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까지의 빌드업
아무튼, 이 이상하고 기묘한 회사 생활을 10개월 만에 끝내게 된 결정적인 사건이 있었다.
1. 사장님 생신, 집에서 음식 싸와서 생일 파티 열기
2. 워크숍 장기자랑, 춤 안 추면 보너스 없음
3. 유부남 사장님의 직원 성폭력
이 세 가지 사건은 순서대로, 그리고 점진적으로 내 퇴사에 불을 지폈다.
첫 번째 사건은 의구심이었다면, 마지막 사건은 확신을 주었다.
1. 충성심은 월남쌈으로
어느 날 아침, 센터장님이 사무실을 돌며 비장하게 선포했다.
“다음 주, 사장님 생신인 거 다들 알지? 매년 하던 대로 각자 집에서 요리 하나씩만 싸 와.”
순간 사무실에는 정적이 흘렀다.
'네?'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이미 베테랑 분들은 “그럼요!", “저는 잡채요!"라며 분위기를 띄우기 시작했다.
나는 눈앞이 캄캄해졌다.
부모님한테도 요리를 해준 적 없구만 사장님에게 요리라니.
그 와중에 엄마가 생각났다.
후, 회사에 대한 충성심을 엄마의 노력으로 증명하는 게 가당키나 한 일인가.
하지만 불효녀는 살아남기 위해 엄마를 찾았다.
마트에서 장을 보고 엄마와 함께 월남쌈을 만들었다. 물론 장 보는 비용은 스스로 내야만 했다.
150만원 월급에서 사장님을 위해 돈을 써야 한다니.
눈물을 머금고 제일 싼 걸로만 골랐다.
생신 파티 당일, 사무실 한가운데 테이블에는 진수성찬이 차려졌다.
갈비찜, 잡채, 각종 나물과 전, 고객센터는 여성 사원이 100%였기에 주부 사원들의 화려한 손맛이 눈에 띄었다.
사장님은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우리는 가족이다!"를 외쳤다.
나는 불안과 찜찜함으로 버무려진 잡채를 씹으며 생각했다.
'아, 이게 바로 어른의 삶인가' 싶었던 내 3개월 전의 순진함은 어디로 갔을까.
2. 보너스를 위한 한 춤사위
두 번째 사건은 겨울 워크숍에서 터졌다.
단합이라는 명목 아래 도착한 스키장.
스키장을 가기 전, 스키를 탈지 보드를 탈지 사전 정했기에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좋아하는 스키를 골랐다.
근데 나를 제외하고 모두 보드를 골랐다.
진짜 미운 사람들.
사장님과 같이 리프트를 타고 가는 동안 숨이 막히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이것이 아니었다.
이 회사는 워크숍에 지점 별로 춤을 춰야 했는데 춤을 추지 않으면 보너스가 제공되지 않는다고 했다. 처음에는 장난인 줄 알았는데 다리가 부러져 춤에 참여 못 한 부장님이 실제로 보너스를 받지 못하셨다고 한다.
우승을 할수록 수하가 좋았기에 나의 지점은 댄스 학원을 등록시켰다.
퇴근 후, 대리님이 모는 차에 직원들은 실려 댄스 학원에 가게 되었다.
내가 하게 된 노래는 CLC의 도깨비였다.
노래 가사는 이러하다.
금 나와라 와, 은 나와라 와라, 너 나와라 와라, 뚝딱.
열심히 팔을 팔딱이며 춤을 춰야 했는데 나는 나이가 가장 어리다는 이유로 센터가 되었다.
아무튼 댄스 강사분의 춤을 영상으로 찍고 아침마다 직원들과 연습하며 센터로서의 입지를 단단히 해 보였다.
보너스를 안 주면 안 줬지, 춤을 춰야 한다니.
이건 명백한 갑질이었지만, 직장인에게 보너스라는 미끼는 생각보다 강력했다.
부장님들은 막춤을 췄고, 여직원들은 최신 아이돌 댄스를 따라 했다.
나 역시 수십 개의 눈동자 앞에서 세상에서 가장 어색한 춤을 춰야 했다.
무슨 춤을 췄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저 로봇처럼 뻐걱거리다 들어왔을 뿐이다.
결국 보너스를 받았지만 기쁨이 아닌 수치심을 안겨주었다.
내 자존감의 가격이 고작 이 가격이었다는 사실에 헛웃음이 났다.
불어 터진 떡볶이 맛이 입안에 맴돌았다.
