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첫 버프, 고용디딤돌1

제가 디자이너라고요?

by chacha

혹시 ‘고용디딤돌’이라는, 2년 만에 사라진 비운의 사업을 아시는지.

고용디딤돌은 고용노동부와 기업이 협력하여 청년 구직자에게 유망 직무 교육과 인턴십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실제 취업으로 연계될 수 있도록 돕는 취업 지원 프로그램입니다. 삼성, SK 등 다양한 기업들이 참여하여 전문화된 직무 교육과 협력사 및 우수 기업에서의 인턴 기회를 제공하며, 이를 통해 청년의 취업 경쟁력을 높이고 기업은 우수 인력을 확보하는 상생 모델을 구축합니다

간단히 말해 대기업이 취준생을 뽑아다 살뜰히 가르친 뒤, 협력사에 취업까지 시켜주는 꿀 같은 제도였다.

2015년, 나라에서 청년 1만 명에게 쏟는 그 기회에 운 좋게 내가 올라탔다.

취업은 확정, 입사 전까지 대기업 연수원에서 마케팅 교육을 받았다.

교육은 공짜, 심지어 매달 ‘취업 지원금’이라는 용돈까지 줬다.

세금 떼고 100만 원 남짓.

백수에게 용돈이라니.

내 인생에 이토록 평온한 시기가 또 있었을까.

‘아, 이게 바로 어른의 삶인가’ 싶었다.


3개월의 달콤한 연수가 끝나고, 나는 전공을 살릴 수 있다는 마케팅, 기획팀에 배정됐다.

드디어 내 재능을 펼칠 시간이구나!...라고 생각한 건 출근 첫날 오전 9시까지였다.


내가 입사한 곳은 소상공인을 상대로 광고를 파는 회사였다.

문제는 텔레마케터분들의 과한 열정이었다.

어르신 사장님들은 본인이 광고를 동의한지도 몰랐고 이 사실을 안 자녀분들의 분노는 고스란히 회사로 향했다.

회사가 수십 명 남짓의 작은 회사라, 굳이 검색하지 않으면 티도 안 나는 광고라는 점이 분노에 기름을 부었다.


내 첫 업무는 바로 그 분노의 현장으로 출동하는 것이었다.

디자이너가 전화번호를 잘못 적는 바람에 생긴 일이라는데, 어쩐지 사과하라는 건 내 몫이었다.

영업부장님은 카센터로 향하는 차 안에 내게 비장하게 말했다.

"가서 신입이라 잘 몰라서 그랬다고 해."


아니, 제가 안 그랬는데요.

하지만 신입에게 무슨 힘이 있나.

카센터 사장님 앞에 나는 세상에서 가장 어리바리한 사회 초년생이 되어 "죄송합니다. 제가 신입이라 잘 몰라서..."를 읊조렸다.

다행히 사장님은 '어린 친구가 그럴 수도 있다'며 너그럽게 용서해 주셨다.


어떤 분은 내게 광고 확인 법을 물으셨는데 다행히 컴퓨터 작업에 익숙했기에 디자이너인 척을 하며 알려 드렸다.

내가 한 일도 아닌데 사과하고, 내가 한 일도 아닌데 용서받았다.

아이러니했다.


그렇게 세 군데를 돌며 사과 도장을 깨고 나니, 손에는 믹스커피 세 잔이 담겼던 종이컵이 들려 있었다.

입도, 마음도 텁텁했다.

돌아오는 길, 과장님은 수고했다며 특별히 업무 뺑뺑이를 하사하셨다.

메뉴는 국물 떡볶이.

입맛이 없어 통통 불은 면발이 내 미래처럼 막막해 보였다.


과장님은 달랐다.

"오늘도 잘 마무리했네!" 하하 웃으며, 유아 모델이 된 아들 사진을 자랑하셨다.

"와, 정말 귀엽네요"라고 칭찬하는 내 입에서 불어 터진 떡볶이 맛이 났다.


기획팀이지만 새로운 일은 없었다.

출근하면 다들 나를 보고 당황했다.

일주일 내내 회사 소개서를 정독하고 책상을 닦았다. 그러다 드디어 나에게 딱 맞는 팀이 생겼다며, 내가 사는 동네 지점으로 발령이 났다.


새 근무지는 '인바운드팀'.

집에서 걸어 다닐 수 있다는 게 유일한 장점이었다.

센터장님은 "텔레마케팅은 모든 마케팅의 기본"이라며 나를 설득했다.

'그래, 뭐든 배우면 낫겠지'라는 생각으로 나는 분노한 고객들의 전화를 받기 시작했다.


물론 쉽지 않았다.

사장님 본인의 항의는 양반이었다.

진짜는 분노한 자녀들이었다.

전화 너머로 들려오는 욕설과 고소 협박, 때로는 직접 찾아오겠다는 선포였다.

전화벨이 울리면 심장이 내려앉았고, 고성이 들리면 등골이 서늘했다.


하지만 인간은 적응의 동물. 나름의 생존 스킬도 터득했다.

바로 경청이었다.

일단 내 입을 닫고 상대의 분노 게이지가 방전될 때까지 들어주는 것이다.

추임새를 넣으며 공감하다 보면, 신기하게도 대화가 통하는 순간이 왔다.

이 스킬은 지금도 아주 유용하게 써먹고 있다.


또 다른 재능은 엑셀이었다.

센터장님이 수기로 하던 업무 보고를 보다 못해 SUM과 VLOOKUP 함수를 몇 번 썼을 뿐인데, 하루아침에 나는 지점의 엑셀 능력자가 되어 있었다.

그 후 모든 데이터 관련 일은 내 차지가 됐다.

슬픈 건 내가 틀려도 아무도 모른다는 사실이었지만, 덕분에 센터장님의 총애를 듬뿍 받았다.

내가 페이스북을 끊을 때까지 '좋아요'를 눌러주시던 분이었다.


아무튼, 이 이상하고 기묘한 회사 생활을 10개월 만에 끝내게 된 결정적인 사건이 있었다.

1. 사장님 생신, 집에서 음식 싸와서 생일 파티 열기
2. 워크숍 장기자랑, 춤 안 추면 보너스 없음
3. 유부남 사장님의 직원 성폭력

이 세 가지 사건은 내가 엔지니어의 길로 들어서는 신호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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