 나쁜 단편이 아닌가? 달의 한 쪽면이 어둡다고 해서 다른 면도 반드시 어두운 것은 아니니까
내가 나를 모르는데 네가 나를 어찌 알겠는가
누구도 다른 사람들을 함부로 평가할 수는 없다.
또한 잘 알지도 못하면서 누가 우리를 함부로 평가할 수 있나? 이렇게 생각하면 다른 사람의 평가에 함부로 휘둘리지 않는다. 이렇게 생각하면 편한다.
'너도 복잡한 존재지? 나도 복잡한 존재야. 그러니까 나의 한 면만 보고 전체를 평가하지는 말아줄래?'
댓글 is That 글
그냥 저기 있는 글자 일 뿐이야.
이제 "그는 감성적인 사람이야"라는 말 대신에 "그는 감성적인 면도 있어"라고 말하는 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