3. 마지막 방아쇠
회사를 그만두기로 결심한 마지막 사건은 조용히, 그리고 끔찍하게 찾아왔다.
어느 날, 사내 게시판에 사장님이 급식 봉사를 하며 활짝 웃는 사진이 담긴 기사가 올라왔다.
'나름 좋은 일하는구나' 싶어 무심코 넘겼던 그 기사.
진실은 끔찍했다.
유일하게 마음을 터놓던 관리부 직원과 술을 마시다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됐다.
그 봉사활동은 사실, 사장이 저지른 성폭행 사건의 '사회봉사 명령' 이행이었고, 그리고 사진에 있는 다른 직원들도 그 사실을 알고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순간 온몸의 피가 차갑게 식었다.
분노보다 먼저 찾아온 것은 공포였다.
주마등처럼 사장의 기괴했던 언행들이 스쳐 지나갔다.
워크숍에서 몇 십 명 중, 나만 스키를 골랐던 일, 굳이 나를 지목해 '트러블메이커' 춤을 춰달라고 했던 일, 격려한답시고 불필요하게 어깨를 주물렀던 그 손길. 모든 조각이 맞춰지며 소름이 돋았다.
이곳은 회사가 아니라, 위험한 정글이었다.
이 모든 사실을 알면서도 사장님 생신상에 잡채를 올리고, 그의 농담에 웃어주던 동료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들의 평범한 얼굴 뒤에 숨겨진 침묵과 집에 오는 내내 손이 떨렸다.
분노와 공포가 가라앉자 차가운 현실이 덮쳐왔다.
월급 150만 원에서 100만 원씩 모았지만, 고작 반년만에 수중에 150만 원밖에 없었다.
아니, 어떻게든 탈출해야 했다.
나는 뇌를 풀가동해 탈출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아르바이트로 다져진 서비스직 경력을 믿고, 내일 배움 카드 국비 지원 지상직 학원과 일본어 학원을 등록했다.
다시 왕복 두 시간의 지옥철에 몸을 실었다.
이번엔 뚜렷한 목표가 있었다.
주말을 갈아 넣어 JLPT 자격증과 OA 자격증, CRS 자격증, 여행사 오퍼레이터 자격증을 땄다.
하지만 현실의 벽은 높았다.
영어 한마디 못 하는 나는 번번이 항공사 면접에서 고배를 마셨고, 겨우 합격한 곳은 삼교대로 근무하는 파견 업체였다.
그래도 당시의 나는 건강했고, 이 지옥만 벗어날 수 있다면 뭐든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KOTRA 일본 박람회 소식을 접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찾아간 그곳에서 나는 또다시 현실의 벽에 부딪혔다.
한 기업의 면접관 앞에서 어설픈 영어 실력이 탄로 나자 참담한 기분마저 들었다.
면접 부스에서 낙담하던 그때, 누군가 내 손에 전단지 한 장을 쥐여주었다.
‘취업 확정형 프로그램' 시선을 끄는 문구 아래 적힌 내용은 더 파격적이었다.
입사 시 회사 기숙사 제공, 실무 경험 전무해도 OK, 대전 연수 기간에도 월 27만 원에 기숙사 이용 가능. 목적지는 도쿄.
이거다.
나는 홀린 듯 지원했고, 며칠 뒤 합격 통보를 받았다. 꽤 넓고 깔끔했던 원룸 기숙사 사진을 확인한 순간, 모든 망설임이 사라졌다.
무슨 연수인지, 어떤 회사인지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았다.
다만 도쿄로 갈 수 있다는 사실, 이 지옥에서 드디어 탈출할 수 있다는 확신만이 나를 들뜨게 했다.
나는 당당히 사직서를 제출했다.
마지막 면담에서 사장님은 웃으며 말했다.
네가 남자였으면 때려서라도 말렸을 거야.
참나.
10개월 만에 다시 백수가 되었다.
하지만 이상하게 끔찍하지 않았다.
퉁퉁 불어 터진 면발 같던 내 미래가, 오히려 선명해진 기분이었다.
고용디딤돌.
내 인생의 첫 버프인 줄 알았던 그 제도는, 사실은 앞으로의 험난한 직장 생활을 버티게 해 줄 아주 강력한 예방 주사였다.
나는 그곳에서 마케팅 대신, 최악의 회사를 감별하는 법과 나 자신을 지키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그 배움은, 어떤 대기업 연수보다 값지고 단단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